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9월30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만난 구태모·김민정·이세주(왼쪽부터) 씨
빅테크 기업 갑질 잡은 공정위 ‘알파팀’
“2020년 6월 어느 날 송상민 시장감시국장이 우리를 부르더니 ‘세 분이 함께 이 사건을 맡아 한번 해보라’고 지시를 내렸어요. 공정위 조직에서 조사담당자마다 대개 크고 작은 사건을 세 건 이상 많게는 열 건도 혼자 맡아 동시 진행하는데 구글 조사 단 한 사건에 3명이나 투입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지요.”
지목된 사람은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 구태모(39·서기관)·김민정(33·사무관)·이세주(35·조사관) 씨다. 이들을 2021년 9월 30일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만났다.
앞서 9월 15일치 아침 신문마다 “삼성 갤럭시 운영체제(OS) 무산시킨 구글, 한국서 역대 최고 수준의 제재 받아” 등의 제목 아래 대서특필된 공정위 발표 기사가 있었다. 글로벌 거대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인 구글은 시장 지배적 지위를 바탕으로 모바일 운영체제(OS)와 애플리케이션(앱) 마켓에서 안드로이드 ‘파편화금지계약(AFA)’ 강제 체결를 앞세워 삼성전자·LG전자 같은 지능형 단말기(스마트폰) 제조사에 운영체제 ‘갑질’을 한 혐의가 인정돼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과징금 2074억 원을 부과 받았다.
구글 본사에 자료 제출 명령해 압박
1년 3개월가량 치밀하고 노련한 조사로 구글 갑질의 실상을 밝혀내고 이렇게 잡아낸 전모를 근거로 엄정한 법 집행(공정거래법상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사업 활동 방해, 경쟁사업자 배제 및 불공정거래행위)을 이끌어낸 이들은 ‘알파팀’으로 불렸다. 목표에 집중하는 탁월한 솜씨와 재능, 꼼꼼하고 열정적인 조사, 성취를 뒷받침하는 축적된 노하우 등이 팀 이름에서 느껴진다.
“내부에서는 우리를 알파팀이라고 불렀어요.”(구 서기관) 알파팀에 뽑히기 전에 김 사무관은 유통거래팀에서, 구 서기관은 카르텔조사국에서, 이 조사관은 전자거래과에 근무하면서 여러 불공정 갑질 현장에 대한 풍부한 실무조사 경험을 갖추고 있었다.
공정위가 이번에 시정명령을 내린 곳은 구글의 한국 유한회사 법인(구글코리아)에 국한하지 않고 구글 아시아 퍼시픽은 물론 구글 엘엘씨(LLC, 미국 본사 법인)까지 포함돼 있다. 구글(모기업인 ‘알파벳’ 기준)은 2021년 9월 30일 시가총액 1조 8070억 달러로 세계 4위고 2020년 연간 매출액(1825억 달러) 규모로 세계 21위다(〈포춘〉 글로벌 500).
이 조사관은 “거대 기업 구글 사건이라 파급효과도 크고 구글은 쟁쟁한 법률가·교수 변호인단을 고용해 방어하고 알파팀 3명으로 버거울지도 모른다는 중압감도 있었다. 하지만 구 서기관과 김 사무관 같이 워낙 빼어난 분들과 함께 노력해 좀 더 나아진 시장 거래 질서를 형성하는 쪽으로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김 사무관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무역통상 쪽 일을 하다가 공정위로 옮겨와 이번 큰 사건에 운 좋게 처음부터 뛰어들었다. 절박한 마음으로 끝까지 조사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보고서만 4070쪽 달해
구글 갑질의 전모를 잡아낸 이번 조사 결과 보고서는 무려 4070쪽에 달한다. 공정위가 2000년대 들어 주요 글로벌 사업자에게 내린 조처로는 2016년 12월에 처분한 퀄컴의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행위(과징금 1조 311억 원·대법원 소송 계류 중)에 이어 규모가 가장 큰 사건으로 꼽힌다.
