
‘제2의 이강인, 이광연, 조영욱, 김정민, 오세훈….’ 이번 U-20 월드컵을 보면서 수많은 슛돌이들이 꿈을 꾸고 있을 터다. 내 길을 앞서 간 선배는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기도 한다. 특히 큰 획을 그은 대선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길이 된다. 인천 관교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인 태권도 꿈나무 이정행(12) 군에게도 길을 밝혀주는 롤 모델이 있다.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강민성(21) 선수다. 벌써 여름인 것 같은 5월의 셋째 주 일요일 오후, 둘을 한겨레신문사로 초대했다.

롤 모델을 만난다는 설렘 때문일까. 이정행 군은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마르고 작은 체구의 정행 군은 야구 모자를 눌러쓴 채 조용히 앉아 문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조금 뒤 노랑머리를 한 강민성 선수가 도착했다. 정행 군을 보자 반갑게 인사를 건네더니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국가대표팀 배지와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마스코트 인형, 그리고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사인이다. 쑥스러움도 잠시, 정행 군 얼굴에는 금세 웃음기가 퍼졌다.
둘은 이날이 두 번째 만남이다. 아동옹호 대표기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지원하는 인재양성 지원사업 ‘아이리더’를 통해 멘토와 멘티로 맺어졌다. 2월 중순에 열린 ‘아이리더 10기’ 발대식 때다. 처음 만난 발대식에서 사인해달라며 먼저 다가와 인사했던 정행 군을 강 선수는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가져온 선물을 주고 나서 본인의 사인을 마지막으로 건넸다.
▶‘아이리더’를 통해 멘토와 멘티로 맺어진 강민성(오른쪽) 선수와 이정행 학생. 태권도라는 공통점을 가진 둘은 금새 친구가 되었다.
“포기 않고 간절하면 대가 꼭 따라온다”
강민성 선수는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첫 금메달의 기쁨과 함께 품새 종목 초대 챔피언이란 이름도 새겼다. 절도 있는 발차기와 안정적인 착지 동작으로 공인 품새와 새 품새 2차례의 연기에서 모두 경쟁 선수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다. 품새가 첫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대회에서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
▶강민성 선수가 준비해온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정행 군.
“우연히 TV에 나온 품새 영상을 보고 태권도에 흥미가 생겼어요.” 평생 가슴에 품어온 아빠의 꿈을 아들이 꿈꾸는 순간이었다. 강 선수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시작부터 태권도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강 선수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힘든 때도 많았다. “운동을 하면서 진짜 지금까지 올 수 있게 만들어준 프로젝트가 ‘아이리더’예요.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 생각하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경북 영주 출신의 강민성 선수는 2013년에 ‘아이리더’로 선발돼 장비 구입 등을 위한 장학금을 후원받으며 꿈을 키워나갔다. “도복, 시합비 등 운동을 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을 지원받았어요. 도복이 한 벌에 5만 원 정도예요. 하루에 두세 벌은 갈아입어야 하고, 땀 때문에 쉽게 변색되어 자주 교체해야 해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숱한 고배를 마셨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금메달이라는 값진 결과를 거둔 강민성 선수. 어려움 속에서 꿈을 키우는 학생들에게 강 선수의 이야기가 더욱 가깝게 와닿는 이유 아닐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6번 떨어져가며 마지막에 된 사람인데 진짜 포기 안 하고, 간절하고 열심히 하면 대가는 분명히 따라온다는 것을 꼭 전해주고 싶어요.” 강 선수는 긴장한 정행 군에게 툭툭 장난을 걸며 따뜻하게 다가가다가도 “힘든 거 한순간이다. 이겨내면 그다음이 보인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듯 차갑게 조언한다.
