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누군가를 무조건 좋아한 적이 있는가. 개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개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 반려동물 행동전문가가 됐다. 반려동물 행동전문가로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점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반려동물 훈련프로그램을 일반에 공개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 견주와 함께 반려견 교육을 하고 있는 이웅종 소장 ⓒ이웅종
처음 개 훈련사로 일했던 19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반려동물 훈련시스템은 폐쇄적이었다. 당시에는 내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면 빼앗긴다는 인식이 만연했다. 내가 반려견 훈련에 관심을 갖고 배울 때만 하더라도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다. 훈련소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소장이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배우거나 어쩌다 군견 훈련교본이나 외국 서적이 들어오면 숨어서 독학을 해야 하는 식이었다.
반려견 훈련을 배우고 우여곡절 끝에 반려견 훈련소 소장이 됐다. 그때 <수학의 정석>을 쓴 홍성대 상산고등학교 이사장이 훈련소에 진돗개 훈련을 맡기러 찾아왔다. 홍 이사장이 길렀던 진돗개는 텔레비전에 나오고 도그쇼에서 입상한 똑똑한 아이였다. 나무랄 점이 없을 만큼 훈련도 잘 받았다. 훈련 과정을 다 마치고 개를 돌려보냈다. 당연히 홍 이사장이 만족스러워할 것이라 여겼다.
며칠 뒤 전화가 왔다. 홍 이사장이었다. “우리 개가 교육이 제대로 안 된 것 같습니다.” 그 길로 이사장 댁을 찾아가 직접 훈련 과정을 보여줬다. 역시나 그 개는 기가 막히게 훌륭한 솜씨를 보였다. 홍 이사장에게 “이렇게 잘하는 애한테 못한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하니 그가 웃으면서 “평소 개를 훈련시키는 사람은 이 소장이 아니라 견주인데 개가 견주 말을 잘 들어야 제대로 된 훈련이지 않나요?” 하고 되물었다. 그의 말대로 반려견을 평소 교육시키는 사람은 견주다. 그때만 해도 반려견을 훈련하는 법을 견주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개가 집으로 돌아가면 여전히 말을 안 듣는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많았다. 홍 이사장은 “내가 가진 기술을 많은 사람이 알 수 있게 공유해야지, 숨기고 있으면 기술이 아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맞는 말이었다. 개와 일생을 동고동락하는 사람은 훈련사가 아닌 견주다. 개와 견주가 서로 원활하게 소통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개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훈련사만 알고 있는 것은 확실히 유용하지 못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선진국의 애견훈련 시스템을 공부하고 싶었다.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반려견 전문 훈련클럽 다섯 곳을 돌아보았다. 미국에서 애견을 훈련하는 광경은 차원이 달랐다. 입이 쩍 벌어졌다. 70명 정도가 모여서 세퍼트를 훈련시키고 있었다. 개들이 모두 목줄을 풀고 있어도 서로 싸우지도 않고 훈련하는 사람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꽤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퍼트를 훈련시키는 사람은 전문훈련사가 아닌 견주들이었다. 미국은 이미 견주에게 교육프로그램을 알려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한국으로 건너와 반려견 훈련프로그램에 견주교육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물론 걱정도 많았다. 견주에게 훈련프로그램을 공개하면 더 이상 훈련소에 훈련시킬 개를 데려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제일 컸다. 걱정은 기우였다. 견주가 “차렷”, “손 줘” 같은 간단한 훈련을 시킬 수 있게 되자 만족도가 높아졌다. 우리 훈련소에서 훈련 방법을 배워간 사람들이 주변 견주에게 입소문을 내 오히려 훈련을 문의하는 사람이 더 늘었다. 개를 전문적으로 교육시키려는 사람도 늘어 전문지식이 더 필요해졌다. 덕분에 개에 대한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했다.
반려동물 가구 1000만 시대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람은 늘었지만 아직 아이들을 제대로 사랑해주는 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사람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과거에 그랬듯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힘쓰고 있다. 반려동물과 사람이 갈등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나의 노력이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웅종│이삭애견훈련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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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