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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들은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동구 밖 언덕에 모였다. 서녘으로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중이다. 동편에는 하얀 달이 뽀얀 빛을 내며 떠올랐다. 해가 넘어가며 그 기운을 고스란히 달에게 넘겨준 것일까?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다.
둥실 떠오른 달은 더 붉고 환해졌다. 세상 그 어느 것보다 탐스럽다. 마을 사람들이 넋을 놓고 바라보는 사이 어느새 ‘해’라고 불리는 달집에 불이 붙었다. 깻단이 탁탁 튀며 불이 붙었다. 이내 달집에 불이 옮겨 붙었고 하늘을 향해 활활 타올랐다.
정월대보름마다 경기도 광주시 광지원리에서 펼쳐지는 ‘해동화(解洞火)놀이’는 신명나는 사물놀이에 이어 달집태우기로 절정에 달한다. 올해로 40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전래의 대보름 풍속이다.
아이들에게 동네 어른들과 함께 하는 불놀이는 색다른 경험이다. 빗자루 모양의 짚단을 태워 뛰어넘는 해넘기와 쥐불놀이는 좀처럼 싫증이 나지 않는다. 이 날만큼은 밤에 오줌 싼다며 꾸중을 하는 어른도 없다. 대보름의 환한 달이 동산 위에서 울렁인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1년 동안의 평안에 대한 기대가 가득하다. 한 해 농사가 풍요롭게 되고 가족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남녀노소 매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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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화(解洞火)에는 ‘마을(洞)의 근심 걱정(火)을 해소(解)’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달집에 불을 붙여 근심거리를 태워버리는 것이다.
400여 년 전, 정월대보름에 집집마다 나무 한 짐씩 내고 21개 끈으로 묶어 달이 뜨는 것과 동시에 나무에 불을 붙여 주위를 돌며 소원을 빌었다는 설화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에서 달은 어머니처럼 만물을 낳고 키우는 풍요의 상징이 아니던가. 그래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정월대보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정월은 농사를 시작하기 전, 1년 농사를 미리 준비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첫달이기 때문이다.
정월대보름의 풍속은 마을의 공동 행사인 동제(洞祭)로 시작됐다. 각 집에서 성심성의껏 제비(祭費)를 마련하고 제관을 선출한 후 풍요로운 생산과 마을의 평안을 빌었다. 이와 함께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줄다리기를 했다. 마을의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며 흥겹게 놀아주는 지신밟기는 정초부터 대보름 무렵까지 떠들썩하게 펼쳐진다.
개인적인 의례도 빼놓을 수 없다. 대보름의 아침은 부럼 깨기로 시작된다. 부럼 깨기는 밤 호두 땅콩 강정 등을 깨물며 한 해 동안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축원하는 것이다. 가까운 친구 등에게 “내 더위 사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더위를 팔면 그 해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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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오곡밥과 묵은 해의 말린 나물을 이용한 진채식(陣菜食)을 준비한다. 부녀자나 아이들까지 일년 내내 ‘좋은 소식’만 듣기 위해 귀밝이술을 마시기도 한다. 낮에는 언덕에서 연을 날리기도 한다. ‘액연(厄鳶) 띄운다’고 하며 연에다가 ‘액(厄)’이나 ‘송액(送厄)’ 등을 써서 연을 날리다가 해질 무렵 연줄을 끊어 하늘로 날려 보냄으로써 액막이를 한다.
밤에는 뒷동산에 올라 달집을 태우며 그 해 농사의 풍요를 기원한다. 달맞이를 하며 가족의 건강과 소원성취를 달을 향해 속삭인다. 정월대보름의 세시풍속은 이웃마을의 달집 대문 훔치기, 부잣집의 복토(福土) 훔치기, 다리밟기 등 이루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정월대보름은 그야말로 아이들 세상이다. 신나는 놀이와 더불어 어른들에게는 한 해의 행운과 건강, 농사의 풍요를 비는 중요한 날이다.
[RIGHT]사진 안홍범 | 글 이병헌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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