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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에 미세한 충격을 가해 전기가 흐르도록 하는 가설이
세계 최초로 국내 연구진에 의해 규명됐다. 영국 물리학자 네빌 모트가 가설을 제기한
지 56년 만이다. 현대 물리학의 최대 난제로 꼽히던 이 가설을 푼 사람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술기반연구소 김현탁(47) 박사다.
김 박사는 지난 9월1일 “전류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인 바나듐옥사이드(산화물)에
작은 전압 충격을 가해 전류를 흐르도록 하는 ‘금속-절연체 전이(MIT) 가설’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 이론을 적용해 금속-절연체
전이 현상을 일으키는 새로운 ‘모트 트랜지스터’ 개발에도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김 박사의 이번 성공은 첨단 산업을 이끄는 반도체 이후 차세대 경제성장 동력원의
기반을 마련한 획기적 업적으로 평가된다. ‘모트-절연체 전이 이론’을 이용해 소자(素子)를
만들면 전기가 쓰이는 거의 모든 분야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기술이 차세대 디스플레이·메모리·광소자·열감지센서 등의
개발로 이어질 경우 약 100조 원대의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고온 초전도 현상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언제입니까?
“1986년
고온 초전도 현상이 발견되면서 모트의 절연체 가설이 새롭게 조명받게 됐습니다.
고온 초전도 발생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금속-절연체 전이 연구가 선행적으로
규명되어야 하거든요. 당시 저는 가정 형편상 석사과정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던
중이었는데, 이 문제를 내가 꼭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이대로 회사원으로
눌러앉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입사 8년차 되던 1992년 가족을 두고 혼자 일본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번 연구에 필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어떻게 얻었습니까?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던 해 금속이 절연체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매우 단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전혀 몰랐죠. 박사과정을 끝내고 쓰쿠바대학에서 전임강사로 있을
때인 1995년 전하밀도파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이를 발전시켜 1997년
분수전자의 필요성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전자는 본질적으로 1, 2, 3과 같은 정수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몇 년 동안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었죠. 하지만 당시에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연구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분수전자의 필요성은 ETRI로 옮긴 뒤인 2001년 봄 엑스포공원을 산책하다 문뜩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마리로 삼아 풀 수 있었습니다. 전자는 본질적으로 정수이지만,
이것을 방정식에 넣고 계산하면 분수로 표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죠. 이를 바탕으로 ‘분수전하’와 ‘측정효과’라는 새로운 개념을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개념이 결국 모트 가설을 명쾌하게 푸는 실마리가 됐죠.”
반도체 뛰어넘는 신소자 개발의 실마리 찾아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모트
가설 규명은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 방법을 통해 가능했나요?
“모트 가설의
핵심은 ‘도체가 부도체로 바뀔 수 있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반대 방향에서
접근했습니다. 즉, 도체를 부도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부도체를 도체로 바꾸는
실험을 한 것이죠. 이를 위해 자연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100여 개의 모트 절연체
중 하나인 바나듐옥사이드로 실험했습니다. 바나듐옥사이드에 미세한 전압을 걸면
팽팽하게 밀고 당기던 전자 간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이때 전압으로 인해
전자 하나가 밖으로 튕겨 나가면서 구멍(정공)이 생깁니다. 이렇게 되면 절연체인
바나듐옥사이드가 전기가 통하는 금속물질로 바뀌게 되죠.”
이번 연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물리학계에서 ‘금속-절연체 전이
현상 규명’은 큰 숙제였습니다. 이것을 풀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의의입니다. 이 난제가
풀림으로써 고체물리학의 다른 숙제인 고온 초전도 현상, 거대 자기저항 현상, 반도체에서의
자기저항 현상, 고체·액체·기체에서의 절연 파괴 현상 등의 메커니즘
규명에도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를 응용할 경우 금속
제어 시대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죠. 그 일을 제가 해서 개인적으로도 영광입니다.”
이번 연구 결과의 파급효과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됩니까?
“금속-절연체
전이 이론은 메모리·디스플레이·RF(무선 주파수)소자·신호처리소자·광소자·전지
등 전기가 쓰이는 거의 모든 분야에 응용할 수 있습니다. 또 새로운 분야가 계속
발굴되고 있어 저도 이 연구가 앞으로 어디까지 응용이 가능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현재 반도체 트랜지스터는 나노 시대에 필요한 크기로 줄이는 것이 어렵습니다.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데 쓰는 반도체(실리콘)는 특정 크기 이하로 작아지면 전기가 흐르지 않아
디지털 부품으로 이용할 수 없거든요. 따라서 나노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실리콘
등 현재 반도체에 사용되는 물질보다 전기를 금속처럼 잘 흘려 주면서도 반도체 트랜지스터를
작게 만들 수 있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규명된 기술을 이용하면 현재의 반도체와
같은 성질을 가진 트랜지스터를 나노 단위에서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소자들이
실제로 만들어지고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20년 동안 100조 원 이상의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연구를 진행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일반 상식이 아닌
새로운 연구를 하다 보니 이에 대한 중요성을 학계와 사회에 인식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2000년 ETRI 연구 과제로 선정되기 전까지는 쭉 혼자 연구해 왔죠. 연구
과제로 선정된 뒤에도 딱히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걱정이 많았어요. 연말 인사고과도
신경 쓰였고요. 연말에 연구 성과에 대한 평가가 나쁘게 나오면 다음 연도에 연구과제로
선정되지 못할 수 있거든요. 사실 그 걱정이 제일 컸습니다.”
ETRI나 정부 차원에서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무엇보다
월급 걱정을 안 하면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또 금속-절연체
전이 연구는 국제적으로 경쟁이 매우 치열한 분야입니다. 국제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문 연구센터 설립과 같은 특별 조치가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연구 계획을 말씀해 주시죠.
“무엇보다 이번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용화한 제품이 최대한 빨리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오효림 기자
토막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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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트 절연체 :
한 개의 원자에 한 개의 전자를 갖는 금속의 전자 구조를 가지면서 너무
큰 쿨롱 에너지(두 개의 전자 사이에서 서로 밀어내는 에너지) 때문에
전자가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이지 못해 전류가 흐르지 않는 부도체.
■고온 초전도 현상
: 고온 초전도란 절대온도보다 수십 도 이상 높은 온도에서 나타나는
물질의 특이한 현상. 전기저항이 O이 되어 무한대 에너지를 저장하거나
보낼 수 있고, 엄청나게 센 전자석을 만드는 일 등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보통의 초전도 현상은 절대온도 4도(섭씨 영하 269도)에서 일어난다고
해서 고온이라는 표현이 붙었다.
■거대자기저항현상
: 일반적으로 자기장을 걸면 저항이 증가해 전자가 흘러가는 속도가
늦어지는 데 반해, 자기장을 걸었을 때 오히려 저항이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 크게는 저항이 1,000%까지 감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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