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은 천륜이라 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역시도 노력 없이는 이어지기 힘든 인연이다. 혈연 관계이든 사랑으로 맺은 인연이든 노력이 수반돼야 하는 것은 똑같다. 사랑으로 천륜을 맺은 인연이 입양이다.
▶ 김원득 중앙입양원 원장은 입양은 무엇보다 아이의 행복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말한다. ⓒC영상미디어
작년 한 해 입양아동이 잇따라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대구에서 데려다 키운 세 살짜리 여자아이가 양부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경기 포천에서는 양부모가 입양한 여섯 살 여자아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어린 생명이 목숨을 잃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자 입양가정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입양아동이 더 이상 불행한 일을 겪지 않도록 2016년 가사소송규칙과 아동복지법 시행령에 ‘입양부모 교육’ 규정이 추가됐다. 개정된 법에는 아이를 입양하는 부모는 입양부모 교육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입양부모 교육은 올해 4월부터 수원·청주지방법원의 시범교육을 거쳐 10월부터 전국 법원에 확대·실시되고 있다. 입양부모 교육이 정착될 수 있었던 데는 중앙입양원의 역할이 컸다.
“작년 한 해 우리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던 이슈 중 하나가 아동학대와 관련된 사건이었어요. 그중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두 건이 입양아동의 사망 사건이었죠. 중앙입양원은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작년 10월부터 법원행정처, 보건복지부와 함께 부모교육제도 도입을 위해 수차례 협의를 했습니다. 워낙 사안이 시급한지라 무엇보다 조속하게 제도가 시행되는 것이 우선이었어요. 그래서 당시 국회 승인을 거쳐 특별법으로 통과가 됐어요. 이제 입양을 원하는 가정은 아이를 입양하기 전 반드시 이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입양부모 교육의 내용, 시행 시기, 강의 방법은 중앙입양원이 직접 참여해 결정했습니다. 내년부터는 입양가정뿐 아니라 부모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수강할 수 있도록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에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입양이 시작된 것은 1950년대부터다. 6·25전쟁이 끝난 후 수많은 전쟁고아가 생겼다. 이들을 유럽이나 미국 등 해외 각지의 새 가정에 연결해주면서 입양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 후 70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나라 입양은 아동에게 가족을 찾아준다는 인식보다 가족구성원이 새로 생긴다는 인식이 강했다. 얼핏 보면 그 말이 그 말처럼 들리지만 엄연히 주체가 다르다. ‘아동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입양’은 무엇보다 아이의 행복이 우선이다. 아동중심의 입양은 아이가 가족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충분히 사랑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아이가 자랄 집안의 부모를 검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입양특례법상 입양 대상은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요(要)보호아동입니다. 이 아동이 건강한 가정, 좋은 부모를 만나도록 하는 것이 입양의 핵심이죠. 왜 입양을 결심했는지, 또 다른 가족은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아동학대 범죄 경력은 없는지 등 꼼꼼히 확인해야 하죠.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데 길게는 1년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엄마가 임신을 해서 출산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비슷하죠. 결국은 출산이든 입양이든 아이가 가족구성원이 되려면 그만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입양은 아동의 행복과 이익이 최우선
입양을 결심한 가정은 저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다. 난임으로 아이를 갖기 힘들어 입양을 결심한 부부가 있는가 하면 자녀가 성인이 된 후 늦둥이를 보려는 마음으로 입양을 하는 50대 부부도 있다. 또 이미 자녀를 키우고 있는 가정에서도 입양을 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이유로 입양을 결심했든 입양으로 가정을 이룬 집안은 여느 가정 못지않게 행복하게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언론 등을 통해 접하는 입양의 어두운 면은 사실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 전 제주도에 사는 입양가족 중 ‘꼬마 동화작가 전이수 군’ 가족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수에게는 장애를 입은 동생이 있는데, 이 아이가 입양아동이에요. 이수는 엄마 배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동화책을 쓴다고 하더라고요. 남들이 보기에는 특별한 사연을 지닌 동생이지만, 이수에게는 자기랑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평범한 동생인 거죠. 이수네 가족 이야기를 보면 입양가족을 색다르게 보는 시선 자체가 편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다른 가정보다 입양가정에 눈길이 한 번 더 가는 게 현실이에요. 이런 인식을 개선하는 데 힘쓰는 것도 중앙입양원이 해야 할 일이고요.”
입양 이후 각 가정이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지를 보면 보통의 가정과 비슷하다. 아이가 말썽을 부려 속이 상하기도 하고, 말도 없이 학원을 빠져서 화를 자초하기도 하고, 부모를 위해 집안일을 대신하거나 애교를 부리는 등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이다.
하지만 입양이라는 특수한 사례 때문에 아이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입양가정은 이런 문제를 공유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의 속사정을 털어놓기도 한다.
중앙입양원은 이런 경우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입양가족 한마음 대동제, 입양가족 역량 강화 프로그램, 국내 입양가족 심리치료캠프, 부적응 입양가족 사례관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사후관리에도 힘쓰고 있다. 해외로 입양된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외 입양인도 사후서비스를 받는다. 국외 입양인 사후서비스는 재외공관과 국내 민간단체를 통해 이뤄진다. 국외 입양인 단체 지원부터 모국어 연수, 모국 생활 지원, 국외 입양 관련 세미나 개최 등 국외 입양인이 정체성을 찾는 데 한몫하고 있다.
국외 입양인은 성인이 된 후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 모국을 방문하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 해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국외 입양인은 3000~40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기록물을 관리한다. 입양 관련 각종 서류나 자료 등 공적기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영구보존하는 데 힘쓰고 있다. 국외 입양인들이 겪는 문제 중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 시민권이나 비자 발급 문제다.
김 원장은 최근 스웨덴으로 출장을 갔다가 한 국외 입양인을 만났다. 그는 출생 국가가 한국인 것은 분명한데 출생 지역을 몰라 미국 비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가 겪고 있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중앙입양원 직원들이 입양인의 흔적을 찾아 역추적에 들어갔다. 결국 서울 청량리역 근처 모 파출소에 신고된 이력을 찾아서 그가 입양된 지역을 찾아냈다. 중앙입양원의 노력으로 그는 스웨덴으로 입양을 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을 드나들 수 있는 비자를 발급 받았다.
“입양가족을 대하는 일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감수성이 중요해요. 부모 자식 사이는 천륜이라고 하잖아요. 사랑으로 맺어진 천륜이 더 좋은 인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국회에서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이 비준되길 기다리고 있어요. 비준절차가 끝나면 지금보다 입양 자격 여부를 검증하는 절차가 엄격해지고 우리 책임도 막중해질 겁니다. 헤이그 협약이 의미하는 ‘아동이익 최우선의 원칙’, ‘보충성의 원칙(입양으로 영구적인 대안양육을 제공)’에 부합하기 위해 실무작업에 매진할 계획이에요.”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