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 하나의 세계가 펼쳐지고 사라지는 과정에 감히 빗댄다. 매일같이 수많은 세계가 펼쳐지고 사라지는 셈이다. 짧든 길든, 얕든 깊든 한 사람의 인생이 축적된 과정을 떠올려보면 누군가의 세계가 흩어지는 게 참 아쉽다. 자서전은 그 세계의 기록이다. 한 사람의 세계가 허무하게 지워지기 전 조금이라도 보존하고자 하는 시도다.
자서전은 유명하고 특별한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특별함은 주관적이다. 다수가 특별한 사람·사건으로 여겨도 내게 감흥이 없다면 그건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다. 나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소재면 나에게 있어서는 충분히 특별한 일이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면 독자보다 스스로에게 좀 더 집중해도 된다. 집필의 목적 역시 기록에 방점을 둘 수 있다.
내 이야기를 담담하고 진솔하게 풀어나갈수록 내 세계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질 독자가 있다. 가족. 남들 눈에 평범하디 평범하게 보이는 사건도 나와 가족들의 눈에는 각별할 수 있다. 막상 자서전을 만들기로 했어도 누군가 내 인생 이야기를 엿보는 게 불편할 수 있다. 그때도 가족과는 공유할 용기가 생긴다. 뭉클스토리는 ‘가족을 위한 자서전’을 제작한다. 직접 글을 쓰고 책을 제작하는 데 벽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 주요 대상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제작하는 자서전으로 엄밀히 말해 생애사 기록에 가깝다.
사라지는 평범한 이야기를 잡다

▶ 뭉클스토리 이민섭(왼쪽)·정대영(오른쪽) 대표 ⓒC영상미디어
뭉클스토리는 두 대표의 삶에서 비롯했다. 정대영 대표는 2010년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는 그의 기억 속에 살아 계셨지만 정작 아버지를 떠올렸을 때 아는 건 많지 않았다. 중동 근로자로 일하던 아버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피상적으로는 알았지만 정작 인생의 주요 시점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몰랐다. 정 대표는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적는 동아리 ‘뭉클’을 조직했다.
“일반적으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산 사람들이 책을 내죠. 정작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치는 건 대다수가 평범한 사람이에요. 평범한 삶에도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는 법이잖아요. 그 과정이 죽음과 함께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어요.”(정대영)
몇 년 뒤 이민섭 대표가 찾아왔다. 평범한 사람들의 자서전, 이 대표 역시 이 부분에 갈증을 느끼던 터였다. 그에게도 계기가 있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신장을 기증하며 가족들이 몇 주간 병원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전에 듣지 못한 결혼 전 부모님의 꿈과 연애 이야기를 비롯해 자식을 기르며 느꼈던 어려움에 대한 진솔한 사연을 들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부모님이 밟아온 인생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그 발자국을 자신이 뒤따라가는 것만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했어요. 나름 큰 꿈을 꿨고 제가 특별한 삶을 살 줄 알았죠. 기업에서 100명 중 2명 정도만 임원이 된다는 말에 회의감이 들고 임원은 과연 특별한 삶일지 의문이 들었어요. 어떻게 살지 고민하면서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평범한 삶에서 배울 점이 많았어요. 특히 부모님의 삶에 관심이 커졌는데 정작 부모님에 대해 아는 게 없더라고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생물학적·성격적으로도 제일 비슷한 사람인데 말이죠.”(이민섭)
참 묘한 인연이었다. 한 사람은 상실 후 평범한 일상의 기록에 주목했고, 다른 한 사람은 소중한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2016년 뭉클스토리는 법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평범한,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시작됐다. 뭉클스토리를 찾는 건 본인 또는 자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전자는 인생을 정리하는 심정으로 자서전 집필을 하나의 숙제로 여기며 많이 찾는다. 혹은 스스로 멋진 삶을 살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자서전에 대해 몇 번이고 고민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기 때문에 수월하게 진행된다.

