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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봉 씨가 하프마라톤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서울로 떠났다. 팔순 노모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귀가 어두운 노모는 아들을 보기 위해 서울로 향한다.
이장 아들 등에 업혀 마라톤대회가 열리는 한강 변에 도착한 노모는 기봉 씨를 찾는다. 1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기봉 씨 목에는 완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메달이 걸려 있다. 기봉 씨는 메달을 노모에게 걸어주려 하고, 노모는 마다하지만 어느새 까치발이다.
‘맨발의 기봉이’는 정신지체장애 1급인 아들이 팔순 노모를 지극한 효심으로 모시는 가슴 뭉클한 영화다. 엄기봉이라는 실제 인물을 소재로 했다. 이 영화에서 톱스타 신현준 씨는 마흔 살 노총각 기봉 씨 역을 맡아 열연했다.
사실 배우 신현준의 이미지는 카리스마로 대표된다. 1990년 데뷔작 ‘장군의 아들’에서 하야시 역을 맡은 이후 주로 액션물에 출연했다.
그래서 그의 강렬한 눈빛이 순박한 노총각 기봉 씨의 눈빛으로 바뀔 수 있을지, 과연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5월 2일 오후 서울시내 한 영화관. 그가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효 홍보대사’로 임명받는 자리였다.
러닝타임 100분의 영화가 끝났다. 그리고 영화감상 전의 카리스마 넘치던 ‘하야시’가 어느새 눈빛이 맑은 ‘기봉이’로 변해 있었다.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영화에 담고 싶었어요. 밥 두 공기와 상추쌈이 전부인 밥상에도 행복해하는 기봉이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B]“엄기봉 씨 효심에 감동” [/B]
신현준 씨가 이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것은 TV에서 ‘맨발의 기봉 씨’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다.
영화에서 기봉 씨의 팔순 노모로 나오는 탤런트 김수미 씨를 설득하기 위해 그가 직접 장문의 편지를 써서 갖고 갔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일화다. 그만큼 꼭 해보고 싶은 연기였단다.
세상에 엄마밖에 모르는 순진무구한 기봉 씨는 엄마를 위해 달리기를 한다. 오직 엄마에게 틀니를 해드리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린다.
신씨가 ‘효 홍보대사’에 위촉된 것은 영화 ‘맨발의 기봉이’ 덕이 크다.
“어깨가 무겁습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모든 자식들이 부모님께 극진히 효도할 수 있도록 ‘효 홍보대사’로서의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위해 많이 뛰었다. 엄기봉 씨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하기 위해 체중을 크게 줄였다. 그래서인지 해쓱해진 모습이다.
“다른 영화와 동시에 촬영하느라 2년간 이 영화를 찍었습니다. 이제까지 영화 찍으면서 달리기한 걸 다 합쳐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안 될 겁니다. 지난 겨울이 무척 추웠잖아요. 그래서 더 힘들었습니다. 남해 다랭이 마을에서 영화를 촬영하던 중 설을 맞아 스태프들과 떡국을 같이 먹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영화를 촬영하며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기봉이 어머니에게 메달을 걸어드리는 장면인데요. 어머니는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까치발을 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머니들은 모두 그런 것 같아요. 내 아들이 언제나 최고라고 생각하죠. 영화를 보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많이 느꼈어요. 몸이 불편한 사람도 저렇게 효도를 하는데, 제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신현준 씨 역시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눈가에 촉촉한 이슬이 맺힌다. 그 역시 어머니의 따뜻한 정을 잊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착한 아들이다.
[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B]“모두가 효자 되도록 앞장설 터”[/B]
이쯤에서 그에게 궁금했던 질문 하나를 던졌다. 실제로도 효자인지…. 그는 잠시 주춤했다.
“부끄럽습니다.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제 위로 누나가 세 분 계신데 모두 제가 어려서 유학을 가고 집에는 저 하나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냐오냐’하며 큰 것 같아요. 유치원 때 사진을 보면 어머니가 항상 등장해 원장선생님으로 착각될 만큼 어머니는 사진에서 빠지지 않았어요. 제가 곧 마흔이 되지만 지금도 어머니에게 귀여운 아들 노릇을 합니다.”
그는 아흔이 넘은 어버이를 즐겁게 해드리려고 춤을 추는 칠순의 아들 이야기를 했다. 그 자신도 여전히 어머니 앞에서는 어리광 부리며 애교를 떠는 착한 아들일 뿐이다. 실제로 신씨는 영화계에서 효자로 소문나 있다.
“세 누나와 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납니다. 어머니께서 어린 저를 등에 업고 누나들의 도시락을 싸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어머니가 읽어주시던 동화에서 저는 동화책 속의 밤비가 되어 같이 울기도 했고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집에는 어머니가 새벽마다 기도할 때 앉던 작은 의자가 있다.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던 그 의자를 볼 때마다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고.
“기봉이 아저씨 때문에 영화도 찍고 과분한 ‘효 홍보대사’까지 됐습니다. 게다가 청와대를 방문해 대통령도 만났습니다. 그만큼 효가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겠죠. 가끔 젊은 세대의 효심이나 어른을 공경하는 예의범절이 옛날 같지 않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그런 소리를 듣지 않도록 기봉이의 순수한 마음처럼 제가 먼저 앞장서 효를 실천하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RIGHT]이병헌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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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