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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플러스>는 ‘아주 특별한 대화’의 두번째 주인공으로 하반기 국정 최대 이슈로 부각된 ‘쌀협상’의 사령탑인 허상만 농림부 장관을 선정했다. 평소 농정에 많은 조언과 애정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는 성진근 충북대 교수가 그의 말 벗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
지난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결과 쌀에 대해서는 매년 일정물량만 수입하는 특별예외조치(관세화 유예)를 인정받아 2004년 현재 우리나라는 국내소비량의 4%인 20만5,000t만 의무수입하는 실정이다. 10년간 허용된 유예기간도 올해 만료됨에 따라 우리나라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올해 말까지 각 국가들과 쌀협상을 마무리지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UR 농업협정문 부속서에 관세화 유예의 지속 여부에 대해 2004년에 협상을 시작하고 끝내야 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농업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만큼이나 쌀협상을 추진하고 있는 허상만 농림부 장관의 심정도 무거워 보인다. 안으로는 쌀시장 개방 확대에 대한 농민과 시민사회단체의 우려의 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고, 밖으로는 미국·중국을 비롯한 쌀 수출국들의 시장 개방 압력이 날로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리아플러스>는 2004년 하반기 국정 최대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쌀협상 문제를 비롯해 우리 농업 전반에 걸쳐 제기된 현안에 대한 허 장관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 9월9일 과천 정부종합청사를 찾았다. 이 자리에는 10년 전 UR 협상단 대표로 참가하는 등 농업문제에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성진근 충북대 교수가 동행해 약 1시간 30분에 걸쳐 허 장관과 열띤 대담을 벌였다.
허 장관은 “수확을 앞두고 태풍 피해가 크지 않아 다행”이라고 운을 뗀 뒤 “오늘은 교수님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다”며 성 교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성진근: 중요한 시점에 이렇게 다시 뵙게 돼 반갑습니다. 우선 지난해 7월 취임한 이래 벌써 1년을 훌쩍 넘기고 농림부 수장으로서 부처를 잘 이끌어 오신 점 축하드립니다.
허상만: 농림부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이 11개월3일이라는데, 그러고 보니 저는 그 수명을 넘겼군요.(웃음)
성진근: 제가 UR 협상에 참여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올해로 쌀의 관세화 유예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쌀협상이 농업계 최대 현안인 것 같습니다. 협상을 진두지휘하는 입장에서 협상국의 요구에 대해 국익도 지켜야 하고 그들의 요구도 일정부분 받아들여야 할 텐데, 이를 풀어가기가 여간 힘들 것 같지 않습니다.
허상만: 그렇습니다. 관세화 유예 연장 조건으로 내놓은 협상 상대국의 입장은 우리와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요.
[B]관세화 유예 위해 일정한 양보 불가피[/B]
성진근: 문제는 상대국이 우리 정부의 10년 관세화 유예 제안을 과연 또 받아들이겠느냐는 겁니다. 받아주면 좋지만 현실성이 다소 결여돼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허상만: 관세화 유예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말씀하신 것처럼 상대국이 수락 가능한 수준의 양보가 불가피합니다. 유예 연장 조건으로 상대국이 요구하는 짧은 유예기간과 높은 수준의 의무수입물량, 소비자 시판과 민간 수입 허용 등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성진근: 일본·대만 등은 이미 관세화 전환을 마쳤습니다. 정부의 입장은 관세화 유예를 관철한다는 것이지만 한편에서는 관세화가 더 유리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허상만: 모두 각각 장단점이 있어 어느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먼저 관세화 유예시에는 합의된 의무수입량만 수입되므로 연도별 쌀 수입량이 예측 가능한 장점이 있는 반면 관세화 유예 대가로 상대국의 과도한 요구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유예기간 중에도 쌀의 잠재적 관세는 지속적으로 감축되어 유예 조치 종료시 우리 농업에 주는 충격이 더욱 커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한편 관세화시에는 과도한 의무수입량 증가는 피할 수 있지만 국제가격과 환율 변동, 관세 감축 등에 따라 수입량이 급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복잡한 변수를 감안해 다각적이고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합니다.
성진근: 쌀협상이 어떻게 결론나든 쌀시장 개방 폭은 확대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농가소득은 감소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농민단체들은 ‘선 대책 후 협상’을 주장하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어떤 복안이 있습니까.
허상만: 정부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농가소득이 보전되도록 하기 위해 직접지불제를 내실화하고 확대해 실질적인 농가소득 안전망을 구축할 작정입니다.
