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완 KDI 부원장이 2월 25일 세종시 한국개발연구원에서 미래 비전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한국개발연구원
50주년 맞은 KDI, 김기완 경영부원장
우리나라 최초의 경제·사회과학 분야 국책연구소로 창립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1년 3월 11일 50주년을 맞았다. 한국개발연구원은 한국 경제 초창기의 중요한 경제 연구와 자문을 수행했고 현재 국무총리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6개 기관 중 유일한 종합연구소이자 공공부문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 동향·전망 발표, 거시·미시·시장·재정·복지 분야 경제 연구, 정부부처의 수요에 따른 연구, 경제 정보 확산·전파, 정부의 수탁 용역 수행 등이 주된 업무다.
개원 50주년을 맞은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 1년 동안 한국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종합연구를 수행했다. 거시경제, 산업·시장, 노동·교육, 공공·재정, 지역발전, 문화, 남북관계 분야를 아울러 2월 17일 ‘KDI가 본 한국 경제 미래과제’라는 주제로 국제콘퍼런스를 열었다.
2월 25일 세종시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김기완 부원장을 만나 한국개발연구원의 과거·현재·미래와 한국개발연구원이 본 한국 경제의 미래 과제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글로벌 정책 담론 선도하는 싱크탱크
김기완 부원장은 “한국개발연구원이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한 싱크탱크 역할에 맞췄다면 이제 경제 규모가 성장한 만큼 글로벌 정책 담론을 선도하는 글로벌 싱크탱크를 지향할 것”이라고 비전을 밝혔다.
한국개발연구원은 2020년도 전 세계 글로벌 싱크탱크 평가에서 16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11개 기관을 제외한다면 세계 톱 5위 안에 든다. 김 부원장은 “그동안 수월성 있는 연구 결과와 확산에 성과가 있었고 한국의 국격 자체가 올라가면서 순위가 상승한 부분도 있다”며 “한국이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하는 국가로 변화하는 등 위상이 높아졌고 글로벌 역할도 요구받고 있어 이에 걸맞은 연구 성과물의 생산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부원장은 이어 “한국개발연구원 소속 인재뿐 아니라 국내외 외부 전문가들과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공동 연구물을 낼 필요성도 느끼고 있다”며 “무엇보다 사실을 통해 연구하고 결과를 도출해 현실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제언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기관의 역할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1971년 창립한 한국개발연구원은 한국의 경제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초창기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의 입안과 경제학적 배경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으며 한국개발연구원 출신 인사들이 다수 고위 경제·금융 관료로 입각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중심으로 연구와 자문을 주도했고 1980년대 들어서는 경제안정화 종합시책에 많은 연구와 자문을 제공했다. 1990년대에는 금융실명제 추진의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외환위기 당시 위기 극복 방안이나 구조조정 방안을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2000년대에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중·장기 정책 방안을 제시했으며 경제 선진화를 위한 연구 역량을 강화했다. 2010년 우리나라가 주요 20개국(G20) 회의의 의장국 역할을 맡았을 때는 의제 설정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2010년 6월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구조적 요인 분석을 토대로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개원 50주년을 맞은 한국개발연구원 전경
선진국형 경제 패러다임 정립해야 할 시기
한국개발연구원은 2021년 우리 경제가 선진국형 경제 패러다임을 정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50년간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해소하고 미래를 향한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경제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한국 경제의 미래과제’ 국제콘퍼런스에서 ▲국민의 삶의 질 향상 ▲기술혁명 대응과 산업경쟁력 강화 ▲인구구조 변화의 대응이라는 세 가지 도전과제를 제시했다.
김기완 부원장은 “현재 가장 큰 과제는 코로나19와 경제 위기 극복이지만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경제의 나아갈 바를 고민했다. 그동안 압축성장을 통해 경제적으로 많은 성장을 했지만 국민은 삶의 질이 아직 미흡하다고 느끼고 있다”며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 중요한 도전과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은 세계 10위권이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만족도는 30~40위권에 불과하다.
