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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모두 잃고 고아가 돼 의료진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다섯 살 꼬마 살리토, 의식을 잃었던 아내가 정신을 차리자 의료진의 발에 입을 맞추며 고마워하던 사내…. 스리랑카에 잊을 수 없는 얼굴을 너무 많이 남겨두고 왔습니다.”
남아시아 지진해일 피해지역인 스리랑카 마타라 지역에서 의료구호활동을 벌인 비정부기구(NGO) ‘선한사람들’ 소속 의료봉사단 김이규(김이규산부인과 원장) 부회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12월30일 의사 5명, 간호사 3명, 방역 2명 등 20명으로 구성된 ‘선한사람들’ 긴급구조단을 이끌고 현지를 방문해 1주일간 구호활동을 벌이고 돌아왔다. 선한사람들 의료봉사단이 스리랑카를 방문한 것은 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4일 뒤로 현지에서 의료활동을 벌인 최초의 국제봉사단체였다고 한다.
“피해지역이 수도 콜롬보에서 150km 남짓 떨어진 곳이었는데, 그곳으로 가는 해안도로는 구호물자를 실은 차량과 피해지역을 방문하려는 인파로 뒤엉켜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자동차로 현지까지 들어가는 데만 꼬박 7시간이 소요됐습니다.”
[B]눈물 속 의료구호활동, 하루 60~70건 수술[/B]
스리랑카에서도 이번 지진해일의 최대 피해지역으로 꼽히는 남부해안의 마타라주는 전체인구 350만 명 가운데 무려 4만5,000여 명이 사망한 곳. 그 밖에도 실종자가 1만5,000여 명이나 되고 이재민도 6,000여 명에 이른다. 25만 달러 상당의 구호용품을 싣고 마타라에 도착한 의료봉사단원들은 폐허로 변한 도시를 보는 순간 경악했다고 한다. 해안가의 시설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도시에는 쓰레기더미가 가득 차 있었다. 뜻밖의 사고를 당한 주민들도 망연자실한 채 허둥대고 있었다.
“현지에 도착해 보니 간신히 시체만 치운 상태로 복구작업은 엄두도 못 내고 있더군요. 피해가 컸던 골 지역은 지진해일이 발생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시신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띌 정도로 참혹했어요.”
선한사람들 의료봉사단은 2,300여 명의 이재민이 머무르는 라울라 칼리지에 짐을 풀고 활동을 시작했다. 사고 이후 구호활동이 급수, 급식에 치중됐던 탓에 선한사람들의 의료 캠프에는 부상당한 현지인들이 몰려들었다.
“하루에 200~300명씩 진료했는데 정말 눈코 뜰 새가 없었습니다. 대부분 외상(外傷) 환자들이었죠. 제때 소독만 잘했어도 꿰매기만 하면 곧 나았을 상처가 깊어져 살이 썩어들어 팔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의료팀은 하루 평균 60~70건씩 수술해야 했다.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마타라 주민들을 치료하면서 봉사단원들은 수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주민들이 처한 상황이 너무 안쓰럽더군요. 정말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가족 전체가 몰살했거나 혼자 살아남은 사람도 허다했습니다. 마타라시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의 지역에서는 한 마을 주민이 모두 사망했다고 들었어요.”
현재 서울 흑석동에서 산부인과를 개원한 김 원장이 처음 의료봉사활동에 눈을 뜬 것은 2002년 10월. 오랫동안 종교활동을 하다 지인의 소개로 기독교계 NGO인 선한사람들에 가입한 뒤부터였다.
“선교활동을 하면서 제가 가진 의술을 통해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늘 생각했는데 방법을 잘 몰라 실천에 옮기지 못했거든요.”
선한사람들 의료봉사단에 가입한 뒤 그의 일상생활은 주7일 근무제로 바뀌었다고 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병원에서 일반 환자들을 진료합니다. 하지만 일요일에는 오전예배를 마친 뒤 오후에는 봉사단원들과 함께 장애인복지관이나 치매노인요양원 등을 방문해 진료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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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그가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는 기관은 정신지체자 및 노숙자 쉼터인 인천 배다니의집, 강화 은혜요양원 등 다섯 곳에 달한다. 매주 다섯 곳을 번갈아 방문한다.
하지만 개업의로서 매주 의료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더구나 해외 봉사활동은 개인적으로도 적잖은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B]일요일에는 복지관, 요양원 순회봉사[/B]
“스리랑카로 떠나기 전에 나름대로 많이 망설였어요. 오래 병원을 비우려면 입원 환자도 내보내야 하고, 예약 환자들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하거든요.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고 일일이 소견서를 쓰는 일도 쉽지 않더군요.”
선한사람들이 남아시아에 봉사단 파견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긴급의료지원단을 모집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사고 직후 곧바로 모집공고를 냈지만 지원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모집공고 조회 수가 수백 건을 넘긴 것으로 봐서 다들 마음은 있는데 현실이 여의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결국 제가 그동안 알고 지내던 원장님들 몇 분에게 연락을 취해 급히 의료단을 꾸렸습니다.”
현지에서 의료구호활동을 벌이고 돌아온 김 원장은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고 한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망설이겠지만 결국 다시 떠나게 될 것 같다”는 그는 “봉사활동은 단순히 누군가를 위해 베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얻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물질적으로는 손해볼 수 있겠지만 봉사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것인지 모르실 거예요. 많은 분들이 봉사활동을 계속 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깨달음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봉사활동은 책임감만으로는 계속 할 수 없다는 겁니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그는 또 “평소 봉사활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 의료사각지대가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면서 “더욱 많은 의료인이 봉사활동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올해도 진료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차상위계층을 위한 봉사활동을 더욱 늘려나갈 계획이다.
[RIGHT]오효림 기자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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