이번 처분은 2016년에 공정위가 직권조사에 나선 지 5년 만에 나온 제재다. 구글의 중요 협력사이자 파트너 관계에 있지만 스마트기기 운영체제와 앱마켓 관련 파편화금지계약에서 상대적으로 ‘을’의 처지인 삼성전자 같은 국내 사업자로부터 조사 요청이 들어온 건 아니다. 구글이 강제 체결한 파편화금지계약은 2016년부터 유럽연합(EU)·터키·대만·러시아 등 각국 공정경쟁 당국이 들여다보는 이슈로 부상했다.
“2016년 7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구글의 시장 지배력 남용 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우리도 그때부터 국내에서 비슷한 거래 관계에서 혐의가 있는지 따져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팀 이전에도 공정위 안에서 이 사건의 기초 조사를 벌인 전임자들이 있었죠.”(구 서기관)
유럽연합은 2018년 7월에 구글의 시장 지배력 유지·남용 및 반경쟁 행위에 과징금 5조 6500억 원을 부과했다. 통상적으로 부과하는 과징금은 매출액을 기준으로 산출한다.
2016년 당시 전임 조사관들이 구글코리아에 현장 조사를 나갔을 때는 파면화금지계약 관련 자료가 없었다고 한다.
“2020년 6월에 우리 팀이 다시 구글코리아에 현장 조사를 나가서 보니 이제는 구글코리아의 역할이 커져서 그런지 삼성·LG 담당직원이 따로 있었고 관련 자료도 꽤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제조사가 기기 판매 전에 구글한테 사전 보고하고 승인받게 하는 등 부당한 파편화금지계약을 지키도록 철저하게 통제·검증하고 이행을 감시하는 활동을 한 증거를 구글코리아 관계자들 사이에 나눈 이메일 내용에서 찾아내기도 했습니다.”(김 사무관)
구글 거래 여러 ‘을’ 접촉 피해 사례 모아
알파팀은 조사 과정에서 구글에서 안드로이드 총책임자인 앤디 루빈이 발언한 대목과 관련한 상세 자료를 공정위에 제출하라고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구글 본사에 명령을 내렸다.
“‘안드로이드 포크(Fork) 기기를 단 한 대라도 내놓으면 모든 기기에 대한 플레이스토어, 구글 검색, 유튜브 등 구글의 주요 앱묶음(GMS) 라이선스를 해지하겠다’는 위협 발언을 구글 안에서 누군가가 했다는 대목을 유럽연합의 해당 사건 조사 결과 보고서에서 발견했어요. 실명은 안 나오고 구글 내부 직원들 사이에 오간 내용이라고만 돼 있었죠. 처음엔 구글이 공정위에 그 자료를 줄 수 없다고 거절했어요. 재차 공문을 보내 유럽연합과 협력해 그 자료를 제출받을 수도 있다고 압박하고 독촉해 결국 받아냈습니다.”(구 서기관)
그 발언의 주인공이 앤디 루빈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이 증거 자료로 파편화금지계약이 단순히 계약서류상으로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경쟁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차단하고 기기 제조사의 혁신 활동을 체계적이고 실제로 방해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
이 조사관과 김 사무관은 “구글과 거래하는 ‘을’ 처지의 여러 사업자와 연락을 취하면서 피해 사례와 ‘갑질’이 실행되는 실제 과정을 밝혀내는 일”에 집중했다. 구글이 강제한 파면화금지계약 때문에 사업에서 부당한 일을 겪은 기업은 삼성전자(스마트 시계 ‘갤럭시 기어1’)뿐 아니라 LG전자(스마트 스피커), 미국의 아마존(파이어 운영체제와 스마트 TV), 중국의 알리바바(알리윤 운영체제)도 있었다. 이번 사건은 경제·법리적 쟁점이 많아 치밀한 조사와 분석이 요체다.
