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1,original,center[/SET_IMAGE]‘소금 한 되에 쌀 한 말’이라는 말이 있었다. 사실은 소금값이 쌀값보다 더 비쌌던 시절의 말이다. 비싼 소금은 수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전통시대에 염세는 가장 귀중한 징세 수단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소금장수가 소금 한 가마니를 지고 마을로 들어오면 온 마을 아낙들은 박을 타 만든 바가지를 하나씩 들고 모여들었다.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쌀을 팔아 모아두었던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을 꺼내 시커멓고 알갱이 굵직굵직한 왕소금 한 바가지와 바꿔 들었다. 요즘은 쉽게 볼 수조차 없는 왕소금, 햇볕과 바람 그리고 바닷물로 빚은 천일염이었다. 특히 국내산 천일염은 온도와 바람이 적당해 식용으로 딱 알맞다고 한다.
소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단 두 가지. 한없이 퍼내도 마르지 않는 바닷물과 무한정 쏟아지는 햇볕. 여기에 바람만 있으면 된다. 그 어느 것도 돈을 들여 살 필요가 없다.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은 장삿거리는 없을 듯싶지만 문제는 사람이다. 또 다른 ‘막장’이라 불릴 만큼 일이 고되다 보니 3D업종이다 뭐다 하는 요즘 세태에 염전 일에 덤비는 사람이 없다.
더욱이 언제부터인가 눈처럼 하얀 기계염이 등장하고, 1997년부터 수입 개방을 시작해 1999년 완전 개방 이후 소금은 그야말로 ‘똥값’보다 더 싸졌다. 그에 따라 수많은 염전이 사라져 갔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염전 정책은 폐전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염전은 1,300만여 평. 10년 전과 비교해도 절반 가량으로 줄어들었다. 소금 자급률은 12%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수입염인 셈이다.
염전은 우리나라 서해안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소금이 돈이 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뙤약볕 아래 드넓은 소금밭에서 소금땀을 흘리며 하얀 소금을 캐던 염전의 풍경은 이제 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든 풍물로 남았다. [RIGHT]사진 권태균/ 글 이항복[/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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