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설날부터 대보름까지, 노는 날 16일”
푸드 칼럼니스트 황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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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1월 1일 하루만 설날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통적으로 농경민족에게 설날은 일종의 봄맞이 행사였지요. 섣달그믐부터 대보름까지, 16일 동안이 설이에요.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그 흔적이 남아 있어서 먹고 놀고 마시는 행사가 많이 있었어요.”
경남 마산이 고향인 황교익의 어린 시절 설날 풍경은 16일 동안 놀았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설이 다가오면 크게 벌어지던 시장, 명절 전 푸짐하게 음식을 마련하고 그 음식을 동네 사람들과 교환하는 따뜻함이 넘치는 정겨운 풍경에 각종 재미있는 전통놀이까지 풍성했다.
“설날 아침에는 다 같이 모여 차례를 지내요. 큰집에 인사를 가고, 둘째 큰집, 할아버지 형제들 집까지 다니면서 하루 종일 절을 하고 보냈죠. 집집마다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그걸 먹는 재미도 대단했어요. 그다음 날부터는 동네 꼬마들끼리 모여서 놀기 시작하죠.”
팽이, 자치기, 연날리기 등 아이들끼리 모여서 놀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어른들도 합류해서 설날 분위기는 더욱 신명나게 바뀐다. 사람들이 늘어나면 널뛰기, 윷놀이 등 놀이의 규모가 커지고, 거기서 더 가속이 붙으면 줄다리기, 차전놀이 등 마을 단위의 놀이로 이어진다.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대보름날이다. 해마다 집 근처 무학산에서 달집태우기 행사를 크게 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훨씬 전부터 나무 쪼가리를 만들고 짚을 꼬면서 그날을 준비한다. 달이 뜨기 전 연날리기는 가장 인기 있는 놀이. 연싸움에서 이기려고 연줄에 사기나 유리 조각을 붙이며 밤을 새던 아이들이 특히 많았다.
“낮에 놀다가 대보름이 뜨면 하늘로 연을 날려 보내요. 그 행위에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를 붙이죠. 연을 날려 보낸다는 뜻은 놀이가 끝난다는 의미기도 해요. 노는 것을 마무리하면서 올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리면서 설날 행사를 끝내는 거죠.”
그렇게 16일 동안 완벽하게 놀고, 다음 날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상으로 돌아온다. 저마다 논밭에 나가서 밭을 갈고 소를 돌보면서 한 해 농사를 시작한다.
“어릴 때 기억과 원래 의미를 짚어보면 설날은 ‘16일 동안 노는 날’이에요. 산업화, 도시화의 결과로 이제는 그렇게 긴 시간 노는 게 힘들어졌죠. 한국 사회 전체를 위해 일 년에 한 번 크게 노는 축제를 한 번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설날 풍습이 사라지고 있는 게 아쉽잖아요. 형식이 아니라 정신을 복원하자는 마음을 모아봤으면 좋겠어요. ‘놀자’라는 정신을 살려도 괜찮지 않겠어요?”
그의 고향인 마산은 일본 사람들이 들어와 만든 도시다. 그는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인 마산에서도 설날의 기억이 다양한데, 예부터 내려온 전통 도시들은 더욱 많은 설날 행사가 있었을 것”이라면서 설날의 정신을 다시 짚어볼 것을 제안했다.
“부모님의 만화방에서 보낸 설날”
만화가 박재동
ⓒ조선DB
1960년대, 그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 만화가 박재동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설날을 떠올리면 바쁘게 일했던 부모님이 먼저 떠오른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이 만홧가게를 했어요. 떡볶이, 어묵, 풀빵, 찹쌀떡을 같이 팔았는데 그걸 준비하느라 엄마가 늘 바쁘셨죠. 특히 설날이 제일 바쁜 날이에요. 아이들 손님이 많거든요. 명절이라 어른들에게 용돈을 받으면 모두 만화방으로 오잖아요. 우리는 평소보다 일을 더 해야 해요. 다른 사람들은 명절이면 가족들과 함께 노느라 시간을 보내는데 나는 부모님이 바쁘셔서 그럴 수가 없었어요. 옆에서 일을 도와드렸죠.”
당시 열 살 무렵이었던 그는 명절에는 엄마의 일손을 거들면서 설날을 보냈다. 간단하게 떡국을 먹긴 했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예쁜 설빔을 입고 명절놀이를 하던 추억은 없다. 만화방을 운영하려면 차례를 지낼 여유가 없었다. 경제적인 여유도, 정신적인 여유도 없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어른이 되고 부모님이 장사를 그만두실 때까지 그의 설날 풍경은 그렇게 이어졌다.
“그 시절엔 나뿐 아니라 모두가 가난했으니까요. 나는 옆에서 어머니 풀빵 굽는 것도 도와드리고, 시간이 남으면 만화책도 읽고 그렇게 보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좀 짠하기도 한데, 다시 생각하면 평소보다 더 가까이에서 부모님을 도와드릴 수 있는 소중한 날이었죠.”
