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브라더스>(2003), <미녀는 괴로워>(2006), <국가대표>(2009), <미스터 고>(2013), 그리고 <신과 함께 1, 2>(2017). 모두 김용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그중 <신과 함께-죄와 벌>과 <신과 함께-인과 연>은 ‘쌍천만 영화’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이쯤 되면 김 감독을 대중영화의 국가대표라고 소개해도 손색이 없겠다. 하지만 2019년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김용화 감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김용화라는 이름 석 자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품인 <미녀는 괴로워> 때로 돌아가야 한다. <미녀는 괴로워>에서 한나(김아중)가 노래 부를 때 객석을 넓게 잡은 장면은 다 컴퓨터그래픽(CG)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때 흥미를 느낀 시각특수효과(Visual Effects, VFX)*에 <국가대표> 흥행으로 ‘총알을 장착한’ 김 감독은 새로운 모색을 꿈꾼다. 바로 VFX 전문업체인 ‘덱스터’를 설립했다. 2011년 일이다.
덱스터의 VFX 기술력은 바로 다음 작품인 <미스터 고>에서 증명되었다. 고릴라 털 작업에만 2년 동안 매진했고, 그 결과 ZENN(Zelos Node Network) Fur(디지털 털을 제작하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의 모태 기술을 개발했다. 비록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덱스터의 기술력에 중국 영화계로부터 러브콜이 잇따랐다. 이후 국내와 중국에서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덱스터스튜디오는 현재 40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상당해졌다. 코스닥 상장사로 시가총액이 11월 26일 기준 2108억 원이다. 현재 덱스터스튜디오의 기술력은 할리우드 CG 품질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위 ‘CG 한류’를 불러일으킨 덱스터스튜디오. 덱스터의 사업 다각화는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18년 영화제작사 ‘덱스터픽쳐스’를 자회사로 설립하면서 영화 제작 전반으로 사업 영역이 확장됐다. 덱스터픽쳐스는 올 연말 기대작인 <백두산>을 비롯해 김윤석, 조인성 주연의 <탈출>, SF 영화 <더 문>, <신과 함께> 3편과 4편을 기획, 제작할 예정이다. 이병헌, 하정우 주연의 재난영화 <백두산>은 덱스터픽쳐스가 100% 자체 제작한 첫 번째 영화다. 이를 통해 영화제작 사업 진출 효과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덱스터픽쳐스 대표이사이자 덱스터스튜디오 사내이사가 김용화 감독이다. <백두산> 후반 작업이 한창인 11월 20일 서울 상암동 덱스터스튜디오에서 김용화 감독을 만났다.
“나에게 지금 정의와 예전 정의 달라”
-<신과 함께> 이후 근황부터 듣자. 자체 제작한 <백두산>이 개봉을 했다.
=2018년에 제작사인 덱스터픽쳐스를 설립했다. 모기업인 덱스터스튜디오는 전문 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면서 대표직을 내려놨다. 지금 회사의 차기작들이 계속 나온다. 제일 먼저 연말 개봉작인 <백두산>이 있다. 그다음이 류승완 감독의 <탈출>, 그리고 JTBC 드라마 <사일런스>(가제), 영화 <신과 함께 3, 4> 등이다.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화려한 볼거리로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 한국형 판타지 블록버스터의 신세계를 열었는데, 이번 <백두산>에서 주목할 만한 시각효과가 궁금하다.
=<신과 함께>는 어떤 면에선 어려웠지만 판타지여서 한편으론 자유로웠다. 신화적으로 혹은 시네마틱하게 해석이 가능했다. 반면 <백두산>은 재난 상황이 우리의 일상이 닿아 있는 익숙한 장소들에서 벌어진다. 이렇게 익숙한 장면은 물리법칙이 정확해야 한다. 그런 점이 <신과 함께>와 다르다. 물, 불, 바람 효과가 상대적으로 많이 필요했다. <백두산> VFX에 70억 원을 투입했다. 폭파, 재난, 지진은 아시아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데뷔 당시 어떤 꿈을 꾸었나. 본인이 꿈꾼 대로 흘러가는지 궁금하다.
