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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의 명산 서대산(해발 904m) 기슭에 자리한 금산군 군북초등학교. 전교생이 43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다. 이 학교 어린이들이 도시의 또래 아이들 부럽지 않은 영어 실력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필리핀 출신 영어강사 엘레나 에서론 베티타(40) 덕분이다. 엘레나는 2003년 10월부터 군북초등학교 영어 특기적성강사로 근무하고 있다.
[B]한국 남성과 결혼해 농촌에 정착[/B]
필리핀에서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던 엘레나가 한국에 온 것은 2000년 2월. 1999년 필리핀에서 사촌언니 소개로 만난 한국 남성과 결혼하면서다. 그 남편을 따라 충남 금산군 금산읍 제원리에 정착했다.
“필리핀에서는 수도인 마닐라에 살았기 때문에 금산에 처음 왔을 때 조금 실망했죠.(웃음) 필리핀에서는 한국이라고 하면 큰 도시를 떠올리거든요. 농사일도 한국에 와서 처음 해봤고요.”
엘레나가 군북초등학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 군북초등학교가 금산지역에 사는 필리핀·베트남 출신 신부들을 위해 개설한 한국어 강좌를 통해서였다. 금산지역에 사는 15명의 필리핀·베트남 출신 신부들이 이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듣기 전에도 간단한 회화 정도는 할 수 있었죠. 그래도 한국어 문법은 이 수업을 통해 배웠어요.”
엘레나의 한국어 습득 속도는 군북초등학교 교사들 사이에 화제가 될 정도로 빨랐다. 교사들과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길 무렵 엘레나는 농담처럼 “이 학교에서 영어교사가 필요하면 자원봉사로 해보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을 밝혔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군북초등학교에는 영어 특기적성수업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한국에 처음 왔던 2000년 여름 한 초등학교에서 영어강사로 일할 기회가 있었으나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무산됐던 경험도 그의 그런 기대를 꺾는 데 한몫했다.
그러나 2003년 9월 김주혁 교장이 군북초등학교에 부임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김 교장이 영어·컴퓨터·악기 등 특기적성교육 확충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방과후 특기적성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서였다. 영어 원어민 교사를 찾던 김 교장은 군북초등학교 교사들로부터 필리핀 중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현지 출신 신부가 근방에 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 즉시 김 교장은 엘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장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어요. 전부터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바람은 있었지만 현실이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엘레나는 즉시 모시고 살던 시어머니에게 허락을 구했다. 시어머니는 흔쾌히 허락했다.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걱정을 많이 했죠. 그래도 일단 기분은 좋았어요. 다시 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다행히 2000년 같은 교회에 다니던 교인의 소개로 초등학교 영어수업을 참관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때 경험으로 아이들에게 영어를 어떻게 가르칠까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거든요.”
엘레나는 2003년 10월부터 전교생 43명을 1~2학년, 3~4학년, 5~6학년으로 나눠 그룹별로 1시간씩 주 2회에 걸쳐 영어회화 수업을 하고 있다. 생생한 영어회화 수업에 목말라 하던 학생들은 ‘엘레나 선생님’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B]“사고로 남편 잃었지만 아이들과 함께해 행복”[/B]
알파벳 읽는 법부터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은 2년이 지난 지금 <백설공주> <흥부와 놀부> 등을 영어 연극으로 꾸며 공연할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5~6학년 학생 중에는 금산교육청이 주최한 영어골든벨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학생도 나왔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그러나 김 교장은 “무엇보다 학생들이 영어회화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 것이 가장 큰 교육 효과”라고 말한다. 영어학원에 다니기 위해서는 10km나 떨어진 금산읍까지 나가야 하는 시골 학생들이 엘레나 덕분에 도시 학생 못지않은 원어민 발음을 익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 교장은 “전교생 43명이 웬만한 의사소통은 영어로 가능하다”며 은근한 자랑을 덧붙였다. 학부모들의 만족도는 물론 100%다.
엘레나는 요즘 군북초등학교에서 ‘보물’로 통한다. 이 소문은 학교 울타리를 넘어 이웃 학교에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이웃 성대·제원초등학교 등에서도 엘레나를 초빙했다. 덕분에 엘레나는 지난 10월부터는 성대초등학교에서도 주 2회 영어회화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던 엘레나에게 개인적으로는 잊을 수 없는 큰일이 그 사이에 발생했다. 군북초등학교에서 영어강사를 시작할 무렵인 2003년 11월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당시 엘레나는 둘째딸을 임신한 상태였다.
“저 혼자만 생각했다면 필리핀으로 돌아갔겠죠. 그러나 시어머니나 아이들을 생각해 한국에 남았습니다.”
엘레나는 처음에는 영어 특기적성강사를 자원봉사로 생각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새 네 식구의 생계가 달린 일이 됐다. 그래서 가능하면 시급제인 현재 신분이 계약제로라도 바뀌었으면 한다는 엘레나.
그러나 생계 문제와 상관 없이 자신이 가르친 시골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날로 느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이제 머나먼 이국 땅으로 시집와 남편을 잃은 그가 살아가는 희망이자 이유가 됐다.
“필리핀에서도 고등학생한테 영어를 가르치기는 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제 인생에서 하나의 도전이자 기회였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필리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그래도 다행히 학생들이 잘 따라주고, 또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보여 기쁩니다. 또 제 영어 지식을 한국 아이들과 나눌 수 있어 행복합니다.”
한국에 온 지 채 4년이 안 된 엘레나. 그의 한국어 실력은 기본적인 의사소통에는 큰 불편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아직도 영어로 말하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기는 그다. 충남 금산군의 군북·성대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엘레나를 통해 제대로 영어 선생님을 만난 셈이다.
[RIGHT]오효림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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