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1,original,left[/SET_IMAGE]루 거스너는 1993년 침몰 직전의 거함(巨艦) IBM 회장에 취임해 9년 만에 회사를 연매출 860억 달러, 순익 77억 달러의 알짜 회사로 탈바꿈시킨 기업경영의 마술사다. 그가 IBM이라는 공룡회사를 적자의 늪에서 구해낸 것은 회사의 구조 자체를 하드웨어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10년 후 IBM을 떠나면서 그는 “명사육사는 코끼리도 춤추게 할 수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오영교(吳盈敎) 사장에게서는 불멸의 경영 신화를 남긴 루 거스너의 면모를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 그가 3년 전 KOTRA에 부임할 당시 KOTRA의 경영 성적표는 루 거스너가 침몰 직전의 IBM이라는 거선의 키를 잡았을 때와 흡사한 상황이었다. KOTRA는 기획예산처가 실시한 공기업 평가 고객만족도 부문에서 2000∼2001년 연달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기업에서 흔히 보이는 전형적인 중앙집권형 조직에 공급자 중심의 사업 추진으로 고객의 불만이 팽배해 일부에서는 ‘KOTRA 무용론’이 대두될 정도였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2001년 4월 산자부 차관 출신으로 KOTRA의 경영을 맡은 오 사장은 비대화된 KOTRA의 환부에 메스를 댔다. 36개 소팀제를 18개 대팀제로 전환하고, 본사 인력을 32% 감축하는 한편 현장 인력은 90명을 증원했다. 더불어 고객 수요가 적은 21개 사업을 폐지하고 중소기업의 수요가 높은 지사 사업을 대폭 확대했다. 해외사업은 9개 지역본부제로 통폐합을 단행했고, 다면평가제를 통해 만연하던 인사청탁도 뿌리뽑았다.
오 사장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 덕분에 KOTRA는 2년 뒤인 지난해 전체 공기업을 대상으로 한 경영평가에서 기관부문 1위, 사장부문 1위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어냈다. 이러한 평가는 해외로까지 이어져 지난 10월1일 세계무역기구(WTO) 산하 국제무역센터(ITC)가 주관하는 세계무역진흥기관회의에서 전 세계 최우수 무역 및 투자 진흥 기관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취임 3년 만에 공룡기업 KOTRA를 세계 최고의 기동성을 갖춘 조직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코리아플러스>는 지난 10월7일 국감 준비로 분주한 오영교 사장을 만나 그가 전력투구해 온 지난 3년 간의 혁신 ‘항해일지’를 다시 복기해 보았다.
[B]중소기업 고객 외면받는 KOTRA의 ‘구원투수’ [/B]
- 큰 상을 받으셨는데, 우선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상의 의미가 저한테는 남다른 감회를 줍니다. KOTRA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세운 목표가 3년 안에 KOTRA를 세계 최고 무역 진흥 기관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졌거든요. 지난 3년 동안 우리 기관이 벌여온 혁신의 결과를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는 게 무엇보다 기쁩니다.”
- 세계무역기구가 KOTRA의 어떤 점을 높이 샀다고 보십니까?
“평가 기준이 10가지 정도였는데, 그 중 KOTRA의 고객중심 경영과 성과관리시스템이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 3년 전 KOTRA를 떠맡았을 때 가장 크게 느꼈던 문제점은 무엇이었습니까?
“KOTRA는 그동안 우리나라 무역, 특히 수출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 온 조직입니다. 산업자원부에 있을 때부터 KOTRA의 중요성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조직이 비생산적, 비능률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고객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 있었습니다. KOTRA의 고객은 주로 해외 마케팅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입니다. 우리 중소기업의 해외 마케팅을 누군가 대신 해줘야 하는데, 그것을 대행할 수 있는 기관은 예나 지금이나 KOTRA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KOTRA가 서비스 당사자인 중소기업들로부터 외면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 KOTRA를 혁신하는 데 우선 순위에 두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KOTRA의 패러다임을 고객과 성과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KOTRA의 고객인 중소기업이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 수출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즉, 기업이 얼마만큼 수출을 많이 했느냐가 KOTRA의 성과인 셈이죠. 그래서 취임 후 제가 곧바로 성과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직원들의 평가 기준을 담당 기업들의 수출 성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과거에는 콘퍼런스에 몇 차례나 다녀왔는지, 고객을 몇 차례나 만났는지가 평가 기준이었거든요. 그리고 전 직원의 실적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직원들 스스로 등위를 확인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경쟁 시스템이 작동했습니다.”
- KOTRA의 혁신을 이끌어 오시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었습니까?
“공기업에는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해오던 관행을 존중하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죠. 성과관리 시스템 도입 이후 직원들 간의 선의의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거부감이 생기기도 했죠. 이런 반감을 수용하면서 직원 모두를 혁신에 동참시키는 과정이 무엇보다 어려웠습니다.”
- 직원들 사이에 적잖은 저항이 있었을 텐데요?
“있었죠. 노동 강도가 높아진 것에 따른 저항도 있었고. 무엇보다 연공서열이 아닌 능력에 따라 직무를 맡기다 보니 선임자가 팀원이 되는 경우도 생기고, 아래 직원이 팀장이 되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기존의 질서와 계급 의식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컸습니다.”
[B]정부투자기관에 처음으로 ‘연봉제’ 도입[/B]
- 그러한 갈등들을 풀어 나가는 데 묘안이 있으셨습니까?
