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 지난 7월8일 태권도가 세계 무대에서
사느냐, 죽느냐 판가름나는 중대하고도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 이날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올림픽 정식종목 유지 여부를 놓고 IOC 위원들의
투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11시30분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유지된다는 발표가 나오는
순간 가장 기뻐한 사람은 바로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다. 조정원 총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때만큼 긴장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지난 7월22일 오전 서울 강남 외교센터에 있는 WTF 사무실에서 조정원 총재를
만났다. “마라톤 완주자만큼이나 피곤해 보인다”고 첫 인사말을 꺼내자 조 총재는
“상쾌한 피로”라고 대답했다. 피곤하지만 태권도를 세계 무대에서 지켜 뿌듯하다는
뜻일 게다.
조 총재는 태권도를 어렵사리 살려낸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미없는 경기는 방송이 중계를 안 하고, 그러면 기업이 스폰서를 안 해 결국 올림픽에서
퇴출된다”며 “어떻게 하면 태권도를 흥미 있고 사랑받는 스포츠로 만들 것이냐가
숙제”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연맹 내에 개혁위원회를 가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아가 조 총재는 “태권도는 한국이 세계인에게 준 선물”이라며 “이 좋은 상품을
국가홍보와 연계해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B]“투표 때 최후의 재판정에 선 심정” [/B]
태권도가 2012년 런던올림픽
때 정식종목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습니다만 결국 살아남았습니다.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을 때만큼 이번에도 국민의 관심과 성원이 결집해 이뤄진 것입니다. 많은 국민은
‘설마 태권도가 빠지겠느냐’고 생각했겠지만, 우리(세계태권도연맹 관계자들)는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아테네올림픽이 끝나고 연말에 평가보고서를 IOC에 제출하는
등 자체평가 과정에서 취약한 부분이 몇 가지 있더군요. 태권도가 빠지면 ‘가라테’가
들어온다는 말도 들리고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민이 성원해 주었고, 정부도 많은 관심을 갖고 애써 주었습니다.
대한올림픽위원회도 마찬가지로 큰 도움을 주었어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IOC의
요구는 태권도가 국제 스포츠다운 골격을 갖추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태권도도
글로벌 스탠더드화하지 않으면 결국 퇴출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연말 연맹 개혁위원회를 구성해 4개월 동안 관련 작업을 했습니다. 또 우리가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지난 3월10일 스위스 로잔 IOC 본부에서 임시집행위원회가
열렸을 때 연맹 개혁위가 준비한 개혁보고서를 발표하고 통과시킨 것이 그것입니다.
이 같은 노력들이 합쳐져 IOC 위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지난 7월8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IOC 총회 투표 당시 가슴 졸이던 상황을 설명해
주십시오.
“수능 보는 수험생 입장이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어요. 김정길 대한체육회장과 농반진반으로 이야기했어요. 수능시험의 경우 성적이
잘못 나오면 재수를 하면 되는데, 이것은 4년 후에나 다시 기회가 있고, 만약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빠지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기회가 아예 없어질 수 있다고요.
어떻게 보면 최후의 재판정에 선 심정이었다고 할 수 있죠. 투표부터 결과가 발표된
3시간가량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 없었습니다. 기존의 올림픽 정식종목 28개가
다 남을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기는 했지만 역시 불안했습니다. 야구가 정식종목에서
제외되는 순간 당황했죠. 또 태권도 결정에 바로 앞서 소프트볼도 제외돼 더욱 숨죽이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웃음)
태권도를 살리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열심히 뛰어다니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난해
6월11일 전임 총재의 잔여 임기를 맡았고, 지난 4월12일 새로운 임기 4년의 정식
총재로 선임됐습니다. 그동안 일들이 많았습니다만, 어떻게든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잔류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1년여 동안 20여 개국을 돌아다녔습니다.
나라 이름을 처음 듣는 곳도 가보고, 많은 IOC 위원과 스포츠 지도자들을 만나 태권도의
우수성과 우리의 개혁 노력을 알렸습니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잔류하게 된 것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우리는 태권도 종주국이고 또 태권도는 국기(國技)라고 쉽게
말합니다. 하지만 태권도가 다른 나라에 뿌리내리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축구 다음으로 많은 스포츠 인구를 가진 것이 태권도입니다. 이제는 정부를 비롯한
우리가 태권도를 사랑하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사범·코치
등의 파견은 물론 특히 중남미·아프리카·중동 쪽에는 장비가 턱없이
부족한데, 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요즘에는 태권도 사범을 해외에 파견하려고
해도 잘 안 가려고 합니다. 1960~70년대 어려운 여건에서 해외에 태권도를 알렸던
사범들이 지금 생각해도 참 훌륭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세계 속의 태권도가 있게 된 것입니다.”
