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공주·대통령·장군, 밥 먹어야지. 장군이 엄마·아빠도 빨리 와서 식사해라.”
식사시간 때면 언제나 ‘젊은 할머니’ 한명순(47) 씨의 목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진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식구를 불러 모으기 위해서다. 공주는 큰손녀, 대통령은 장손, 장군이는 막내손자다. 이는 손주들 모두 공주·대통령·장군이 되라고 한씨 부부가 지어준 애칭이다.
경기도 파주에 가면 이들 대통령·장군·공주와 한적한 전원에서 살아가는 한씨와 남편 윤수용(49) 씨를 만날 수 있다. 20대의 건장한 아들 3형제와 꽃다운 며느리 2명이 한지붕 아래서 생활한다. 3대, 10명의 식구가 함께 살다 보니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이를 윤씨 부부는 ‘사람 사는 재미’로 받아들이고 삶의 활력소로 삼는다. 그래서 가족 모두의 얼굴에는 늘 웃음꽃이 활짝 펴 있다.
한때 이들 부부는 동네에서 ‘애부터 만드는 집’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큰아들이 스무 살에 ‘애를 만드는’ 사고(?)를 치는 바람에 한씨는 나이 마흔에 할머니가 됐다. 둘째아들 역시 집안 내력 탓인지 결혼 전인 스물네 살에 아이를 낳았다. 이처럼 ‘성격 급한’ 두 아들 덕분에 이들 부부는 그렇게 바라던 ‘딸’을 둘이나 얻었다며 흡족한 표정이다. 그 딸들은 바로 세련된 큰며느리 유희정(28) 씨와 귀엽고 사랑스러운 둘째며느리 김선영(23) 씨다.
한씨는 “여자 없이 남자들만 우글대던 집안에 며느리들이 딸 노릇까지 해주니 활력이 넘쳐 오히려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한다”며 “동네에서 우리 세 고부는 ‘미녀 삼총사’로 통한다”고 농담을 늘어놨다.
[B]“우리 가족은 하늘이 준 선물”[/B]
이 집 며느리들은 대가족 살림살이에 낚시터 일까지 돕느라 손에 주부습진이 생겼다. 하지만 이들에게 고부 갈등, 시댁 노이로제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딸처럼 며느리를 아껴 주는 시어머니 한씨 덕분이다.
첫째며느리 희정 씨는 “어린 나이에 시집와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무서웠다. 엄마·아빠가 딸처럼 잘해 주고 돌봐주셔서 시집온 것 같지 않고 친정에서 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며느리가 시부모를 ‘엄마’ ‘아빠’라고 호칭하는 것이 어색할 법도 한데 “친근감 있고 자연스러운 집안 분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걸쭉한 목소리에 며느리들보다 더 화려한 의상을 걸쳐 이 동네에서는 ‘여장부’로 통하는 한명순 씨. 그의 며느리 사랑은 남다르다. 매일 이른 아침 2,000평 밭을 혼자 가꾸면서도 며느리들이 힘들까봐 농사일에는 손도 대지 못하게 한다. 그 자신이 종갓집 외며느리로 고된 시집살이를 했기 때문인지 며느리들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기까지 하다.
“제가 고생해 봐서 며느리들에게는 이를 물려 주고 싶지 않아요. 며느리들도 예쁜데 손주들까지 품에 안겨 주니 이만한 복덩이들이 어디 있겠어요? 첫째는 첫째답게 살림을 도맡아 해주고, 둘째는 집안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주니 항상 즐겁고 행복해요. 항상 아껴 주고 잘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죠.”
집안 대대로 파주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윤수용 씨. 외아들인 탓에 스무 살에 아버지의 엄명으로 지금의 아내 한씨를 만나 아들 3형제를 낳고 지금껏 살아왔다. 그는 무뚝뚝한 성격을 꼭 빼닮은 아들만 셋을 키우다 보니 예쁜 딸을 가져 보는 것을 소원처럼 여겼다. 그런 딸 노릇을 며느리들이 만족스럽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그는 항상 아들 3형제에게 가족의 우애를 강조하고, 심지어 나중에 모여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결국 세 아들 상덕(28)·승덕(26)·맹덕(25) 씨는 같이 모여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 벌써 두 아들은 실행에 옮겼고, 막내아들도 조만간 결혼할 예정이어서 한지붕 열 식구인 윤씨 가족은 앞으로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낚시터 관리를 도맡아 하는 큰아들 상덕 씨, 트럭 운전을 하면서도 틈틈이 형을 돕는 둘째 승덕 씨, 서글서글한 미소로 낚시터 최고의 인기 직원인 맹덕 씨 모두 아버지의 이런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3대가 모여 살면서도 가족들은 스스럼없이 지내는 편이다. 그러나 집안에 작은 분란이라도 생겼을 때 큰형 상덕 씨가 한마디 하면 두 동생은 모두 고분고분할 만큼 위계질서가 확실하다. 이만하면 형제간 우애와 가족의 화목을 주장하던 아버지의 ‘자식 농사’는 확실하게 꽃을 피운 셈이다.
윤씨는 “제가 항상 같이 모여 살아야 한다고 강조는 했지만, 아이들이 성급하게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는 어리둥절했다”며 “하지만 사람 냄새가 항상 그립던 가정에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3대가 모여 사는 것이 힘들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데 대가족이 알콩달콩 사는 행복한 모습에 모두 부러워한다”고 덧붙였다.
[B]사랑의 향기 가득한 집[/B]
항상 행복할 것 같던 이 집에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2,000평의 밭일을 하면서 식당 운영까지 도맡아 했던 한씨가 5년 전 자궁암으로 사선을 넘나들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가족의 사랑이 넘쳐났기에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씨는 말한다.
“처음에는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다 포기하고 싶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그 중에서도 며느리들 생각에 눈을 못 감겠더라고요. 그래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었죠. 당시에 안 먹어본 것이 없어요. 몸에 좋다면 다 먹었죠. 그래서 이렇게 살이 찐 것 같아요. 덕분에 지금은 에어로빅을 통해 건강을 챙기죠.”
수술 끝에 병은 완치되고 회복됐지만 그래도 검진받을 때면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는 한씨. 그때마다 며느리들의 얼굴과 손주들의 재롱을 생각하며 마음의 안식을 찾는다.
둘째며느리 선영 씨는 “엄마가 여장부 같아도 마음이 여리시고 누구보다 자상해 항상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며 “항상 엄마·아빠 곁에서 예쁜 며느리의 모습으로 웃음을 잃지 않게 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씨네는 온 집안 식구가 사랑으로 똘똘 뭉친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가족 모두의 얼굴이 화사하다. 두 어른은 가족 모두를 보듬어 주고, 며느리들은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시집살이를 밝고 긍정적으로 해나가고, 아들들은 집안의 기둥이 되어 가족을 묵묵히 지켜 준다. 여기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 어우러진다.
가족해체의 시대에 윤수용·한명순 부부 집에는 사랑의 온기가 가득해 보였다.
[RIGHT]백창훈 기자[/RIGHT]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