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옥분 씨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터줏대감이다. 집 근처에 있는 치매지원센터를 오가며 보다가 어느 날 직접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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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오십이 되니까 아이들도 다 키웠고 시간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뭔가 의미 있는 일이 없나 찾아보다가 치매지원센터에 자원봉사자 신청을 했어요. 사실 그때만 해도 치매가 뭔지 구체적으로 잘 몰랐어요. 막연하게 어르신들을 돕고 싶은 마음만 있었는데, 치매에 대한 이해부터 봉사자의 마음가짐 등 센터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이수하고 정식 자원봉사자가 됐어요.”
그렇게 시작한 봉사활동이 10년이 됐다. 일주일에 3일씩,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묵묵하게 치매 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신 씨는 지난 10월 2일 노인의 날 기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상을 계기로 치매 관련 유공 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신 씨는 현재 성동구 치매지원센터에서 활동하는 5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 중 가장 오래된 봉사자다.
회상치료, 양말 공예 수업 등 봉사 나눔
신옥분 씨가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성동구치매지원센터에서는 치매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미술치료, 음악치료, 원예치료 등의 프로그램이 있는데, 신옥분 씨는 회상치료와 양말 공예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회상치료는 치매 환자들이 과거의 기억만 가진 경우가 많은데 말벗이 되어서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10년 동안의 노하우가 쌓여서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 능숙하다.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 뇌의 활동을 자극시키는 원리예요. 아무 반응을 안 보이시다가도 연애 이야기 들려달라고 하면 얼굴이 발그레해지면서 이야기를 해주세요. 어르신들께 언제가 행복했는지 물어보면 결혼해서 첫아이 낳았을 때가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한 덕에 기억에 남는 일화도 많다. 가정방문 봉사를 할 때, 자신을 기억하고 또 와달라는 말을 해주는 어르신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양말 공예 등 만들기 수업을 하면 가족에게 선물하겠다고 가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곤 한다. 물론 힘든 순간도 많다.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다가도 갑자기 돌발행동을 하실 때가 있어요. 연필을 던지면서 ‘니가 뭔데 나를 가르쳐’라고 욕을 하시거나 제가 당신을 죽이러 왔다고 소리치시기도 해요. 그럴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크죠.”
그래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호흡 한 번 크게 쉬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어르신들을 대하게 되는 것을 보면, 봉사가 자신과 맞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치매 노인들이 하는 행동은 어떤 돌발행동이라도 다 이해가 된다.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한 10년 전에는 치매라는 단어도 잘 몰랐어요. 요즘은 인식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예전부터 이렇게 프로그램이 잘 운영됐다면 어르신들과 가족이 힘이 덜 들었겠다는 생각을 해요. 요양원에 가기 전 단계가 가장 힘들고 혼란스러운 시기거든요.”
신옥분 씨는 앞으로도 치매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만큼 책임감도 느낀다. 신 씨는 치매에 걸렸는데도 집에 있는 분들을 발굴하는 데 힘쓰고 싶다고 한다.
“좋은 프로그램이 마련된 치매지원센터가 있다는 것을 홍보하고, 더 많은 분을 센터 이용자로 발굴할 생각이에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받으시면 좋잖아요. 요즘은 치매 환자뿐 아니라 가족들을 위한 제도도 잘 마련돼 있어요. 가족의 애환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거든요. 가족을 위한 심리상담 등 프로그램이 구성돼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치매지원센터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상을 받았지만, 신옥분 씨는 평소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노인복지관에서 점심식사 자원봉사도 하고, 교회에서 하는 다양한 봉사에도 참석한다. 주로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봉사다. 봉사하고 나서 얻는 뿌듯한 마음이 자신을 쉼 없이 봉사의 길을 걷게 하는 것 같다고 신 씨는 말한다.
“‘그 시간에 돈을 벌면 얼만데’라고 말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저는 봉사활동을 통해서 얻은 것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저도 같이 즐겁고 행복해지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늙잖아요.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대하면, 좀 더 좋은 환경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자원봉사자들도 많이 늘어나서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치매 국가책임제
고령사회를 맞아 증가하는 치매 질환을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겠다는 정책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강조해온 국정과제다. 정부는 치매 국가책임제를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히고 치매관리 인프라 확충, 환자 및 가족의 경제부담 완화, 경증 환자 등 관리 대상 확대 등의 정책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예방부터 관리, 처방, 돌봄 등 전반적인 치매관리 시스템을 수립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구체적인 주요 내용은 치매안심센터 전국 확충, 인지기능 검사 강화, 치매 의료비 및 요양비 부담 완화, 장기요양 서비스 확대 등이 있다.
임언영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