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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 서리가 멀지 않을 즈음이면 뒤뜰 감나무에 가지가 찢어질 듯 매달린 감들이 익어갔다. 덩달아 발갛게 달아오른 어린 마음에 그윽한 감색깔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한 입 베어물면 인상을 찌푸려야 할 만큼 그 맛이 떫었다. 그 기억 때문에 탐스럽게 열린 감을 여름 내내 그림의 떡 보듯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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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쯤 아버지는 어느 하루 날을 잡아 긴 대나무 장대나 작대기 두 개를 이어 묶은 다음 감꼭지를 분질러 감을 땄다. 서너 광주리 가득 차도록 따내도 감나무에는 여전히 많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대부분은 후룩 들이마시면 말캉한 속살이 입 안에 가득 차는 홍시가 되는 것이었고, 그러고도 남는 몇 개는 까치들에게 한동안 맛난 아침식사를 마련해 줄 것이었다.
[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그 발갛게 익은 감을 어머니는 모두 껍질을 깎아 싸리나무 가지로 열 개씩 꿰어 처마 끝에 걸어 두었다. 초가 처마에 줄 지어 내걸린 곶감꽂이의 노란색 행렬은 그 자체로 눈부신 매혹이었다. 그것은 또 곁에서 말라가는 무청 시래기 엮음과 함께 늦가을의 시골 정취를 상징했다. 요즘은 곶감도 대량생산 시대. 기계를 돌려 감껍질을 벗겨내고 공장처럼 큰 건물을 지어 곶감을 말린다.
그 떫은 감이 차츰 곶감으로 변하면서 단맛이 들기 시작하면 우리 손은 도둑 고양이처럼 엄마 눈을 속여가며 말 그대로 군침 도는 곶감을 빼먹는 재미에 푹 빠지곤 했다. 그래서 곶감이 다 될 무렵에는 제대로 열 개가 남아 있는 곶감꽂이가 없었지만 어머니는 그저 미소 한 번 머금고는 아무 말 없이 곶감을 차곡차곡 대광주리에 담아 벽장 속 깊은 곳에 넣어 두었다.
벽장은 너무 높았다. 또다시 곶감은 보고도 먹지 못하는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잠시 동안 볼에 닿는 할아버지의 따가운 수염을 참아내면 곶감 한두 알쯤은 의외로 쉽게 입으로 들어왔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주들을 무릎에 앉히고 싶으실 때마다 분이 하얗게 피어오른 곶감을 꺼내 들었던 것이다.
눈이 하얗게 내린 겨울 밤 뒷간에 가기 무서워 망설이고 있노라면 어머니는 곶감 하나를 쥐여 주었다. 그리고 호랑이도 무서워하는 곶감을 들었으니 혼자 다녀오라며 등을 떼밀었다. 한창 궁금증이 많던 시절, 도대체 왜 호랑이는 곶감을 무서워할까 하는 의문은 꽤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다.
그 오랜 의문은 달고 쫄깃하던 곶감에 머물렀던 관심이 사라질 즈음에야 자연스레 풀렸다. 더불어 손주는 더 이상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을 일도 없어졌다. 대신 손주는 아침마다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며 대문밖으로 뛰어나갔다.
[RIGHT]사진·권태균 / 글·이항복[/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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