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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을 기다렸다. 그 풍성하고 북적거림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아이의 눈에 장날은 신기한 세상이었다. 검정 고무신 신고 엄마 뒤를 졸래졸래 따라 장터에 갈 때 괜스레 찾아오는 설렘이란….
“혹시 운동화 한 켤레라도 사 주실까? 그게 좀 비싸다면 빨간 물감을 들인 사탕 한 봉지라도….”
엄마는 짚으로 동인 계란 꾸러미를 팔아 비닐에 싼 큼지막한 빨랫비누 몇 개와 플라스틱 소쿠리 한 개를 사더니 총총걸음으로 장터를 나서려고 한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생각났는지 어물전에 들러 뚱뚱이 주인 아줌마와 이것저것 흥정한다. 아이는 주인 아줌마 허리에 찬 불룩한 돈 주머니가 우리 것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그날 저녁 아이는 갈치 한 토막에 꽁보리밥을 두 그릇이나 해치웠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 소도시에는 5일장이 참 많았다. 장날이 돌아오면 온 동네가 북적대고, 멀리서 찾아온 이들의 발길도 잦았다. 5일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었다. 5일마다 찾아와 정신과 물질의 풍요를 보여주기만 하거나, 아니면 건네주고는 해가 지면 떠나는 자연의 순환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5일장이 교통의 발달이나 대형 마트 같은 문명의 집단 공습에 밀려 자취를 감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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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읍의 5일장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장 중 하나다. 매월 1일, 6일, 11일… 하는 식으로 장이 열린다. 과거처럼 번화하지는 않지만 제법 구색은 갖추었다. 한때는 소전(우시장)도 있어 하루에 100두 이상이 거래되기도 했다고 한다. 요즘에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장터로 나온 먼 산골의 나물이며 과일들이 장터 골목을 가득 메운다. 예나 지금이나 선술집에서 구수한 입담을 나누는 촌로들의 정취 또한 마찬가지다. 아마 서울에 사는 아들 자랑쯤 하고 있지나 않을까…?
“아따, 겁나게 비싼디 쬐께만 깎아 줘부러랑께.”
“글먼 안 디야. 시방 준 것도 생각히서 그렁게, 다른 사람 보기 전에 후딱 갖고 가이쇼, 이.”
정겨운 사투리가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진다.
요즘의 5일장은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모두 나이가 지긋하다. 순창의 5일장도 그곳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처럼 황혼으로 접어드는 듯해 안타깝다. 좌판의 넉넉한 에누리는 시골 사람들의 삶의 여유였는데, 육중한 건물 속의 규격화한 가격과 냉정한 관계에 밀려 자꾸 사라지고 있다. 순창 장터 순댓국이 맛있다는데, 어린 시절 추억을 찾으러 그곳으로 발길을 돌려 볼거나.
[RIGHT]사진·권태균 / 글·윤길주[/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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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