남들처럼 풍요롭진 않았지만 매년 돌아오는 설날이 그는 그렇게 좋았다. 해마다 설이 되면 그의 마음속에는 늘 아름다운 설날 풍경이 있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남다른 소질이 있던 그는 그림을 보면서 위안을 얻고 상상력을 펼쳤다.
“그때 내가 좋아하던 그림이 문방구에서 팔던 카드예요. ‘근하신년’이라고 적힌 연하장 카드 있잖아요. 그 그림을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어요. 은가루를 반짝반짝 붙여서 하얗게 눈 덮인 겨울을 표현하고, 근사한 기와집에 연날리기, 널뛰기 하는 아이들 그림, 눈사람까지…. 격조 있는 작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그 그림들을 보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아, 이게 설날 풍경이구나!’ 우리 민족이 수천 년 동안 만들어온, 가장 행복한 설날 모습이잖아요. 설날의 추억을 돌이켜보면 그 그림을 바라보며 동경하던 내 모습과 만홧가게에서 부모님 일을 거들던 내 모습이 동시에 떠올라요.”
비록 현실에서는 작은 만홧가게에서 엄마의 일을 도와주고 있지만 카드에 그려진 예쁜 그림을 보면서 위안을 얻었던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설날이 다가오면 마음이 설렌다. 이번 설날에도 그는 그런 기쁜 마음으로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러 갈 예정이다.
“어른이 되어서 보내는 설날도 좋아요. 세뱃돈을 주는 재미가 있잖아요. 이젠 아이들도 다 커서 세뱃돈을 주는 재미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설날이 주는 충만함이 좋아요. 그래서 늘 기다려져요. 저마다 설날의 풍경은 다르겠지만, 마음속으로 설날이 가진 명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길 바랍니다.”
“가난해도 꼭 챙겨 입었던 설빔”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
ⓒ박술녀 한복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박술녀 한복 매장은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다. 명사, 중견 연예인부터 아이돌 스타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 씨가 있기 때문에이다.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방문했을 때는 아이돌 두 팀이 한복 촬영을 위해 다녀가고 막 한숨 돌리는 중이었다.
“설날이 가장 바빠요. 방송을 통해서든 개인적인 관심이든, 젊은 사람들이 우리 한복을 찾아주니까 고맙죠. 요즘은 설날이라고 한복을 갖춰 입는 문화가 많이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우리 한복의 멋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한복 디자이너로서 34년을 살아온 만큼 한복의 멋을 잘 이어가고 싶습니다.”
충남 서천이 고향인 박술녀 디자이너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설을 떠올리면 가난하고 추웠다는 기억밖에 없다. 그리고 엄마에게 떼를 써서 받은 예쁜 설빔이 떠오른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어릴 때 한복을 해달라고 그렇게 울었어요. ‘설날인데 왜 안 해주냐, 예쁜 옷 입혀달라’고 주저앉아서 다리를 뻗고 울어대니까 엄마가 매우 힘들어하셨어요. 다른 형제들은 안 그런데 유독 제가 그랬어요. 그렇게 옷에 욕심을 부려서 저 혼자 예쁜 한복을 입고 명절을 보내곤 했죠.”
한복 디자이너의 끼를 타고난 것인지 어려서부터 옷 욕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원하는 것이 생기면 그것을 가질 때까지 떼를 쓰고 울음을 그치지 않았던 대단히 욕심이 많은 아이기도 했다. 빵집에서 일하던 오빠가 힘들게 번 돈으로 동생 옷 만들어 주라고 치마 천을 사다준 적도 있었다.
“어머니가 패션 감각이 있었어요. 없는 살림에 3년 할부로 재봉틀을 사서 우리 옷을 만들어주신 분이거든요. 큰딸 시집갈 때 선물하겠다고 미리 목자수를 만들어두실 정도로 솜씨도 좋으셨어요. 덕분에 저는 설날이면 예쁜 옷을 입을 수 있었죠.”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아버지와의 추억도 빠뜨릴 수 없다. 늘 조용한 성품의 아버지였지만 따뜻한 기억이 많다.
“아버지 역시 미감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지게 위에 매달아놓는 바자, 짚신, 광주리를 직접 손으로 짜서 동네방네 나눠주셨어요. 가난했지만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 이야기를 하면 아직도 눈물이 흐를 정도로 애틋하고 아련한 기억이다. 지금은 두 분 모두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은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예전에는 명절이 되면 어떻게 하면 옷을 더 예쁘게 입을까만 생각했어요. 지금은 매일 설빔이지만요. 제가 한복 디자이너인 만큼 일주일에 닷새 이상은 한복을 입으려고 노력합니다. 한복을 입고 있으면 행복해져요.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는 기분도 참 좋고요. 여러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과 함께 따뜻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우리 한복의 매력도 한 번씩 떠올려보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임언영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