“해법은 인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 모두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을 중용했지요. 또 일한 결과에 대한 성과보상을 철저하게 했습니다. 성과에 대한 평가를 공정하게 한 뒤 이를 인사에 반영하고, 경제적 보상도 해주었습니다. 그런 마당에 불평 불만이 계속될 수 없었죠. 또한 취임 이래 단 한 차례도 제 마음대로 인사를 결정한 적이 없습니다. 모두 객관적 지표와 다면평가를 통해 결정했죠. 매년 평가가 끝나고 나면 평가 지표에 대한 검증 절차를 거쳤고, 평가 지표에 대한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불만 사항은 다시 지표에 반영했습니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 공무원에게도 연봉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KOTRA도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나요?
“제가 취임한 2001년에 처음으로 팀장급 직원들의 연봉제를 도입했고, 2002년에는 전 직원에게 누진적 연봉제를 적용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차장급의 경우 개인에 따라 연봉이 최고 1,000만 원까지 벌어질 정도입니다.”
-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모델로 삼은 기업이 있었습니까?
“대표적 기업으로 삼성의료원과 에버랜드를 벤치마킹했습니다. 삼성 말고도 국내 기업 중 고객관리를 잘한다는 기업은 거의 다 둘러보면서 좋은 프로그램을 들여왔죠. 해외에서는 역시 GE의 잭 웰치가 경영혁신의 가장 좋은 모델이 되었습니다.”
- 해외 무역 투자 진흥 기관에서도 KOTRA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어떤 것이던가요?
“고객관리 시스템에도 주목하지만, 아무래도 성과 평가 시스템에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직원이 일을 하면 그 결과가 자동으로 평가 시스템에 입력되어 등수화되는 시스템에 큰 관심을 갖더군요. 또 서비스를 어떻게 지표화하는지, 지표화된 성과는 어떻게 자동으로 평가와 연결되는지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일본 JETRA는 이 부분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지난해에 4개팀이 와서 우리를 배우고 갔습니다.”
- 정부 혁신의 전도사로 통하시는데, 평소 생각하시는 혁신철학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혁신의 첫째는 기업의 기본 패러다임을 고객과 성과 중심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도 예외가 아니고요. 둘째는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고, 세번째가 경쟁 결과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것입니다. 단, 평가 결과는 반드시 인사와 경제적 보상으로 연결시켜야 하고요. 저는 이것만 확실하게 이뤄진다면 어떤 조직이든 혁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다른 공기업들도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데, KOTRA가 혁신에 성공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보십니까?
“혁신 초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CEO의 추진력입니다. 혁신은 CEO가 회사에 대한 위기를 분명히 인식하고, 전면에 서서 지휘할 때만 가능합니다. 일단 발동을 걸면 시스템 작동은 그다지 어렵지 않거든요. 그러나 그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구성원 모두를 혁신이라는 자동차에 올라타게 하는 것은 CEO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두번째는 KOTRA 구성원들이 다른 어떤 공기업 직원들과 비교해 봐도 자질이 우수하다는 것입니다. KOTRA에 들어오는 인재들도 뛰어나지만 수차례 해외 근무를 통해 시야를 넓히면서 부단히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제가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KOTRA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주창했을 때, 모두 그 위기의식에 공감하고 혁신에 동참해 주었습니다.”
[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B]직원 역량 극대화, 정보 네트워크화가 남은 숙제[/B]
- KOTRA에 남은 과제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해까지 시스템적으로는 혁신이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봅니다. 하드웨어는 갖춰졌으니 이제부터는 그것을 가동하는 사람들의 혁신이 필요한 단계입니다. KOTRA 구성원 개개인의 역량과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봅니다. 또 다른 과제는 정보화입니다. KOTRA는 현재 전 세계 74개국에 103개 무역관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네트워크를 가진 기관은 국가 공관 말고는 KOTRA가 유일합니다. 이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해 정보 수집 기능을 극대화하느냐가 남은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 KOTRA가 최근 역량을 집중하는 신규 개척 시장을 꼽으라면 어디를 꼽으시겠습니까?
“최근 들어 KOTRA가 가장 주목하는 곳은 인도 시장입니다. 인도는 10억 명의 인구를 가진 거대한 국가입니다. 몇 년 안에 중국 만큼이나 부상할 거대시장입니다. 정보통신기술(IT) 등 전문시장이 이미 성장기에 들어선 국가이기도 하고요. 그 외에 새로 EU에 편입된 동유럽 국가와 남미·중동 국가들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현재 KOTRA는 시장에 대한 접근을 지역 단위에서 시장 단위로 바꾸고 있습니다. 미국만 해도 일반 공산품의 경우는 중국에 밀리고 있거든요. 하지만 연간 5,000억 달러가 넘는 미국 정부의 조달시장은 아직 우리나라가 승산 있는 분야인 만큼 이 시장을 뚫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럽지역의 경우도 대형 유통점들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 유통점을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관건입니다.”
- 지난해 말 <변화를 두려워하면 1등은 없다>라는 책을 출간하셨는데, 그 반응이 굉장했다면서요?
“사실 지난해 KOTRA의 혁신이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생각한 시점이었습니다. 이제 그 과정을 나만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현 정부가 혁신을 추진하는 만큼 KOTRA의 혁신 과정이 정부나 다른 공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으면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
- 공기업 혁신을 해오면서 개인적으로 깨달은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경영혁신이라고 하면 사기업의 전유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공기업도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혁신이 가능하고, 그 혁신이 성공했을 때 성과는 오히려 사기업보다 더 클 수 있습니다. 또 공기업의 혁신이 가능하다면 같은 방법으로 정부의 혁신도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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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