[B]“재미있는 스포츠로 만들기 위해 노력”[/B]
태권도 인구가 그렇게
많고, 세계태권도연맹 가입국이 179개국에 달하는데도 이번처럼 위기를 맞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무도로서 태권도와 스포츠로서 태권도가 있죠. 무도로서
태권도는 무술로서뿐만 아니라 정신적·철학적 부분이 가미돼 하나의 도(道)로
보존됩니다. 현재 무도로서 태권도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위기가
왔느냐? 스포츠로서 태권도에 요구되는 것은 흥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중에게
외면받는 스포츠가 살아남을 수는 없죠. 특히 올림픽에서는 미디어 노출이 매우 중요합니다.
재미없는 경기는 우선 TV가 중계를 안 합니다. 그러면 기업이 스폰서를 안 해주고,
관중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를 개선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흥미 있고 사랑받는 스포츠로 만드느냐가
숙제라는 것입니다. 연맹 개혁위원회가 특별위를 구성해 태권도를 재미있는 스포츠로
만들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또 하나 지적되는 부분은 심판 판정시비 문제입니다.
심판이 있는 스포츠는 항상 판정시비가 일어날 여지가 있게 마련인데, 유독 태권도에서
그것이 잦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심판의 미숙함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 문제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근본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전자호구제를 도입하려고
합니다. 2008년 베이징(北京)올림픽에서는 전자호구를 착용하고 경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판정시비도 거의 없어질 것입니다.”
개혁위원회에서 하는 작업들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대로 태권도를 재미있는 스포츠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경기 방식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남자 경기의 경우 3분 3회전을 2분 3회전으로 바꾸었습니다.
또 경기장 규격을 가로 세로 12m에서 10m로 축소했습니다. 소극적이고 도망다니는
경기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동점이 나왔을 경우 서든데스 방식을 도입했죠. 또 도핑
테스트 문제, 지역연맹 활성화 방안, 태권도 신흥 국가 지원책 등도 연맹의 주요
관심사항입니다. 이에 필요한 재정은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확보할 생각입니다.”
[SET_IMAGE]5,original,right[/SET_IMAGE]연맹 가입국이 179개국에 달하지만
내실이 부족하지 않으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최근 오세아니아연맹이 창설돼
4대륙 연맹(아시아·아프리카·유럽·아메리카)이 5대륙 연맹
체제로 바뀌었습니다. 호주를 포함한 11개 국가가 모여 오세아니아연맹이 탄생했습니다.
최근 아프리카 몇 나라가 새롭게 가입 의견서를 보내왔습니다. 가능하면 베이징올림픽
전까지 IOC 가맹국 202개국 모두를 가입시키려고 합니다.
내년 9월 서울에서는 세계태권도품세선수권대회가 열립니다. ‘품세’는 신체수련
및 정신수양에 좋습니다. 세계대회를 통해 품세가 활성화화면 금방 태권도 인구가
1억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태권도를 문화·예술과 접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태권무(跆拳舞)’도 개발하고, 그 시연도
하고 있습니다. 완성된다면 품세 동작을 가미한 새로운 한국무용이 되겠죠. 세계
각국을 돌면서 이 태권무를 공연하면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세계 속에 심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정부도 태권도를 국가홍보 차원에서 활용해야 합니다. 외국인이 총재를 하면
이를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한국인이 총재를 하는 지금이 좋은 기회입니다.”
[B]“태권도는 우리의 최고 문화상품”[/B]
정부가 어떤 식으로 태권도를
지원하는 것이 좋을까요?
“태권도를 세계 오지까지 보급해야 하는데, 정작
가겠다는 사범이나 코치가 많지 않습니다. 얼마 전 국방부가 병력을 50만 명으로
줄이는 군개혁안을 발표한 것을 봤습니다. 태권도 사범 자격증을 가진 군인들을 전
세계에 사범으로 보내는 방안을 연구해 봤으면 합니다. 태권도 사절단을 만들어 우리말·역사·문화·전통과
함께 태권도를 가르친다면 세계인이 한국을 좋아할 것입니다. 국가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우리의 상품경쟁력, 나아가 구매력과 직결됩니다. 아무리 큰 기업도 179개국에 지사를
둔 곳이 있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한국에는 태권도만한 상품이 없습니다. 정부와
함께 모두 이를 활용할 방법을 찾았으면 합니다.”
