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1,original,center[/SET_IMAGE]
남도의 4월은 차나무 향기로 가득하다. 한반도의 땅끝 전남 해남의 산비탈에서는 한창 물이 오른 차나무들이 새순을 밀어 올리고 있다. 4월 초순 새로 돋은 찻잎으로는 ‘우전차’를 만들고 중순께 딴 찻잎으로는 ‘중작’을 만든다.
해남의 명산 두륜산 남쪽에서 9,000여 평의 차밭을 일구고 사는 오근선·마승미 씨 부부는 조금 남다른 농사꾼이다. ‘설아다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오씨 부부의 차밭은 차나무의 키를 맞춰 고르게 심어 놓은 여느 차밭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의 밭에서 차나무들은 풀과 나무, 돌멩이와 뒤엉켜 자란다. 가끔 개구리나 두더지도 눈에 띈다.
아침마다 차밭을 산책한다는 오씨가 오늘은 조금 색다른 산책로로 기자를 안내한다.
“차나무도 사람 같아서, 눈길을 많이 주면 잘 자라고 그렇지 않으면 잘 자라지 못해요. 오늘은 평소에 잘 가지 않던 길로 가야겠네요.”
차나무 아래에는 엉겅퀴·쑥·고사리·씀바귀·자운영 같은 잡풀이 자라고 있다. 오씨는 농약은 물론 화학비료도 주지 않고 유기농으로 차나무를 재배한다. 그래서인지 차밭의 흙내음도 향기롭게 느껴진다.
[B]차의 발상지에서 차문화도 함께 일궈[/B]
오씨 부부가 이곳에 차밭을 일구기 시작한 것은 9년 전. 고교 졸업 후 잠시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 지역신문 기자, 농민회 간부 등으로 일했던 오씨는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동료들과 함께 영농조합을 만들어 해남 간척지에 벼농사를 지었다. 11년 동안 쌀 경작을 통해 적잖이 돈을 모으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공동체가 깨지고 말았다. 돈이 벌리니 다들 생각이 달라진 탓이었다.
차 재배를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다. 쌀은 수확하고 난 뒤 팔면 그만이지만 차 농사는 다르다. 차나무를 손질해 차를 수확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한담을 나누면서 마음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 차 농사의 매력이다.
그의 고향이기도 한 해남은 더구나 한국차의 발상지인 일지암이 자리한 곳이다. 일지암은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가 기거하면서 한국차의 경전인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집필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차를 재배하는 일과 고향의 문화를 지키는 일이 모두 한가지라고 생각했다. 차밭을 가꾸면서 지역문화를 가꾸겠다고 부부가 결심한 것은 그 때문이다.
[B]판소리·풍물과 어우러진 차 맛은 더 일품[/B]
오씨 부부는 1년에 단 한 차례 찻잎을 수확한다. 이래서 나온 차가 ‘4월에 만든 차’다. 다른 차밭에서는 1년에 보통 대여섯 번 찻잎을 따지만, 그는 ‘1모작’으로 그만둔다. 그가 찻잎을 한 번만 따는 이유는 분명하다. “차나무를 더는 괴롭히기 싫어서”란다. 찻잎을 자주 딸수록 차나무는 온전히 자랄 수 없을 터이고, 나무가 괴로워하면 차의 맛도 자연히 떨어질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처음에 차나무를 심었을 때는 풀을 없애자고 매번 김매기도 했지요. 그래도 풀은 없어지지 않고 보란듯이 더 웃자라더군요. 차나무만 보살핀다고 풀을 억지스럽게 없애려고 했지만 말짱 헛일이었어요. 나중에는 아예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라고 내버려두는 게 해답이라고 생각했어요.”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차나무와 풀의 ‘더불어살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편들어 주기’가 고작이다. 차나무가 어릴 적에는 풀이 차나무의 성장을 막지 않도록 차나무 편을 들어주고, 차나무가 웬만큼 컸다고 생각할 때는 풀이 다 죽지 않도록 그쪽 편을 들어준다고 한다. 9년여 세월이 지난 지금은 그의 편애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차나무·풀·미생물들이 어우러져 잘도 살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가 만든 차는 유기농 재배 인증과 유기 가공 인증을 차례로 받았다. 저농약-무농약-전환기 유기농 단계를 거쳐 유기농에 이르게 된다. 유기 가공 인증은 제조시 일체의 화학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첨가물도 섞지 않아야 한다. 심지어 제조 과정에 쓰인 솥이나 수세미를 세제를 써서 빨아도 인증을 받지 못한다. 민간 인증기관인 ‘흙살림’으로부터 유기 가공 인증을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차 만들기는 찻잎을 따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초의선사는 찻잎을 따기 좋은 날은 ‘전날 밤 달이 떴던 그 다음날, 맑고 이른 아침’이라고 기록에 남겼다. 이렇게 딴 찻잎을 태우지 않을 정도로 가마솥에서 볶는 ‘덖음’ 과정을 거쳐 차가 완성된다. 차는 찌거나 가루를 내 만들기도 하지만, 한국의 전통 차는 이런 방식으로 만든 ‘덖음차’가 대부분이다.
[SET_IMAGE]3,original,center[/SET_IMAGE]
오씨의 집은 주말마다 차밭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의 집 주변에는 방문객이 기거할 수 있는 네 채의 별채가 따로 마련돼 있다. 오씨 부부는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며 차에 대한 이야기와 해남의 문화, 농사 등에 대해 밤늦도록 두런두런 이야기한다. 오씨는 이렇게 방문객 가족을 집으로 초대해 제다(製茶) 체험을 하면서 주말을 보내도록 한다.
저녁 시간에는 그의 집 문틈으로 남도 민요와 풍물 가락도 흘러나온다. 오씨의 아내 마승미 씨는 판소리와 장고의 명인들로부터 직접 사사해 각종 국악경연대회에서 입상 경력을 가진 국악인이다. 전문 다도교육을 이수한데다 전남 문화관광 해설가 자격증까지 갖춘 욕심 많은 아낙이다. 마씨는 설아다원을 찾은 도회지 사람들에게도 풍물을 가르치거나 판소리를 들려준다. 말하자면 설아다원은 단순히 차를 재배하고 차를 만드는 농장을 넘어 먹을거리에 판소리가 어우러져 남도문화의 맛을 만끽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설아다원을 찾은 사람은 모두 3,500여 명. 이들이 넉넉한 남도문화와 함께 만들어낸 차를 마셔 보고 차를 구입해 간다. 이들 부부는 만든 차를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사람에게만 판다. 이렇게 오씨 부부가 한 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3,000만 원 남짓. 웬만한 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오씨가 만든 ‘4월에 만든 차’는 향·맛·색, 세 가지 측면에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오씨 부부는 팔십 노모와 함께 울림·가람 두 딸을 키우며 산다. TV도 신문도 보지 않는다.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굳이 TV나 신문을 보지 않아도 세상에 대해 훤해지기 때문이다.
“차 농사를 하면서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사람들도 차를 마시듯 쉬엄쉬엄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세상이 더 좋아질 것 같아요.”
차와 자연과 사람과 더불어 사는 오씨 부부의 삶의 철학이다.
[RIGHT]김재환 기자[/RIGHT]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