초등학교 6학년인 정행 군은 태권도를 시작한 지 3년째다. 입문하고 5개월 만에 대회에 출전한 뒤로 잇따라 결승까지 올라가는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연습 벌레 정행 군은 요즘 재발한 사마귀 탓에 한쪽 발이 불편하다. 맨발로 훈련하는 태권도 선수들에게 흔히 생기는 질병이라고 한다. 도복으로 갈아입자 둘다 눈빛부터 달라진다. 강 선수는 국가대표 선수로서 ‘품새’에 걸맞게 바른 자세와 강인한 태도로 말 한마디 한마디 신중하다. 정행 군은 발 통증도 잊었는지 정확한 품새 동작을 보여주려고 집중했다.
“품새 더 열심히 해 형 만나겠습니다”
사실 둘은 태권도라는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종목이 다르다. 강 선수는 품새고, 정행 군은 겨루기다. 품새의 매력은 뭘까. “태권도의 시작이자 끝이며, 모든 종목의 기본이죠. 품새는 한 만큼 나옵니다.” 품새는 대결 상대 없이도 수련자가 공격과 방어 기술을 스스로 갈고닦을 수 있게 만들어진 태권도의 한 기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 선수는 정행 군이 “발차기를 배웠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정행 군은 “품새를 더 열심히 해서 강민성 선수와 같이 만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응답했다.
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강 선수는 “학업과 함께 국내 대회를 뛰면서 내년에 있을 국제 대회를 준비할 예정”이라고 올해 계획을 밝혔다. 정행 군은 강민성 선수를 보며 오늘도 꿈을 향해 겨룬다. 6월 22일 제28회 인천광역시 교육감기 태권도대회를 앞두고 “자신 있어요”라며 웃었다.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PS. 기사 마감 직전인 6월 22일 대회 결과가 들려왔다. 정행 군이 겨루기 34kg급 개인전 부문 에서 동메달을 땄다. 이날도 절뚝거리는 발로 출전했다고 했다. 승부욕이 강한 정행 군에게는 분명 아쉬움이 많은 시합이었을터다. 강민성 선수가 옆에 있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다음을 준비해!”
태권도 종목은 겨루기·격파·품새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된 투기 스포츠이자 대한민국의 국기다. 태권도는 아무런 무기 없이 언제 어디서나 손과 발을 이용해 공격 또는 방어하는 무도로, 신체 단련과 함께 정신적 무장을 통한 올바른 인간화에 큰 의의를 두고 있다. 태권도 세부 종목과 특징을 살펴본다.
1는 기본동작과 품새에서 터득한 공격과 방어 기술을 이용해 상대와 겨루는 종목이다. 1분 30초씩 3회전 진행하며 각 회전당 30초의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몸통 2점, 머리 3점, 주먹 1점, 반칙 1점, 회전 추가 시 플러스 점수가 주어진다. 체급별로 나눠서 경기가 진행된다.
2는 단단한 물체나 표적을 손과 발을 이용해 깨뜨리는 종목이다. 격파는 수직인 축과 수평인 축을 기준으로 회전해서 격파물을 깨뜨리는 수직 회전과 수평 회전, 한 번의 점프 안에 격파물을 깨뜨리는 고공 다단계, 도움닫기 후 몸을 띄워 격파물을 깨뜨리는 도약으로 나뉜다. 발차기 종류에 따라 난이도가 결정되며 회전 수, 격파 개수에 따라 점수가 나뉜다. 분야별 총점을 계산해 등수를 매긴다.
3는 공격 기술과 방어 기술을 이용해 가상의 상대와 겨룸을 치르는 종목이다. 태권도 전통 품새인 ‘공인 품새’(고려, 금강, 태백, 평원, 십진)와 이보다 현대화된 ‘새 품새’(비각, 나르샤, 힘차리, 새별) 그리고 자유 품새로 경연한다. 국내 대회에서는 선수가 두 가지 품새를 선보인다. 최종적으로 1품새와 2품새의 점수를 합산해서 승패를 결정해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된다. 자유 품새는 선수가 직접 다양한 태권도 기술 체계로 음악에 맞춰 품새를 구성하는 종목이다. 기술력 점수 총 6점과 연출성 점수 총 4점을 합한 총 10점 만점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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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