“해외 거래 사업자들에게는 회사 대표 이메일을 찾아내 일일이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오지 않아 속을 태우고 막막한 심정일 때도 있었어요. 계속 두드리니 결국 알리바바에서는 대리인을 정해 사실관계에 대한 답변을 했고 점차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뚫리는 기분을 느꼈어요.”(김 사무관)
‘혁신시장 접근법’ 새 아이디어 활용
알파팀은 구글 갑질 논리를 더 정교하게 파헤치고 경제·법리적으로 구성·판단·적용하기 위해 ‘혁신시장 접근법’이라는 새 아이디어를 방법론으로 활용했다. 독과점적 시장 지위 남용과 불공정거래 행위를 규율하는 기법(구체적인 시장을 획정하고 그 안에서 시장경쟁 상황을 분석하는 전통 방식이 아니라 아직 출시된 상품·서비스가 없는 연구·개발 단계 산업의 잠재적 독과점과 혁신 활동 방해를 판단)으로 1990년대 이론적으로 등장했지만 실제로 이 접근법을 활용한 각국 경쟁 당국의 사례는 흔치 않았는데 이 조사관이 적용 사례를 샅샅이 연구했다.
“경쟁법 분야 학자들의 논문을 열람하는 일부터 출발해 이 접근법을 인용한 여러 사례를 모았습니다.”(이 조사관)
삼성전자의 반응은 어땠을까? 조사 결과 발표 이후 삼성전자에서 전화 한통이 왔는데 “그동안 고생 많이 해주셨다”는 짤막한 얘기만 했다고 한다. 구 서기관은 “(그런 신중하고 조심스러워하는 태도를 보며) 삼성전자조차 스마트기기 사업에서는 ‘을’의 자리에 있구나. 구글이 협상력 우위에 있는 글로벌 갑 사업자 지위라는 걸 여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알파팀은 이제 해체됐지만 할 일은 아직 남아 있다. “구글이 항소하면 다른 부서의 소송 전담 인력들이 사건을 맡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 조사를 맡아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우리가 협조자로 지정돼 도와야 할 거 같습니다.”(구 서기관)
글·사진 조계완 기자
공정위 시정명령 주요 내용은?
구글은 2011년부터 스마트기기 제조사들과 파편화금지계약(AFA)을 맺었다. 이 계약을 체결한 제조사는 모든 기기에 안드로이드 포크(Fork·오픈소스 형태로 공개된 안드로이드 소스 코드를 변형해서 만든 다른 운영체제)를 탑재할 수 없다. 삼성전자가 스마트 시계(갤럭시 기어1)에 적용했다가 구글의 압박에 포기했던 자체 개발 운영체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또 이 계약을 체결한 제조사에 한해서만 구글 플레이스토어 라이선스 계약, 그리고 안드로이드 사전접근권(최신 버전 안드로이드를 오픈소스로 공개하기 6개월 전에 미리 제공) 계약을 맺었다. 제조사 입장에선 이 계약 체결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던 셈이다.
이번 시정명령은 ▲국내에서 스마트기기를 제조·유통·판매하는 사업자(삼성·엘지전자 등) 및 해외사업자(대한민국에 공급되는 기기를 제조·판매하는 사업자)에 플레이스토어 라이선스 및 운영체제 사전접근권과 연계해 AFA 체결을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시정명령을 받은 사실을 상대방 기기 제조사(전 세계적으로 중소규모 회사를 포함해 약 5000개 기업으로 추산)에게 통지해 기존 AFA 계약을 시정명령 취지에 맞게 수정하고 그 내용을 공정위에 보고하라는 내용이다.
알파팀은 “구글이 우리 측으로부터 조만간 심의의결서를 송달받으면 집행정지신청 같은 법원 항소 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은 유럽연합의 제재에 이미 항소를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