성진근: 정부의 농가소득 보전 대책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일 것 같은데요. 여기서 경쟁력이란 단순히 가격경쟁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품질, 서비스, 거래 등의 분야에서 총체적인 농업경쟁력이 돼야 할 것 같고요.
허상만: 동의합니다. 우리 농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규모화’가 필요합니다. 2010년까지 6ha 수준의 쌀 전업농 7만 가구를 육성할 계획입니다. 또 축산업은 가축 방역과 품질 고급화에 역점을 두면서 축산 전업농 2만 가구가 축산의 85% 이상을 담당하도록 할 계획이고요.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고품질, 친환경 농업도 적극 육성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이력추적제, 위해요소 중점관리제도, 우수 농산물 관리제도와 같은 제도적 장치도 개선해 나가고 있습니다.
성진근: 전업농 육성도 중요하지만 그렇지 못한 중소농에 대한 보완 대책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우리 쌀농가의 44%가 0.5ha 미만 아닙니까. 이런 현실에서 정부의 경쟁력 향상 정책 대상에서 탈락하는 이들은 박탈감이 커질 수 있습니다. 또 반대로 1.5ha 이상 농가를 대상으로 전업농을 육성하겠다는 것인데, 이들 중에서도 그 대상에 포함되기를 원치 않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상황이 예상되는데요.
허상만: 옳은 지적입니다. 우리 농촌이 앞으로 전업농 7만 가구만 있고 나머지 농가는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중소농을 위한 나름의 대책은 정부가 이미 세워놓고 있습니다. 지난 2월 발표한 ‘농업·농촌 종합대책’에서 정부는 향후 10년간 농업·농촌 부문에 119조 원의 투·융자를 약속했습니다. 이 대책에는 전업농 중심의 농업구조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탈락하는 농가에 대한 지원대책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B]119조 원 투·융자로 농촌 체질 개선[/B]
성진근: 7만 가구 전업농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선 농지 유동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농지유동화 과정에서 유동화의 필요성 때문에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엉뚱하게 농지로 보존될 가치가 높은 지역, 가령 도시근교의 환경적 가치가 높은 농지 등이 자꾸 난개발되는 일은 벌어지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허상만: 우선 농지 유동을 촉진할 농지은행 제도를 도입하려고 합니다. 농지은행을 통해 농지유동화 정보 제공 및 농지 매매와 수탁, 농지 비축 등의 기능을 강화해 농지시장의 안정적 관리와 수급 조절, 농업구조개선 촉진을 꾀한다는 계획입니다. 이 과정에서 예상되는 농지 투기 및 난개발 문제는 관계 부처와 협조해 대처할 방침이고요.
성진근: 지난 8월 초 WTO의 DDA 농업협상 기본 골격이 마련되지 않았습니까. 이를 살펴보면 우리에게 좀 심하다 싶은 위협 요인도 보이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정책적으로 잘 선택하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것도 보입니다. 협상에 임하는 정부의 입장이 있을 테고 또 이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농민의 입장도 있는데, 양자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기 위한 비책이 있습니까.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허상만: 현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하다 혹은 불리하다고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요. 문제는 앞으로 세부 원칙을 어떻게 협상해 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정부는 향후 협상 과정에서 우리와 입장이 비슷한 국가와 공동 대응을 통해 관세 감축 최소화, 관세 상한 설정 제한 및 저율관세 의무도입물량(TRQ: Tariff Rate Quota) 증량 최소화 등 우리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입니다.
성진근: 그동안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도 손해만 봤다는 농민의 피해의식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앞서 장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부의 119조 원 투·융자 계획이 차질없이 잘 이행돼야 할 것 같은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용할 계획입니까.
허상만: 우선 전업농 중심의 농업 구조로 재편하고 탈락농에 대한 보완 대책을 마련하는 데 향후 10년간 52조5,000억 원을 투자합니다. 또 농업 개방으로 인한 농가소득 하락과 경영 불안에 대비해 직접지불제, 재해보험을 확대하는 데 32조4,000억 원을 투입하고요. 마지막으로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농어민연금·건강보험 등 농촌형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교육·의료 등 복지 서비스와 농촌종합개발 등에 17조6,000억 원을 지원합니다.
