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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론에서 ‘한류(韓流)’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것은 불과 5년여 전. 한때는 잠시 부풀어 올랐다 금세 꺼질 거품이라는 냉소도 있었지만, 최근 한류는 당당히 주류를 형성해 동남아로,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 문화산업의 경쟁력에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류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일본에서도 지난해부터 ‘겨울연가’발(發) 한류가 불어닥쳐 일본인들의 한국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한껏 부풀려 놓았다.
일시적 거품이라며 냉대받던 한류가 오늘날 아시아를 아우르는 국제적 문화현상으로 자리잡고 우리에게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기까지에는 수많은 조력자가 있었다. 문화관광부 문화산업정책과에서 한류 정책지원을 담당하는 장사성 사무관(44)도 그 중 한 명이다.
정부가 민간 차원의 한류 열풍에 힘을 싣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10월. 중국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류열풍스타 대출전’ 공연이 국내 기획사 측의 문제로 무산되면서 중국 정부가 한국 공연을 무기한 불허하겠다는 방침을 세우자 정부가 한류에 대한 체계적 지원과 관리를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이다.
[B]문화 콘텐츠 개발 위한 법·제도 마련에 힘써 [/B]
“한류 전체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벌어진 뒤 정부도 팔짱만 끼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중국 정부의 공연 재개 승인을 얻어내기 위해 정부가 직접 안재욱·NRG 등 최고 한류 스타들을 이끌고 베이징 무료 콘서트를 기획했습니다. 2001년 4월 중국 중화세기단(中華世紀壇) 광장에서 열린 ‘한·중 슈퍼 콘서트’를 계기로 중국정부도 한 발 물러섰고, 한류에 대해 빗장을 과감히 열었습니다.”
당시 정부의 지원으로 베이징에서 유학중이던 장사성 사무관은 자연스럽게 이 콘서트 기획에 참가하면서 한류와 인연을 맺었다. 이를 계기로 귀국 후에도 부처 내에서 한·중 대중문화 교류 관련 업무를 전담하게 됐다.
“본래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아 1997년 정부 지원을 받아 유학했는데, 문광부 내에서는 제가 중국유학 1호입니다.”
장사성 사무관은 ‘한류 정책지원 담당자’라는 직책이 문광부 내에서 인기직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수년째 한류가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일로에 있지만 이를 전략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적 방안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류가 많은 매체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한류라는 것이 딱히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또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부분도 많지 않고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는 “한류 열풍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은 힘들다”고 실토한다. 정부 차원의 지원에 대해 중국·일본 등 관련 국가들의 견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란다.
“한류는 탄생부터 정부가 기획한 것이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인 만큼 정부는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보다 우리나라 영화·드라마·게임 등의 상품성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한류가 궁극적으로 문화 공동체 형성에 밑바탕이 됐으면 한다는 장사성 사무관. 그는 “한류가 우리 국민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잔뜩 고무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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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