▶ 뭉클스토리에서 발간한 책들 ⓒC영상미디어
반면 자녀가 찾는 경우는 부모의 삶을 재조명하고 싶어한다. 문제는 당사자의 의지다.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자서전이야?”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아 실질 제작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지 않다. 자녀의 설득으로 자서전을 만들기로 해도 막상 무얼 써야 할지 모른다. 두서없이 어린 시절부터 떠올린다. 이야기라는 게 참 그렇다. 뭘 말할까 망설이다 막상 시작하면 봇물이 터지듯 쏟아진다.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새로운 기억이 떠오른다. 몇 차례 인터뷰를 진행하고 글로 담아내는 기간은 3개월, 비용은 약 200만 원이다.
부모를 이해하는 매개체
“본인의 자서전을 받아보면 어떨 것 같아요? 전 엄청난 감격을 상상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그저 후련하다고들 표현하세요. 오히려 제작 과정에서 울컥울컥 감정이 복받치더라고요. 지금까지 자녀에게도 말 못한 가슴속 이야기를 하고 나면 숙제를 하나 끝냈다는 느낌이래요. 자녀들은 그 반대예요. 결과물을 받고 거의 펑펑 울었다고 해요. 몰랐던 부모님 이야기를 알게 되기도 하고 알고 있던 이야기도 책으로 만났을 때 감동이 다른가 봐요.”(정대영)
왜 안 그렇겠는가. 매체의 인물 인터뷰는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또는 주제를 잡고 들어간다. 결과물도 많은 사람이 공유하니 부담감이 있다. 반면 자서전 인터뷰는 결이 다르다. 우선 독자에 대한 부담이 없다. 거기다 인생의 전 과정을 토해내는 작업이다. 사연 없는 삶이 없듯 켜켜이 쌓인 이야기 상자를 열면 다른 작은 상자가 나오고 옆에 있는 상자도 꺼내게 된다. 그동안 기억 구석 깊이 뒀다가 먼지를 털어낸 상자도 있을 것이다. 자신조차 열기 겁이 났던 상자를 열어볼 용기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30대 여성이 뭉클스토리를 찾았다. 엄마의 자서전을 만들어달라는 의뢰였다. 이 여성은 어려서 입양이 됐는데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는 사연이었다. 다만 엄마는 딸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상황이었다. 엄마의 삶을 되돌아보는 작업이 자신의 뿌리와도 연관되어 있을 터였다. 엄마는 자서전을 만들며 과거 이야기를 꺼냈고 딸은 그동안 몰랐던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 자서전 제작은 모녀를 잇는 매개체가 됐고 자서전 발간 후에는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늘어난 셈이었다.
우애 좋은 4남매가 뭉클스토리를 찾은 경우도 있다. 치매가 발병한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아버지의 기억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남매의 마음이 자서전으로 연결됐다. 아버지의 기억이 흐릿해졌다가 온전히 돌아왔을 때 남긴 이야기와 자녀들의 추억을 더듬어 하나의 책이 만들어졌다. 가족이 함께 기록한 아버지의 자서전은 무엇보다 값진 유산으로 남게 됐다.
자서전은 가족을 잇는 매개체가 됐다. 어려서는 잘 몰랐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면서 문득 깨닫는다. 내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이 부모님의 적지 않은 희생과 사랑으로 얻은 대단한 일이었다는 것을. 특히 부모의 입장이 되면 더 그렇다. 내 아이를 낳은 후에야 부모님은 나를 낳고 어떤 마음이셨을까, 사춘기 자녀가 반항할 때면 우리 부모님 심정은 어땠을까, 그제야 부모를 이해하는 일이 깊어지는 것이다. 자서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은 비슷한 상황을 어떻게 이겨나갔는지 지혜를 구하기도 한다.
제작자 입장에서 난감한 경우도 있었다. 평생 농사를 업으로 삼아온 어르신이 의뢰한 경우다. 봄 되면 씨 뿌리고 가을 되면 수확하는 인생의 반복이었다. 퍽 난감했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흥미를 자극했다. 자녀를 서울로 대학 보냈을 때,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배우자를 데리고 왔을 때, 자그마한 손주를 처음 안았을 때. 그 인생의 희로애락은 자녀의 삶과 궤를 같이했다. 누가 봐도 굴곡 없는 인생이었지만 당사자에 있어서만큼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특별한 이야기였다.

▶ 1, 2 서울 양천구 어르신을 대상으로 진행한 자서전 출판기념회 ⓒ뭉클스토리
흔히 하는 오해가 자서전은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쓴다고 여기는 점이다. 삶은 계속 변한다. 20대, 30대, 40대 자서전을 계속 쓸 수 있고 1편, 2편, 3편이 나올 수도 있는 일이다. 미완의 인생에서 기록의 완성은 있을 수 없다. 자서전은 정리의 과정이 아닌, 정립의 과정이다.
“자서전은 미완의 이야기예요. 아무리 공을 들이고 오랜 기간 작업을 해도 뭔가 아쉬움이 남죠. 근본적으로 삶이 미완이기 때문에 내용은 완결이 안 되고 아쉬움과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어요. 자서전을 종합적으로 쓰기 위해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에요.”(정대영)
현재가 기록하는 진행형 역사

▶ 3 파독 근로자들의 자서전을 낸후 기념 촬영을 한 이민섭(왼쪽),정대영(오른쪽)대표 ⓒ뭉클스토리
자서전은 역사의 기록물이 되기도 한다. 자서전의 주인공으로 파독 근로자를 담았을 때 그들의 인생에서 당시 시대적 배경이 묻어났다. 독일로 가야 했던 사연은 역사였고 파독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일, 불운한 사건 등은 개인 기록사에 남길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손녀가 신청한 할아버지 이야기는 근현대사의 증언이었다. 1926년생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로 무등독서회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하고 일본의 패망을 전하는 전단지를 뿌리기도 했다.
“독립운동은 책에서만 본 과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독립운동가가 엄연히 살아 계시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분이더라고요. 직접 들으니 신기하고 느낌이 남달랐어요. 지난해 독립유공자가 63명 생존해 계셨는데 올해 초 48명으로 줄었대요. 이 감정을 우리만 기억하고 공유하는 게 아니라 더 늦기 전에 확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생들과 함께 독립유공자분들의 자서전을 제작하고 있어요.”(이민섭)
뭉클스토리가 만든 자서전은 80여 권. 청년의 감성으로 누군가의 세계를 기록하고 있다. 자서전 주인공의 삶의 궤적과 감정을 좇다 보면 좋은 책 읽는 것 이상의 감명과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삶을 음미하는 과정이다. 뭉클스토리는 ‘기록과 소통’이란 범주 안에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독립유공자의 자서전이 끊임없이 발굴될 수 있도록 소셜 펀딩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재개발을 앞둔 마을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어떠한 형태, 범위로 영역을 넓히든 뭉클스토리의 분명한 목적은 세대와 세대, 계층과 계층을 잇는 기록에 있다.
“자서전 제작이 부모와 자녀 간 소통의 매개체가 될 수 있어요. 부모님과 대화를 하고 싶은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자서전을 통해 소통해보세요. 저는 지금도 부모님의 새로운 부분을 알아가고 있어요. 그때마다 기분도 좋아지고 저 자신을 좀 더 이해하게 돼요. 부모님을 알게 되며 나에 대해 고민하는 거죠. 많은 분들이 그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이민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