성진근: 과거 UR 투·융자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고 농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투·융자 집행 평가 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또 정부의 농업 지원 계획이 너무 공급자 위주로만 돼 있지 않느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수요자 측면이 반영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허상만: ‘투·융자 심사·평가 시스템 혁신 방안’을 마련해 효율성을 제고하고 있습니다. 또 신규 사업을 도입하거나 결정하는 단계에서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시·군 농업인의 의견도 수렴하고 있고요. 매년 사업의 성과를 평가해 성과가 없거나 비효율적 사업은 구조조정하고 효율적 사업으로 재원 분배를 확대하도록 할 작정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현장에 가 보니 여전히 과거 1970~80년대 농어촌 개발 당시의 사고방식 속에서 사업이 진행될 우려가 있음을 느끼게 돼 좀 안타까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가령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에 10년 간 7조 원이 들어가는데 올해와 내년에 개발 권역으로 지정된 36개 지역 중 일부는 이 사업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무조건 도시처럼 개발하려고만 합니다. 각 권역의 지리적, 인문적 특성을 살려 내실 있게 개발하기 위해서는 더 보완해야겠지요. 수요자 측면을 지적해 주신 것은 잘 참조하겠습니다.
[B]농협 스스로 못하면 정부가 개혁 요구[/B][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
성진근: 추곡수매 문제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습니다. 농림부는 추곡수매가 결정의 국회 동의제 폐지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습니다. 이는 공공 비축제 도입의 법적 근거가 될 것으로 보는데요. 공공 비축제라는 것이 과거 정부미를 연상케 해 쌀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최근 제가 중국에 가서 쌀 비축 시설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냉장저장하는데, 2년간 쌀의 품질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허상만: 우선 DDA, 쌀협상에 따라 불가피하게 국내보조금 감축과 쌀시장 개방폭 확대라는 여건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수매 제도를 개편하려는 것이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취지입니다. 또 추곡수매 국회 동의제 폐지 검토는 변화하는 시장상황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농업인이 우려하는 쌀값 하락에 대해서는 직접지불제 확대를 통해 경영안정을 기해 나갈 것입니다. 공공 비축제가 쌀 품질 하락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부분은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SET_IMAGE]5,original,left[/SET_IMAGE]성진근: 농업인들의 농업협동조합 개혁에 대한 요구도 많습니다. 사실 농협 개혁은 오래된 이슈 아닙니까. 그만큼 어려운 숙제인 것 같습니다만.
허상만: 농협은 자율단체이므로 스스로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농협도 이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농협이 주인인 농업인의 의사에 반해 개혁을 소홀히 할 경우 정부로서도 강한 개혁 의지를 갖고 농업인들과 함께 개혁을 요구할 것입니다.
성진근: 마지막으로 쌀개방 문제 등 농산물 시장개방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는 농업인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죠.
허상만: 개방 확대가 불가피한 실정이지만 정부는 농업인의 소득 보전만큼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해나가려고 합니다. 또 119조 원 투·융자 사업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농업인 소득 보전에 중점을 두고 추진할 것입니다. 농업인들은 이런 정부의 의지를 믿고 함께 이 상황을 극복해 갔으면 합니다.
[U]<<인연 - 농촌 고민 나눠온 오랜 동반자>>[/U]
두 사람은 20여 년 넘는 세월을 학계에 몸담으며 우리 농업의 후진 양성에 열정을 쏟았다. 그리고 지난해 7월 김영진 전 농림무 장관이 사임한 직후 두 사람 모두 후임 장관 후보로 하마평에 올라 본의 아닌 경쟁을 벌인 적도 있다. 결국 허 장관이 사상 유례없는 ‘면접시험’을 통해 입각하게 됐다.
두 사람은 또 우리 농업의 운명을 좌우할 쌀협상과도 인연이 깊다. 성 교수는 올해 쌀협상의 전초전이었던 1994년의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 참여했다. 또 현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학자 26명으로 구성된 ‘쌀대책연구협의회’(회장 서울대 정영일 교수)의 일원으로 활동중이다.
허 장관은 UR 타결 이후 10년이 지난 현재, 올해 말까지 타결을 목표로 관련국들과 쌀 관세화 관련 협상의 사령탑을 맞고 있다. 지난 2월 초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안 표결을 앞두고 모 방송국 시사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진지한 토론을 가졌던 두 사람은 쌀협상이라는 국가 중대사를 앞둔 시점에 다시 만나 깊은 대화를 갖게 됐다. 농업 문제라는 공통의 화두를 가지고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각각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선 성 교수는 허 장관에 대해 “학계에 오랫동안 몸담으며 우리 농촌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아온 만큼 그에 걸맞은 농정을 펴줄 적임자”로 여긴다. 또 허 장관은 성 교수를 그 누구보다 농촌의 현실을 잘 알고 정부에 이를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기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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