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1,original,center[/SET_IMAGE]내년 1월 방송 예정인 드라마 <슬픈 연가>는 주연배우가 병역비리에 연루되면서 방영 전부터 뜻밖의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실제로 우리 방송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드라마로 꼽을 만하다. 국내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합작해 제작중인 이 드라마의 총 제작비는 70억여 원. 블록버스터 영화에 버금갈 만한 이 드라마의 제작비 절반 이상이 해외 조달로 이뤄졌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국내 시청자는 물론 해외시장 개척을 염두에 두고 기획, 제작한 드라마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국내 TV드라마는 국내 시청자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을 겨냥한 제작이 보편화하는 추세다. 그것은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시장을 비롯한 세계시장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른바 ‘한류(韓流)’로 불리는 새로운 문화현상에 대해 문화계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도 확대되고 있다.
이런 한류의 진원지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 드라마의 수출시장을 연, 말 그대로 ‘개척자’로 불릴 만한 박재복 부장(MBC프로덕션)이다. 그는 불모지에 가깝던 한국 드라마의 해외시장 개척을 처음 회사 측에 제안한 뒤 실제로 그 영토를 계속 늘려온 주역이다. 오늘날 한류열풍의 진원지로 꼽히는 한국 드라마의 중국 진출은 바로 그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B]드라마를 수출상품으로 처음 자리매김해[/B]
한국 드라마의 해외 수출 물꼬를 튼 첨병을 꼽으라면 <질투>(일본)·<사랑의 뭐길래>(중국)·<마지막 승부>(베트남)·<이브의 모든 것>(대만)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드라마 수출을 박재복 부장이 성사시켰다.
1992년 당시 대기업 종합상사 출신으로 MBC프로덕션에 몸을 담은 그의 첫번째 프로젝트가 우리 드라마의 ‘수출상품화’였다.
“당시에는 우리 드라마를 해외에 수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무했어요. 그때만 해도 방송 콘텐츠를 언론이라는 마인드로 접근했거든요. 그동안 종합상사에서 잔뼈가 굵어오면서 제 눈에는 드라마도 ‘수출용 상품’으로만 보였어요. 그래서 회사를 무역업체로 등록하고 드라마 수출을 개시했습니다.”
그가 처음 시장개척에 뛰어든 곳은 홍콩·대만·베트남 등 동남아시장이었다.
“첫해에 홍콩에 <사랑이 뭐길래>를, 터키에 <여명의 눈동자>를 팔았습니다. 그때 회사 사람들은 정말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을 정도였어요. 1980년대에도 방송 콘텐츠가 수출된 사례가 있지만, 대부분은 자료화면이 고작이었어요.”
드라마 수출의 이정표를 세운 그의 업무는 해가 갈수록 더욱 빛났다. 1993년에는 인기 드라마로 꼽히던 <여자의 방> <질투> <아들과 딸> <여명의 눈동자>와 94년 <마지막 승부> <폭풍의 계절>을 수출했다. 1995년에는 대만에 진출해 <여명의 눈동자>와 을 흥행시키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베트남에 <아들과 딸> <마지막 승부> 등을 수출해 중국에 앞서 한류열풍의 전선을 차츰 늘려 가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드라마를 한 편 수출하고 나면 어찌나 기쁘고 흐뭇하던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홍콩·베트남·대만을 통해 수출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곧 중국 진출 계획을 세워 나갔다.
“1990년대 초 중국이나 러시아는 우리에게 생소한 나라였어요. 그래서 이들 나라에 우리 드라마를 판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할 일이었어요. 하지만 대만·홍콩 등에 드라마를 수출하면서 중국시장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1994년 그는 만다린어로 제작한 프로그램 안내서를 들고 중국대륙으로 향했다.
“그때 쓰촨(四川)성에서 열렸던 쓰촨TV페스티벌에서 <질투>와 <여명의 눈동자>를 팔았습니다. 공식적으로 한국 드라마가 처음으로 중국에 팔린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의 불길이 본격적으로 타오른 것은 그로부터 3년 뒤. 1997년 중국 CCTV가 <사랑이 뭐길래>를 처음으로 중국 전역에 방영할 때였다.
“제가 CCTV 측과 <사랑이 뭐길래> 방영권 계약을 맺은 것은 1994년입니다. 더빙 작업을 하느라 방영이 2~3년 늦어졌던 거예요. 그런데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인기 드라마였던 <사랑이 뭐길래>는 중국에서도 평균시청률 4.3%를 기록하며 외화 시청률 순위 2위에 올랐다. 이후 <사랑이 뭐길래>는 한국 드라마 수출은 물론 한류열풍의 기폭제가 됐다. <사랑이 뭐길래> 수출에 얽힌 일화 하나.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
“방영권 계약을 위해 CCTV 인사들을 만났는데, 낮술을 하게 됐어요. 우리 쪽에서 참가한 사람들이 몇 안 돼 인원에서도 2대 8 정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술자리가 시작됐어요. 한 잔만 마셔도 목이 얼얼할 정도로 독한 술을 마셨는데, 중국 방송국 사람들이 거듭 건배 제의를 하는 거예요. 질 수 없다고 주는 대로 다 받아 마셨죠. 결국 호텔로 돌아온 뒤 응급실로 실려갔어요. 그 일이 있은 뒤 CCTV 사람들은 저의 열정을 인정했고, 조력자로 나서 주었습니다.”
그는 수출도 사람이 하는 것인 만큼 결국 사람 사이의 신뢰를 쌓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B]10년여 동안 4,500만 달러 수출 일궈내[/B]
1992년 이래 그가 적접 해낸 드라마 수출액은 무려 4,538만 달러. 웬만한 중소기업의 수출액을 뛰어넘을 정도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2000년 ‘무역의 날’ 수출의 탑, 2001년 한국방송대상 특별상을 수상했고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방송 콘텐츠 수출로 한국방송대상을 탄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저희 선배 세대는 방송 콘텐츠를 사오기만 했지 수출해 본 적이 없잖아요? 드라마 수출 면에서는 어느 나라를 가든 항상 제가 처음이라 그 일을 하는 데 사명감이 느껴지더군요.”
한류가 아시아 국가들에서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은 오늘, 한류 파이어니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류는 이제 에베레스트 등반으로 치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습니다. 지금부터가 더욱 중요하고, 할 일도 많습니다.”
그는 한류열풍을 더욱 확대하기 위한 훈수를 아끼지 않았다.
“문화 콘텐츠는 ‘승자 독식’ 원칙이 지배하는 시장입니다. 세계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해요. 국내 시청률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 최고의 방송 콘텐츠를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는 또 “하이 리스크 비즈니스인 영화에 비해 드라마는 어느 정도 수요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책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이런 선결 과제가 이루어진다면 당분간 아시아시장의 한류열풍은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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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