태권도는 우리가 종주국인데 앞서 말한 대로 외국인이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를
맡을 수도 있습니까?
“우리가 바르게 운영하지 않으면 언제든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총재는 총회에서 각국 회장들이 투표로 선출합니다. 우리가
잘못했다, 한국인 위주의 운영이니 바꿔야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연맹 내에서 한국은 179분의 1일 뿐이죠. 그것을 막는 지름길은 태권도의
세계화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연맹이 국제 스포츠기구다운 모습을 갖춰야
합니다.”
언제부터 태권도와 인연을 맺으셨습니까?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들
군대에서 (태권도를)접하지 않습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 후 미국 뉴저지주로
유학 갔을 때 태권도장에 들렀다가 외국인들이 태극기에 예를 표하고, 우리말 구령에
맞춰 태권도 동작을 하는 것을 보고 무한한 자긍심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때 태권도를
세계화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1980년 초에 태권도학과를 경희대에 신설하겠다고 문교부에
신청했습니다. 당시 관계자들 모두 의아해 하더군요. 동네 체육관에서 배우면 되지,
태권도가 4년제 대학교육 프로그램까지 필요하냐는 식이었죠. 적극 설득에 나섰습니다.
일본은 종합대학에 유도학과가 있고 유도대학도 있는데 국기인 태권도를 학문적으로
다듬고 발전시켜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정부에서도 인정해 1983년 드디어 인가받았습니다.
지금은 대학원 석·박사과정까지 있습니다. 방학 때는 기숙사 시설을 이용해
외국인도 태권도를 심도 있게 배울 수 있도록 국제태권도아카데미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태권도학을 더욱 발전시켜 학문적으로 좀 더 체계화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요.
방학 동안 비워두는 대학 기숙사를 활용해 태권도를 배우려는 외국 수련생을 불러
한국을 알리고 한국의 혼을 심어줘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오고 싶어하는데 연고가
없고 돈도 없으니 못 오는 것이거든요.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부의 재정지원도 중요합니다만, 우리 문화의 수출이라는 마인드를 갖는 것도
중요할 것 같군요?
“사실 그동안 정부에서 협조를 많이 해주었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태권도에 대한 시각 변화가 있었으면 합니다. 표시 안 나게 우리나라의
좋은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 태권도를 활용하자는 겁니다. 2년제 대학까지 40여 개
대학에 태권도 전문 학과가 있습니다. 이런 대학에 태권도를 위해 재정지원을 조금만
해도 좋은 인프라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많은 외국인이 태권도와 우리 문화를 배우고,
따뜻한 정도 느끼고 돌아갈 수 있게 한다면 그것만큼 효과적인 국가홍보는 없을 것입니다.”
[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끔찍한 상상이기는 합니다만, 만약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탈락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우리는 서울로
못 돌아왔겠죠.(웃음) 그렇지만 탈락이라는 것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태권도 경기가
없다는 것이지, 올림픽 스포츠로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4년 후 다시 도전할
기회가 있지만 일본 가라테가 그 자리를 메운다면 다시 진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우리가 앞으로 4년 동안 태권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개혁하면 앞으로 우리의
입지는 탄탄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2016년에도 태권도는 건재할 것입니다.”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로서 어떤 꿈을 갖고 계십니까?
“태권도를 겨루기에서
품세 중심으로 바꿔 생활태권도화했으면 합니다. 누구나 품세를 통해 신체를 단련하고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권도 품세 수련을 하는 모습을 세계 각국의
공원에서 보는 것이 꿈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태권도와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각인되고,
세계 속에 뿌리내리는 근간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태권도 발전을 위해 더 많은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제
품세 중심의 생활태권도 보급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국내 태권도장을 보면 초등학생만
있지 성인은 거의 없습니다. 체력단련과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바꾸겠으니,
국민도 많이 사랑하고 즐겨 주십시오. 또 뜻있는 독지가가 태권도를 좋아하는 외국인을
한두 명이라도 국내에 초청해 준다면 수련은 우리가 맡아 열심히 시키겠습니다.”
[RIGHT]윤길주 기자[/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