또 “기술혁신은 인공지능(AI) 등을 통해 빠르게 이뤄지는데 우리 기업과 산업이 제대로 대응하고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전 세계에서 유례 없는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를 겪으면서 무엇을 준비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등에 초점을 맞추고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이번 콘퍼런스에서 제기한 핵심 지향점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고부가가치·선도형 산업구조 확립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생태계와 삶의 질을 높이는 노동시장 구축 ▲사회문화 면에서 질 높은 삶을 영위하고 기본적인 복지가 보장되는 포용적 사회 ▲동북아 지역의 평화 유지 등 안정적인 대외 관리 등이다.
이와 관련해 남창우 연구위원은 콘퍼런스에서 “산업구조는 신기술 집약적 산업과 제조업·서비스업 간 융합을 통한 선도형 신산업 중심으로 재편돼야 하며 산업 정책과 규제 개혁으로 장기적 구조 변화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극적 시장창출과 연구개발(R&D) 촉진, 신생기업의 세계시장 진출, 창의적 인력 양성 정책에 주력하고 금융시장의 진입규제 완화, 헬스케어산업 규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 등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진국 연구위원은 “대규모 기업 집단의 지배구조는 소유경영과 전문경영의 장점이 더불어 발현되는 융합형·한국형 기업지배구조로 진화해야 한다”고 밝히고 “부당 내부거래·일감 몰아주기 등 사적 이익 추구 행위를 원천 봉쇄해야 하며 위법 행위에 대한 신고·적발 확률을 높이고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우람 연구위원은 “미래 노동시장은 짧은 근로시간과 높은 경제적 산출물이 공존해야 하며 이를 위해 노사 간 상호 노력을 바탕으로 인사 관리와 일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석 연구위원은 “인구구조와 기술 변화에 대응해 복지개혁과 복지혁신을 이룸으로써 국민 행복을 지원하는 제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며 “선별적 지원과 보편적 지원의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복지 재원 마련 방안과 재정 운용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완 부원장은 “물론 우리가 모든 해답을 제공할 수는 없다”며 “전체적인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 어떤 식으로 하는 것이 좋을지, 변화의 방향을 보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50주년 기념 슬로건과 단체를 상징하는 문장을 새긴 기념석│한국개발연구원
탄소중립 추진 때 기존 산업 부작용 최소화해야
한국개발연구원은 과거 미국 유학파를 중심으로 경제적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에 집중했으나 최근에는 사회도 변했을 뿐 아니라 한국개발연구원 인적 구성도 상당히 다양해졌다고 말한다. 김 부원장은 “현상에 대한 인식에서 경제적 효율성뿐 아니라 노동·복지 등 사회적 측면에서 좀 더 광범위하게 고려하는 추세가 이번 비전 작업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부원장은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엄밀하게 증거에 기반해 연구하고 제공하지만 정책은 여러 요인을 고려해야 하기에 반드시 정책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며 “많은 기관이 자신의 장점 분야에서 집중해서 사안을 본다면 한국개발연구원은 종합연구기관으로서 경제 분야에 초점을 맞추되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동료심사(Peer review)를 통해 내부에서 동료들 간 치열한 토론을 거쳐 비판하고 개선된 연구결과를 만든다”며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김 부원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탄소중립’과 ‘한국판 뉴딜’에 대해 방향성 자체는 바람직하다면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탄소중립을 추진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기존 산업에 대한 부작용을 얼마나 최소화할 수 있을지, 한국판 뉴딜은 코로나19 위기 극복 이후 어떻게 재정 수요를 낮추고 민간과 공동 보조를 맞춰 장기 성장 잠재력을 확충할지 등 세심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 부원장은 “한국개발연구원에 대해 소수 엘리트 집단이고 경제 효율성만 집중한다는 편견도 있다”며 “외부 네트워크로 소통을 많이 하고 있으며 연구 스펙트럼도 상당히 넓다.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열린 자세로 임하고 있으며 많은 부분 종합적으로 연구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