=지금의 정의와 예전의 정의가 다르다. 지금의 김용화에게 정의는 ‘함께하는 사람들 밥 굶기지 않는 것’이다. 전체 식구가 400명 가까이 된다. 예전의 김용화에게 정의는 ‘영화감독으로 밥 먹고 사는 것’이었다. 가난이 너무 싫어 CF 감독을 하려고 했다. 영화감독으로 밥 못 먹고 살 것 같았거든. <쉬리> 보고 그 생각이 바뀌었다.
-재밌는 이야기를 어떻게 포착하나.
=이런 얘기가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우리나라 스키점프 아세요? <국가대표> 이야기를 택시 기사에게 5분간 던졌다. 바로 반응이 나왔다. <미녀는 괴로워>는 반응이 엄청 셌다. 특히 열 살 조카한테 얘기하면 즉각적으로 반응이 온다.(웃음)

“밑바닥부터 경험해 기술력 일궈내”
-본인의 성장동력은 어디서 온다고 보나.
=‘활동성 타성’을 거부한다. 그러면서 나를 절벽 앞에 세우는 경향이 있다. 이게 돼? 할 수 있을까? 그 아슬아슬한 느낌이 있어야 열심히 하는 근성이 생긴다. <신과 함께>도 <미스터 고>를 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폭망했지만 도전해볼 만해! 그래서 밀어붙였다. 같이 한 사람들이 성장하는 걸 보면서 쾌감과 삶의 보람을 느낀다.
-승승장구하다 <미스터 고>로 쓴맛을 봤다. 하지만 또 다른 출발선이 되어주었다.
=<미스터 고>로 지하 10층까지 내려갔다 왔다.(웃음) <미스터 고>는 원래 친구가 준비하던 작품이었다. 작업 진행이 계속 정체되면서 내가 하게 되었다. 그땐 기고만장하던 시절이었다. 고릴라가 프로야구 한다고 하면 어때요? 당시 쇼박스 유정훈 대표의 눈이 동그래졌다. 후반 작업만 1년을 했다. 미국 가서 공부도 하고 오고 밑바닥부터 몸소 경험해서 덱스터의 VFX 기술력을 일궈냈다.
-연출 장르는 변하는데 가족이란 주제는 유지한다. 대중 코드 때문인가, 개인 성향인가. 또 마지막 감동을 일으키는 지점을 미리 생각하나.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캐머런 등 좋아하는 감독이 모두 가족 이야기를 한다. 가족 관계는 참 애매하다. 인간의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파생하는 게 가족 관계라고 본다. 그 복잡한 관계를 관객에게 잘 설득시키고 싶다. 얼마나 많은 사람과 소통하느냐가 나의 가치다. 그러기 위해 대중영화 시나리오는 퇴고를 많이 한다. 어느 순간에 폭파시킬지 계산하고 켜켜이 구조를 쌓아나가야 한다.
-웃음이 뒤틀려 있는 건지 아이러니한 건지 신기하다. 시나리오에선 웃기지 않은 장면이 완성된 영화를 보면 웃긴다.
=시나리오보다 영화를 재밌게 만든다는 외부 평가를 받는다. 어려서부터 친구들 웃기는 게 좋았다. 외로움이 싫었던 모양이다. 사회생활 하는 모든 사람은 서브텍스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대로, 느낀 대로 그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리허설 때 연기를 해보면서 서브텍스트(문학 대사 이면에 감추어져 표현되지 않은 감정, 판단, 생각 따위를 이르는 말)를 알려준다. 배우들이 그 숨겨진 코드를 기막히게 재밌어 한다. 그런 대사를 써서 웃음이 나오는 것 같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성공 기쁨은 잠깐, 곧 허무함 찾아와”
-당신에게 영화는.
=나에게 영화는 위로였다. 재밌게 위로하는 게 목표다.
-위로하기 위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뭔가.
