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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 명성이 천하에 자자해서 박물지 왕왕이 그 이름 올려 있네 / 공납으로 해마다 공장으로 옮기는데 서리들 농간을 막을 길 없어 / 지방민들이 이 나무 악목이라 여기고서 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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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황칠’이란 시의 한 부분이다. 다산은 시에서 황칠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기도 했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 감춰져 있던 백성들의 애환도 보여줬다. 당시 황칠은 워낙 귀했기 때문에 병자호란 이후에는 조선 왕실에서조차 사용이 금지돼 오직 중국의 황제를 높이는 데만 사용됐다. 중국에 공납하는 일을 맡은 지방 관리들의 횡포가 극심해 황칠나무가 생산되는 지역의 백성들은 나무에 구멍을 내고 후추를 넣어 말라죽게 하거나 아예 베어 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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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로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던 황칠은 약 200년 동안 그 명맥이 끊어지게 됐다. 백성들에게 ‘악목’이라 여겨지던 황칠나무는 외면을 받았고, 이와 함께 칠 기법 전수도 끊어지게 됐다. 그러던 중 1970년대 후반, 국내학자가 일본에서 열린 칠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다가 황칠의 존재를 알게 됐고, 잊혀졌던 황칠에 대한 연구가 재개됐다.
황칠은 황칠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 뽑아낸 수액이다. 이 수액은 처음에는 유백색이었다가 공기와 만나면서 점차 황색으로 바뀐다.
황칠나무는 전라남도 서남 해안지역과 제주도 일부 지역에서 자라는 상록 활엽교목으로, 15년은 자라야 수액 채취가 가능하다.
게다가 한 그루당 평균 8.6g 정도밖에 채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원료 자체가 매우 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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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6,original,right[/SET_IMAGE]우리나라 전통색으로 불리는 오방색(청 적 백 흑 황) 중 중앙을 의미하는 황색으로 표현되는 황칠공예는 도금과 달리 천연 투명도료이기 때문에 재질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줄뿐더러 벗겨지거나 녹이 슬지도 않아 보관성이 뛰어나다. 황칠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은은한 빛깔에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재질에 따라 다양한 황색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은 가치를 더한다.
또한 금속 가죽 종이 옷감 유리 등 어느 재질에 칠해도 그 색이 잘 나타나 활용성이 높다. 사람의 신경을 안정시켜주는 ‘안식향’이라는 독특한 향기를 지니고 있는 것도 황칠의 특색 중 하나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사라질 뻔한 고귀한 황칠 전통공예. 극소수이지만 전통의 아름다움을 다시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기에 다시금 황칠의 아름다움은 빛을 발하고 있다.
[RIGHT]사진 안홍범 | 글 김정아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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