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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했던 어린 날의 가을은 각박한 삶에 밀려 기억 속에서조차 밀려나고 만 것일까. 그 황금빛 빛나던 가을의 풍경은 한순간 눈앞을 스쳐 지나가고 어렴풋한 잔상으로만 남는다. 그리하여 도회지 생활에서의 가을은 기껏해야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소매 길이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것이 되고 말았다.
애써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가을은 마당 한구석 혹은 신작로 한쪽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로부터 시작되었다. 채 가시지 않은 햇볕 속에서 고추는 바삭거리며 잘도 말랐다. 그때쯤이면 펑퍼짐한 산기슭 화전으로 일군 밭에서는 잘 여문 참깨 터지는 소리가 톡톡 들리고는 했다. 산그림자가 마을 앞에 누울 때면 이곳저곳 빈 논에서 볏단 태우는 연기가 노을을 타고 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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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의 곳간마다 옥수수며 고추며 호박이며 콩이며 온갖 알곡들을 담은 포댓자루가 늘어설 즈음이면 어느 날 돈 벌러 서울 갔다던 이웃집 삼촌 엉아 누나들이 한꺼번에 내려오고, 밥짓는 연기 따라 고소한 기름 냄새 진동하는 저녁, 마을 곳곳에서는 왁자지껄 술판 이야기판이 벌어지고는 했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덩달아 또래들과 어울려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다 문득 하늘을 보면 어느새 가마솥 뚜껑만한 대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다음날이면 추석, 한가위라고 했다.
기껏해야 아파트 화단 한구석에 무리지어 핀 코스모스나 어쩌다 점심시간 공원이라도 거닐다 만나는 낮게 나는 고추잠자리 한 마리에서나 가을을 느끼는 팍팍한 시절, 고향집 언저리에는 그때 그 모습처럼 가을이 남아 있을까.
어지러운 간판들 속에 섞인 ‘즐거운 고향길,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하는 현수막 글귀마저 마음을 들뜨게 하는 추석 귀성길, 국도변 아무 곳에나 고추며 벼를 널어놓았다고 짜증내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RIGHT]사진 권태균/ 글 이항복[/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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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