=첫째도 감정, 둘째도, 셋째도 감정이다. 관객들이 영화 속 감정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면, 즉 빠져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고민하다. 기술 부분을 시나리오 쓸 때부터 같이 고민한다. 키아트(개별 콘텐츠 이미지)를 먼저 아티스트에게 보여주고 연구하게 한다.
-덱스터를 설립한 당시 상황이 궁금하다.
=<국가대표>는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적으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대중영화로 감독상을 받고 싶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이루게 해준 영화가 <국가대표>다. 성공했다는 기쁨은 잠깐이었다. 허무함이 찾아왔다. 삶의 좌표를 바꿀 때였다. 이때부터 공동체 가치 실현이란 새로운 화두가 나에게 왔다. 영화 세 편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벌어들인 수익의 대부분을 덱스터 자본금으로 투자했다.
-현재 한국의 VFX 시장은 어떤가.
=한국 시장 규모가 작다. 중국 정도는 되어야 우리 규모의 회사가 살 수 있다. 그래서 힘들지만, 그런 만큼 이런 회사가 100년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게 미래라고 본다.
-한국의 VFX 기술은 어디까지 왔나.
=사람을 만드는 게 VFX 기술의 ‘끝판왕’이다. 사람이 어색한 걸 제일 잘 알아챈다. 지금까지는 전 세계 업체들의 기술력이 엇비슷했다. 덱스터도 그 수준은 되었다. 조만간 디지털 초상권이 생길 것 같다. 죽은 이소룡이 CF 모델이 될 수도 있다. 실시간 비디오 적용이 가능한 걸 구현하려고 한다.
할리우드 시스템 확립 꿈 ‘착착’
-앞으로 사업 방향이 궁금하다.
=용역 일은 미래가 불투명하다. 자체 콘텐츠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마블이 ILM(특수효과 회사)을 인수한 뒤 디즈니에 재편되어 <어벤져스>를 만들었다. 결국 칼을 잘 준비해서 남의 밭에서 일하느냐, 내 정원에서 일하느냐가 중요하다.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와 영화 <백두산>에 이어 <더 문>과 <신과 함께> 3, 4편도 준비할 예정이다.
-<신과 함께> 3, 4편은 언제 들어가나.
=3, 4편 판권은 구매해놓은 상태다. 배우들 일정 문제도 있어 <더 문>을 먼저 하고 나서 들어갈 것 같다. <신과 함께> 3, 4편 촬영은 후년에 시작할 계획이다.
-12월 5일 개막한 마카오 국제영화제에서 마스터클래스도 가졌다.
=<신과 함께> 위주로 VFX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영화제가 프로그래밍이 상당히 좋다. 명인강좌(마스터클래스)를 하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다. 2018년 홍콩에서 페리를 타고 마카오로 들어갔다. 페리까지 짐을 옮겨준 포터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신과 함께> 만든 감독 맞냐고 신기해하며 물었다. 그러더니 지갑에서 본인이 관람한 <신과 함께> 티켓 10장을 꺼내 보이며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이고 감동을 받았다. 당신 영화는 내 인생이다”라고 말했다. 전율이 쫙 왔다. 누군가에게 내 영화가 어떤 의미가 된다는 걸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기억이 너무 좋아서 마카오에 또 오겠다고 영화제에 말했다. 그것이 마스터클래스가 되었다.(웃음)
-감독과 제작자 중 어느 위치일 때가 행복한가.
-시나리오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 <백두산> 제작자로서 막판 시나리오 각색을 도와주는데 너무 행복했다. 3주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김용화 감독은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솔직하며 유쾌한 태도는 그가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과 닮았다. 영화 기획에서 배급까지 한 스튜디오가 맡는 할리우드 시스템을 확립해보자는 그의 꿈은 <신과 함께> 시리즈를 시작으로 펼쳐나가고 있다. 실사 촬영보다 VFX 작업을 통해 배경과 인물까지 만들어내는 시대에 덱스터스튜디오의 성장은 무한대다.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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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