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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환은 바르게 말하기 위해 국어사전을 보고, 좋은 진행자란 ‘들어주는’ 사람임을 일찌감치 깨닫고 잘 듣는 방법을 연구하는, 그러므로 앵무새가 될 수 없는 진행자다. 그가 국가의 정책을 국민에게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KTV(한국정책방송) B스튜디오의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자 PD와 스태프들이 뚫어져라 보고 있는 모니터 안에서 스튜디오는 거짓말처럼 말끔하고 긴장과 이완의 묘미가 순탄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NG도 없었고, 심지어 내내 화기애애하다.
KTV의 ‘아하! 그렇군요’는 국가의 정책을 국민에게 바로 알리는 게 목표인 프로그램이다. 지난 3월 말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부동산 3대 정책 대해부, 역모기지론, 육아 휴직 관련 법안, 생계형 금융 부조리 대책 등이 주제였다. 그러니까 자못 진지하고 탐구적인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 타이틀이 주는 뉘앙스에서 읽히듯 쉽고 편안하게 정책을 전달해야 하는 국가적 사명을 띠고 있기도 하다. 그다지 쉬워 보이지 않는 숙제다. PD에게는 뭔가 빅 카드가 필요했을 텐데 담당 이병용 PD의 선택은 정재환 씨였다.
[B]유익하면서 재미있는 프로그램 선호[/B]
정재환이라는 카드가 어떻게 쓰였는지는 딱 한번만 봐도 알 수 있다. 행정부의 실무 책임자와 날카로운 비판의 검을 숨기고 온 전문가, 그리고 최고의 이슈로 떠오른 정부 정책이라는 삼자가 대면하는 자리를 조리하는 정재환의 능숙한 솜씨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보는 사람은 좋지만 애초에 그에게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지 싶다.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은 유익하면서 재미있거나, 재미있으면서 거기서 끝나지 않고 유익함이 들어 있거나. 아주 단순하죠.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 만나기가 쉽지는 않아요.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정말 좋은 정보를 알리는 프로그램이구나 생각은 했어요. 이런 정보들을 어떻게 말랑말랑하고 먹기 좋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걱정하지 않았어요. 그건 PD와 작가, 그리고 제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면 되는 문제니까요.”
때때로 상식을 뒤엎는 남자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남자가 더 매력적인 법이다. 정재환은 후자로, 오래 전에 그가 낳았던 다소 썰렁한 유행어 ‘반듯한 남자’를 몸소 구사하는 대답을 들려줬다. 그리고 역시 “기존의 정보 프로그램보다는 내가 훨씬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했어요. 내심 자신을 갖고 있었던 거죠”라는 식의 농담과 진담의 경계에 있는 정재환식 유머를 추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의 피에는 아직도 ‘개그맨의 추억’이 흐르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만도 하다. ‘정재환과 정책 프로그램’이라는 단어가 쏘아 올려졌을 때,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개그맨과 정책 프로그램’으로 바꿔 들었을지 모른다. 재작년, 김미화 씨가 처음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맡는다는 게 알려졌을 때, 어떤 사람들은 시작하지도 않은 방송의 질을 미리부터 걱정했다. 그러나 정재환은 “그런 일이 있었어요?” 하며 세간의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툭 쳐버렸다.
그는 마치 처음부터 개그에 몸담은 적 없다는 듯 꽤 오랫동안 진행자로 활동해왔다. 간간이 드라마에 제법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하기는 해도 개그는 안 했다. 뒤늦은 대학 입학이 화제가 된 것도 벌써 오래 전 일이고, 그는 지금 사학과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B]좋은 진행자는 ‘남의 말 잘 듣는 사람’[/B]
“그래도 제가 코미디를 시작한 지가 20년이나 된 사람인데, 어떻게 코미디에 애정이 없겠어요. 제 생각은 이래요.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든 그 프로그램에서 요구하는 진행을 해줘야 된다. 그 원칙을 지키면서 사이사이 농담을 슬쩍 밀어 넣는 거죠.”
물론 국가의 정책을 다루는 중대한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락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은 아니죠. 낄낄거리고 웃기고, 그런 걸 목적으로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농담을 해요. 그런데 많이들 웃어 주시는 거예요. 요즘 사람들 정이 많더라고요. 웃다 보면 딱딱한 정책 얘기가 주는 긴장이 이완된다고 할까요. 그러면서 분위기를 좀 환기하고, 다시 진지한 얘기에 몰입하고. 그렇게 긴장, 이완, 긴장, 이완. 이런 무드는 어디서나 필요하잖아요.”
롤 모델이 있느냐고 묻자 망설이지 않고 임성훈 씨를 지명했다.
“지금은 성훈이 형더러 ‘국민 MC’라고들 하는데, 전 형님이 지금보다 인기가 없을 때부터 성훈이 형 진행이 좋았어요. 대개 말 잘하는 사람이 진행자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진행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잘 듣는 사람이 해야 돼요. 그래서 저는 ‘잘 듣는’ 연습을 했어요. 정말 중요한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는데, 생각이 안 나서 그 순간에 뱉어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요. 그럴 때는 기다려야 하거든요. 그런데 방송은 기다려주지 않죠. 그래도 진행자는 잘 기다려야 해요. 성훈이 형은 굉장한 달변가세요. 그런데도 방송이 시작되면 들어주는 쪽이 되죠. 성훈이 형보다 더 잘 듣는 진행자, 이게 제 욕심이에요.”
인터뷰가 있던 날, ‘아하! 그렇군요’ 팀의 녹화 내용은 ‘장애인 고용 확장’에 관한 것이었다. 이 녹화 테이프는 장애인의 날인 지난 4월 20일 방영됐다. 프로그램의 역할에 대해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일단 알아야 활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또 “서민층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연예인을 인터뷰하면서 연예인에게 직접 명함을 받아보기는 그가 처음이었는데, 그가 내민 명함에는 ‘한글문화연대 부대표’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의 회원이며, ‘아름다운 가게’에서 마련하는 행사의 단골 진행자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곧은 마음은 언제 어디서든 힘을 갖는다. 애초 그에게 걸었던 기대란 ‘딱딱한 주제를 부드럽게 반죽하는’것이었을지 모르나, 나는 그가 농담을 빌려 참된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바로 그런 점이 눌변은 아니지만 좌중을 한방에 휘어잡는 달변도 아닌 정재환이라는 진행자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RIGHT]정다운 객원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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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