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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개방교도소에는 담장이 없습니다. 수형자가 교도소 밖으로 나가려고 마음먹으면 언제든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형자들이 그러지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담장을 없앨 수 있었던 것이죠.”
천안개방교도소에 대한 송두식(58) 소장의 설명이다. 그는 “수형자에 대한 이런 신뢰가 ‘담장 없는 교도소’를 지난 17년간 운영할 수 있었던 원천”이라고 덧붙였다.
송 소장은 지난해 2월부터 천안개방교도소를 이끌고 있다. 그는 그동안 법무부 장관이 일방적으로 임명하던 관례를 깨고 공모를 통해 인사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임명된 개방직 공무원이다. 그렇다고 그가 교도소 업무에 문외한은 아니다. 교회직 공무원으로 30년 가까이 근무했으니 전문가라고 해야 옳다. 교회직이란 교도소 안에서 이뤄지는 교육·교화, 종교, 문화 활동을 관장하는 직무를 말한다. ‘가두고 감시해야 하는’ 교도행정의 특성상 보안과 행정을 담당하는 교정직이 주류를 형성해 왔다. 그런 분위기에서 그가 교회직 출신으로 첫 교도소장에 오른 것이다.
[B]담장·철창·경비교도대원 없는 ‘3無 교도소’[/B]
전국에서 유일한 개방교도소인 천안개방교도소가 개청한 것은 1988년. 그때나 지금이나 담장과 철창, 경비교도대원이 없다는 3무(無) 원칙은 그대로다. 그러나 수형자의 성격은 시대 변화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다.
“개청 당시에는 장기 수형자로서 가석방이 가능한 모범수를 수용했습니다. 그러다 1994년부터 가석방 예정자 생활지도소로 운영됐죠. 가석방을 2개월 앞둔 수형자들을 대상으로 이곳에서 두 달간 사회적응 훈련을 시킨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했어요. 그래서 2002년부터는 과실범 전담 수용으로 기능을 전환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송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천안개방교도소는 현재 ‘전과 3범 이하의 과실범 및 교통사범 중 5년 이하의 형기를 선고받고, 잔여 형기가 5개월 이상∼2년 이하인 수형자만 수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과실범 혹은 교통사범이라도 다른 전과가 있는 수형자는 대상에서 원칙적으로 제외된다. 이처럼 수형자를 과실범·교통사범으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이유는 이들이 개방교도소의 취지를 가장 잘 살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서다.
“과실범·교통사범은 다른 수형자에 비해 대체로 의지력이 약한 사람들입니다. 의지력이 있었다면 음주운전·무면허운전을 안 했겠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엄격한 통제와 구금이 아니라 자율 훈련입니다.” 송 소장은 “이곳의 생활 환경은 한마디로 일반 기업체의 연수원과 흡사하다”고 표현한다. 의식주를 철창이 쳐진 감방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다른 교도소와 달리 천안개방교도소는 침실·화장실·샤워실·식당이 각기 나뉘어 있다. 각 방에는 2층 침대가 2~6개씩 놓여 있으며, 각 침대에는 독서등이 있어 취침시간 이후에도 책을 읽을 수 있다. 각 방에는 TV도 있어 공중파와 17개 케이블 채널을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다. 방에는 또 잠금장치가 없어 다른 수형자의 방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생활관 현관에는 카드식 공중전화기가 있어 원할 때는 언제든 이용이 가능하다. 통화 내용도 물론 감청하지 않는다. 외부인이 면회 등의 이유로 교도소를 방문하면 칸막이가 없는 일반 접견실에서 입회 직원 없이 자유롭게 만난다. 전국 교도소 가운데 휴가자와 통근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곳도 바로 이곳이다. 현재 261명의 수형자 중 150명이 외부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송 소장은 “자율 못지않게 책임과 의무도 부여한다”고 강조한다.
“규율을 어겼을 때는 1차적으로 감점 및 경고를 주고, 그래도 시정되지 않을 때는 다른 교도소로 이송합니다. 이곳 생활에 익숙해진 수형자들에게 일반 교도소로 되돌아가는 것은 끔찍한 형벌이죠. 이 때문에 내부 규율을 어기는 수형자는 많지 않습니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개청 당시부터 자율과 책임을 원칙으로 한 곳이지만 지난해 송 소장이 부임한 이래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적잖이 일어났다. 대표적 예가 외부 통근 수형자에 대한 검신 제도를 없앤 것이다.
“담장을 없애고, 통근시 경비교도대원이 따라붙지 않는 것 모두 수형자를 기본적으로 믿기 때문이잖아요? 이렇게 믿음을 기본으로 같이 생활하는데, 외부에 나갔다 규정에 어긋나는 물품을 소지하고 들어오는지 검신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죠. 그래서 제가 그 제도를 없애자고 했어요. 그러나 직원들이 처음에는 선뜻 동의하지 않더군요. 예방 차원에서라도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송 소장은 “필요하다면 불시에 검신하면 되는 것”이라며 직원들을 설득했다. 작은 부분에서부터 수형자를 신뢰하지 않으면 큰 신뢰를 쌓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교통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다는 이유로 교도소 내에 흉물스럽게 전시되어 있던 사고 차량잔해와 교통사고 장면 사진들도 전부 없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미술 작품을 전시했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그가 또 심혈을 기울인 일은 교도소와 지역주민의 간격을 좁히는 일이었다.
“부임 후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우연히 인근 주민을 만났는데, 천안개방교도소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더군요.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요. 담장을 없앴다고는 하지만 지역 주민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담장이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죠.”
이후 그는 지역 단체장을 교도소로 초청하고, 교도소 체육대회에 지역주민을 초대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천안개방교도소는 지역주민의 생활 속에 ‘열린 교도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구금과 통제를 염두에 두면 개방교도소 내에서는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을 겁니다. 어렵다고 쉽게 포기하거나 안 된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수형자와 가족 입장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도록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한 예로 수형자들이 외부 업체에 출퇴근하는 것은 허락되지만 아직 종교생활을 위해 외출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종교 생활도 외부에서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RIGHT]오효림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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