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1,original,left[/SET_IMAGE]광복 60년을 맞아 범정부 차원에서 '회갑잔치'준비가 한창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2월2일, 총리실 산하에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설치했다. 이해찬 총리와 함께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강만길 위원장을 만나보았다.
“지난 1995년의 광복 50년 기념사업이 ‘역사 바로 세우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60년 기념사업은 과거보다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난 2월2일 출범한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강만길 공동위원장은 사업의 의미를 “지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용서와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를 만나 광복 60년 기념사업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들어보았다.
-광복 60년의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광복 이후 60년의 역사가 20세기의 역사였고 또 분단시대의 역사였다면, 광복 60년 이후의 역사는 21세기 평화통일시대의 민족사가 되어야 합니다. 광복 60년을 그 분계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며, 거기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진정한 광복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 근대 민족사의 과제는 일본의 강제 지배에서 벗어나 통일된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분단문제가 해결되고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할 때 비로소 우리 근대사 이후의 과제를 달성하는 셈입니다. 일제 강점과 해방 후 문민독재, 군사독재시대를 거쳐오며 지체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평화통일을 진전시키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광복이라고 봅니다.”
[B]“과거 청산은 새로운 화해의 출발”[/B]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출범 배경을 설명해 주십시오.
“광복 60년은 60갑자의 회갑이 되는 해입니다. 되돌아보면 광복 10주년은 6·25전쟁 직후여서 의미 있는 사업을 하기 어려웠고 20, 30, 40주년은 군사독재 아래서 맞았습니다. 또 문민정부 때 맞은 50년은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행사를 벌이기는 했지만 대부분 역사 바로 세우기에 초점을 맞췄어요. 21세기 들어 처음 맞는 60년 행사는 그런 의미에서 역사 발전의 한 획을 그을 만한 의미가 있습니다.”
-추진하실 사업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기념사업회는 우리 역사의 과거·현재·미래를 포괄하는 사업을 준비중입니다. 그래서 60명의 전문위원을 중심으로 위원회의 조직을 ▷진실과 화해 분과 ▷평화와 희망 분과 ▷미래와 세계 분과 등 3개 분과로 나누었습니다. 진실과 화해 분과에서는 이름에서 나타나듯 과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 새로운 화해를 추구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를 위해 1905년 을사조약 이후 100년 간의 각종 학술사업에 대한 정리작업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또 현재를 상징하는 평화와 희망 분과에서는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 정착 및 동아시아의 문화교류사업 등을 추진할 예정이며, 미래와 세계 분과에서는 동아시아의 평화 및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사업들을 추진할 것입니다. 구체적 사업계획은 3개 분과에서 결정해 진행할 것입니다.”
-이번 기념사업추진위원회도 과거 청산 문제를 주요 과제로 선택했는데, 그동안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남의 강제지배를 받았던 민족사회이면서도 민족사회 내부와 대일관계에서 과거 청산이 제대로 안된 첫째 이유는 해방과 함께 민족이 분단된 데 있습니다. 다음은 문민독재와 군사독재가 계속된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과거 청산 문제가 중요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과거 청산이 제대로 되지 못하면 사회정의가 바로 설 수 없고 역사교육이 올바로 될 수 없습니다. 나아가 바른 방향의 역사 창조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것도 어렵죠. 따라서 비록 늦었다고는 하지만 과거 청산은 객관적 처지에서, 또 역사 발전의 방향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과거 청산 문제를 어떻게 정리할 생각이십니까?
“현재 친일파 조사를 다시 하자는 것과 독립운동사를 보강하는 정도의 논의가 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 앞으로 전문위원들과 논의해가며 방향을 정할 계획입니다.”
-국가보훈처는 3·1운동 86주년을 맞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54명에 대한 서훈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서훈도 과거 청산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을 단순한 사회주의운동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으로 볼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하지만 역사학계의 일반적 견해는 일제 강점기의 모든 사회주의운동은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이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표창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반면 이완용·송병준 등 일부 친일파 자손들의 재산반환소송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위원장께서는 친일파 자손의 재산반환소송에 대해 어떤 의견이십니까?
