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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말에 열렸던 남북작가대회를 평가한다면?
“물론 원하는 만큼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다. 작가와 작품 교류 같은 높은 단계의 문학 교류를 희망했는데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아쉽다. 그러나 북측 실무자와 정도 두텁게 쌓았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도 크다. 양측의 준비된 역량도 높다. 문학은 다른 매체보다 교류하기 편하다.
이동과 휴대가 쉽다. 무엇보다 작가들은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크다.
이번 남북작가대회에 참석한 남한 작가 가운데는 반북 인사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 체제에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들도 어쩔 수 없는 작가였다. 이런
점들은 우리 작가 집단의 가장 큰 장점이다.”
준비과정은 어떠했나? 남한과 북한의 작가 조직이 다르고 토양이 다르기 때문에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남한은 작가회의와 문인협회 등 문인조직이 다양하다.
더구나 그 조직마다 다른 매체를 발행하며 해당 매체는 또 정치적 기반이 다르다.
그러나 북한은 조선작가동맹이라는 단일 조직으로 뭉쳐 있다. 그래서 남한의 다양한
조직과 북한의 단일 조직을 물리적으로 통합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남북한 작가
교류는 1989년 추진하다 무산됐던 남북작가대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남북한
문인들은 남측에서 특정 언론에 의견을 표시하면 북한 문인들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화답하는 형식으로 간접 교류했다. 당시에는 이런 소통이 무척 어려웠다.”
구체적으로 이번 작가대회는 언제부터 준비되었나?
“2000년 8월 내가
문익환 평전을 취재하기 위해 방북한 적이 있었다. 그 무렵부터 조선작가동맹과 함께
논의를 시작했다. 그 뒤 2004년 서울에서 열린 ‘늦봄 문익환 목사 방북 15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참가한 북한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관계자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준비과정에서 남북한 추진 주체들 사이에서 오간 구체적인 대화를 소개하면?
“우리 측에서는 남북작가대회 참가단을 남한 문단의 대표성을 확보해 꾸리겠다는
것과 북한에서 경계하는 ‘북한 체제에 대한 예의’를 남한 대표단이 지켜주겠다는
것 등 두 가지를 약속했다. 그랬더니 북한에서는 ‘엄청난 행정능력을 가지셨군요.
신뢰합니다’라고 답변했다. 이후 협상이 풀리기 시작했다.”
남과 북의 문단 분위기가 다른데 남북 문인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데 문제는
없었나?
“이번 행사는 소수의 인원이 참석해 결론을 이끌어내야 하는 회담이
아니라 150여 명의 작가가 참가한 대회였다. 이 때문에 민감한 문제는 가급적 피해
가는 방향으로 서로 노력했다. 소수의 사람이 모이는 회담은 정치적인 행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다수의 사람이 대회를 열면 이는 문화행사가 될 수 있다.
또 작가란 직업 자체가 궁금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 만나기만 하면 상대적으로
잘 어울린다.”
대회를 끝낸 지금 아쉬움이 남는다면?
“먼저 북한 당국이 북한 작가들과
남한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았다. 남북한 작가들이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허심탄회하게 상대방의 속마음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두 차례밖에
없었다. 둘째로는 남한에서 참가한 작가들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남한
작가들은 기회만 생기면 북한 작가들을 대상으로 설교하려 했다. 그래서 대회 나흘째
되던 날 내가 어쩔 수 없이 악역을 맡기도 했다. 우리 작가들에게 북측 인사들의
신경을 자꾸 건드리면 대회 자체가 무산될 수 있으니 조심하자고 양해를 구하는 데
앞장섰다. ”
기관지 ‘통일문학’ 발간이 핵심사업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남한 문단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남한 문단의 대표성을 이번 대회에서 어떻게 확보했나?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보수
문인들도 남한에는 많은데?
“다양한 성향의 남한 문인들을 가능한
한 모두 포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북한측도 이런 노력에 공감했고 일단 남북한
문인이 교류할 수 있는 틀을 만들자는 대의에 동의했다. 우리가 남한의 참가 작가를
선발하는 데 원칙이 세 가지 있었다. 먼저 술주정이 주위에서 말리기 힘들 정도로
있는 사람과 이미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는 배제했다. 또 1989년 좌절되었던
남북작가대회에 참석키로 했던 작가들을 우선 참가시켰다. 이 세 가지 원칙만 빼고
언론이 남한의 대표라고 꼽는 작가들에게 연장자부터 무조건 전화를 해서 선발했다.
따라서 이번 참가자들이 남한의 문단 대표성만큼은 확보했다고 자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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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남북작가대회의 성과물은
무엇인가? 몇가지 합의문을 도출하기도 했는데?
“가장 큰 성과물은 세 가지다.
우선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했다. 이 조직을 통해 남북한 문인들이
교류를 본격화할 것이다. 또 이 조직의 기관지인 <통일문학>을 발간하기로
합의했다. 이 기관지 발간이 교류사업의 핵심인데 의외로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가
남북한 당국의 검열인데 기술적으로 풀어야 할 일이 많다. 다음은 ‘6·15통일문학상’인데
이것은 생각보다 쉬운 편이다. 상금만 만들어지면 당장 할 수 있다.”
기관지 <통일문학>이 기대된다. 어떤 잡지인가? 사무실은 어디에 둘
예정인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월간지는 힘들고 계간지에서
무크지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남한의 편집책임자는 이미 정했다. 사무실은
남북한에 각각 둘 것이다. ”
일단 제1회 남북작가대회는 성사되었다. 차기 대회가 문제인데 어떻게 논의가
되었나?
“되도록이면 매년 대회를 열자고 북한에 이야기했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내년 6월 광주에서 남북작가대회를 했으면 좋겠다. 이미 지난해에 광주에서
대회를 열자는 제의를 북한에 전한 바 있다. 당시 북한에서는 이 제의를 매우 환영했다.”
북한 작가들이 앞으로 남한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나?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작가대회에서 합의된 황석영 씨와 북한 홍석중 씨의 공동창작이 또 다른
관심사다. 문학창작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데 그것이 가능한가? 과거 사회주의 진영에서
집단창작이라는 것이 있긴 했지만 예술성이 높은 작품은 이런 식의 창작에서 나오기
힘들지 않나?
“황석영 씨는 이미 공동 작품을 쓸 수 있을 만큼 북한 작가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 두 사람은 이미 약속을 했기 때문에 공동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