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1,original,center[/SET_IMAGE]옹기종기 모여 앉은 초가집들은 탱자나무 울타리를 두르고, 산자락에는 대숲이 우거져 강보처럼 마을을 감싸고 어귀에는 느티나무 한두 그루가 서 있고…. 우리네 남도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어릴 적 대숲은 진기한 보물창고이면서도 그 음산함으로 경외의 대상이었다. 대낮에는 아지트를 꾸리고 칼이니 활이니를 공급해 주는 전쟁놀이의 병참기지였으며, 어쩌다 꾸중이라도 들을라치면 그 속에 들어가 쪼그리고 울 수 있는 위안처였다.
하지만 시원하게 들리던 바람소리가 귀신의 발자국소리처럼 들리는 해질녘이면 그 푸근하던 놀이터는 일순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대나무는 단지 방풍림이나 놀이터로 심은 것이 아니었다. 모든 물품이 부족하던 시절 일상의 용품들은 모두 대숲에서 나왔다. 우선 죽순은 귀중한 먹을거리였고, 잎은 동치미 등을 담글 때 함께 띄워 고래기(골마지의 전라도 사투리)를 방지하는 데 쓰였다. 물론 줄기야 작게는 젓가락이나 참빗 같은 소품부터 필통이니 소쿠리니 하는 생활용기는 물론 무더운 여름날 껴안고 자는 죽부인까지 새삼 거론하는 것이 불필요할 정도이고….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질기고 깔끔하면서도 값싼 플라스틱 용기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불과 몇십 년 만에 대나무는 우리 곁에서 거의 사라져 갔다. 이즈음에 와서 대나무는 고급 낚싯대나 쥘부채 등 호사품으로만 몇몇 남아 있을 뿐이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던 담양 죽물시장도 기억 속의 풍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에 따라 이제는 몇 군데를 제외하면 대숲마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몇 안 남은 대숲은 이제 지난날의 쓰임새를 버리고 도시인의 휴식처로 새로운 역할을 맡고 나섰다. 전남 담양군 금성면 봉서리의 대밭골도 그 중 하나다. 3만여 평의 산자락에 1만여 평의 대숲을 가꿔 그 사이로 산책길을 꾸며 놓았다.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산책로를 따라 느릿느릿 언덕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일상에 지쳐 날 선 심사는 어느덧 가라앉고 담담하게 새로운 내일을 맞을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다. [RIGHT] 글·이항복 / 사진·권태균 [/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