“이완용 등 친일파의 재산은 매국행위의 대가가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민족해방운동의 좌우익 전선을 막론하고 친일 민족반역자의 재산은 몰수한다는 정책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들의 재산을 몰수하지 못한 것도 과거 청산이 안 된 중요한 부분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가 아무리 사유재산을 보호한다고 해도 매국의 대가로 형성한 재산은 몰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
[B]“근대 학문 100년사 분야별 정리”[/B]
-남북 화해와 공동번영을 위해 북한과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의 문제는 어떤 통일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습니다. 전쟁통일을 할 것인가, 흡수통일을 할 것인가, 비전쟁 비흡수 평화통일을 할 것인가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전쟁 비흡수 평화통일을 하려면 적대하거나 대결이 아닌 화해협력을 통한 통일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핵 보유 선언 이후 북한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 문제도 전쟁을 위한 핵무장으로 보느냐, 아니면 체제 보장을 위한 핵무장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결 방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체제 보장과 화해협력, 공동번영은 크게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의미나 사업 규모로 볼 때 이번 기념사업에 대해 위원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우실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위원장직을 수락하시면서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신 것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위원장직을 거절했지만 꼭 역사학자가 맡아야 한다는 설득에 그만 동의하고 말았어요. 평생 우리 역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마지막 봉사하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욕심을 부려 본다면 우리 근대 학문의 역사가 이제 100년이 되었는데, 이 기회에 각 학문 분야의 역사를 총정리하는 사업을 했으면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라서 성사될지 의문이고, 사업에 대한 최종 결정은 분과별 위원님들의 몫입니다.” [RIGHT]오효림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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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분단-통일’로 대표되는 진보 사학자[/B]
1933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한 강만길 위원장은 1970년대 초반까지 조선왕조시대를 연구하면서 평범한 역사학자의 길을 걸었다. 1973년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그의 연구는 조선시대 상공업사에 집중됐다.
그의 역사관에 일대 변화를 가져다준 것은 1972년 7·4남북공동선언과 연이어 나온 10월유신체제의 성립. 그는 “7·4남북공동성명을 보며 남북 통일시대로 접어든다는 생각에 고무되었던 감정이 유신체제의 등장으로 큰 좌절로 바뀌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역사학자가 현실 문제에 손을 대는 것은 거의 금기시되었던 시절 민족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1978년 출간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은 ‘분단시대’라는 개념을 우리 사회에 처음 제기한 역작으로, 당시 지식인층과 대학생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는 8·15 이후를 ‘해방이후시대’로 규정했던 기존의 시대 규정을 벗어던지고 ‘분단시대’라는 새 화두를 끄집어낸 것이다.
“이 시대는 일제 침략에서 해방됐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분단되었다는 점에서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분단시대’라는 말을 통해 사람들에게 통일지향적 인식, 민족문제에 대한 자각을 심어준 것이 이 책의 성과라고 평가합니다.”
1980년 군사정권시대, 그는 고려대에서 해직된 뒤 <한국근대사>와 <한국현대사>(1984)를 출간했다.
이들 책은 시대사 개설서로는 처음으로 좌우익 운동을 통일국가를 지향한 하나의 민족해방운동사에 포함해 또 한번 학계에 충격을 던졌다. 이밖에 <한국민족운동사론>(1985)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1991) 등의 저서를 통해 그는 민족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방법론과 운동의 방향을 지속적으로 제시해 왔다.
학자로서는 드물게 ‘단계적 통일론’을 주창한 그는 개성공단 조성과 금강산 육로관광 등을 통일 과정이 아닌 평화정착 단계에 들어서기 위한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강 위원장은 국민의 정부 통일자문회의 고문, ‘민족화해협력을 위한 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등을 맡은 바 있고, 1999년 고려대에서 정년퇴임한 뒤 2001년부터 2005년 2월까지 상지대 총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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