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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보면 살맛이 난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는 늘 진한 감동과 향기가 묻어난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각박함을 덜고 온기가 넘친다.
“당신이 들고 있는 등불을 좀 더 높이 쳐들어 주십시오. 몸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의 앞길을 밝히기 위하여.”(헬런 켈러)
육근해 한국점자도서관장(44). 그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등불을 좀 더 높이 쳐든’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점자도서관장을 맡아 시각장애인의 문화·정보생활을 돕고 있다.
한국점자도서관(http://www.kbll.or.kr)은 육 관장의 아버지인 고 육병일 씨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점자도서관이다. 육병일 씨는 열 살 때 시력을 잃었다. 이후 책을 가까이 하지 못해 정보로부터 소외되는 시각장애인에게 누구보다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1969년 전 재산을 털어 점자도서관을 세운 것이다. 그때 쏟아부은 돈이 10억 원은 넘을 것이라고 육근해 관장은 전한다.
“아버지가 점자도서관을 설립하기 전까지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큰 부자였어요. 점자도서관을 설립한 후 전세도 부족해 월세를 전전했죠. 때로는 도서관 창고에서 살기도 했고, 보도블록을 쌓아 방을 만들어 살다 구청에서 철거하는 바람에 길에 나앉기도 했습니다. 참 힘든 세월이었지만 어머니나 형제 누구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1969년만 해도 국민 모두 헐벗고 굶주리던 시기였다. 정부에서조차 장애인의 처우 개선이나 복지는 생각지도 못할 때였다. 이런 때 외부에서 한 푼의 지원도 받지 않고 개인이 재산을 털어 이용자가 한정된 점자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도서관은 개관과 함께 곧바로 존폐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폐관 일보 직전까지 갔다 간신히 정부의 지원을 받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 이 도서관에는 1만9,016권의 점자도서가 있다. 또 녹음도서 1,134장, 전자도서 1만3,095권 등이 소장돼 있다. 시각장애인 전문 도서관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다. 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각장애인은 지난해 기준 매일 150명가량이다. 공휴일을 제외하고 월평균 3,600명꼴이다. 도서관을 직접 찾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택배나 우편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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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아버지가 국내 최초 민간 점자도서관 설립[/B]
“점자도서관은 시각장애인들도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곳입니다. 이를 위해 점자·녹음도서 등 다양한 특수 자료를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손끝과 귀로 정보를 얻어 지식정보화 시대에 뒤처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평생학습 기능도 합니다. 장애인이 사회적 지위를 갖고 비장애인과 똑같은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죠. 이런 점에서 도서관은 복지관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육 관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인복지 기반은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말한다. 다만 이들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적 마인드가 아직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의 복지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아요. 이제는 물질적 수혜뿐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문화복지’쪽에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합니다. 요즘 웰빙 바람이 거세게 부는데, 장애인들도 웰빙해야 행복해지거든요.”
육 관장은 “이제는 국가에서 점자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국가가 운영하는 도서관을 만들면 시각장애인이 더 양질의 문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육 관장의 생각이다.
“현재 지방의 점자도서관 실태는 너무 열악합니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책자도 만들고 있습니다만 예산이 부족해 어려움이 많습니다. 국가에서 도서관을 지어 점자책을 만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점자책은 일반 책에 비해 7~8배의 제작비가 들어갑니다. 민간이 이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찹니다. 저의 마지막 소망은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똑같은 값으로 책을 구입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한국점자도서관은 사단법인으로 정부 지원금과 각종 단체의 기부금, 후원회 후원금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체 후원금 등은 복지관보다 상대적으로 적다고 한다. 또 지원하더라도 지속적이기보다 단발성 이벤트에 치중하는 것도 아쉬운 점 중 하나라고 육 관장은 지적했다.
그는 “자원봉사든 금전적 지원이든 일상적 프로그램이 잘 가동되도록 꾸준한 것이었으면 좋겠다”면서 “필요한 것은 장애인을 보는 따뜻한 눈”이라고 말했다.
육 관장만 시각장애인의 ‘문화 길잡이’를 하는 게 아니다. 어머니 장순이(72) 씨는 고령임에도 법인 이사장을 맡아 매일 출근한다. 장 이사장은 사무실에 나와 점자책 인쇄하는 일을 도우면서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B]남편과 어머니도 함께 ‘문화 길잡이’[/B]
육 관장의 남편인 김기호(44) 씨도 직장에 다니다 그만두고 봉사의 길을 걷고 있다. 육 관장은 “결혼할 때부터 내가 하는 일을 잘 이해해 줘 고마웠는데 이제는 남편도 함께 가는 길을 택했다”며 “어쩌면 이것은 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숙명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육 관장은 원래 통계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꼭 이 길을 가야 한다”고 해서 선선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자신이 걷는 이 길에 대해 아무런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고 그는 말한다. 지금 육 관장의 오직 하나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장애인에게 좀 더 나은 문화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뿐이란다.
“장애인들에 대한 전문화된 서비스를 하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틈나는 대로 강의도 합니다. 제대로 된 점자도서관의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에는 허허벌판에라도 도서관을 짓는 자체가 목표였지만 우리 세대에는 달라져야죠. 그 도서관에 무엇을 채워 넣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버지가 뿌려 놓은 씨앗을 저희가 잘 가꿔야지요.”[RIGHT]윤길주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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