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지난 11월 28일 오후 4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당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는 ‘누리호 시험발사체’가 거대한 연기를 내뿜으며 힘찬 불꽃과 함께 하늘로 치솟았다. 발사체는 엔진 연소가 종료된 발사 후 151초 시점에 75km 고도까지 상승했고, 이후 관성 비행을 계속하면서 319초께는 최대 고도 209km까지 도달했다. 낙하는 발사장에서 남동쪽으로 429km 떨어진 제주도 인근 해상에서 이뤄졌다. 이날 발사는 당초 목표했던 연소시간 140초를 11초나 초과하면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최종 결과가 내려지기까지 항우연 관계자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 고정환 본부장이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마련된 누리호 엔진모형 앞에 서 있다. ⓒC영상미디어
“일단 140초 이상 연소된 거 확인하자마자 박수 한 번 쳤어요. 여전히 날아야 하는 거리가 남아서 가볍게 박수 치고 조용히 지켜봐야 했거든요. 잘 날았는데 엉뚱한 곳에 떨어져도 문제잖아요. 완전히 끝날 때까지 지켜봤죠. 최종 확인까지 하고서야 안도했어요.”
우리나라는 1.5톤급 실용위성을 지구 저궤도(600~800km)에 올릴 수 있는 3단형 우주발사체 ‘누리호’를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 중이다. 1단은 75톤급 액체엔진 4개, 2단은 1개, 3단은 7톤급 액체엔진 1개로 각각 구성되는데 시험발사체는 2단에 들어갈 엔진이다.
“지상에서 하는 시험이 아닌 비행으로 엔진 성능을 검증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어요. 비행 중에는 가속도, 압력 등 급변하는 요인이 많은데 이번 시험으로 엔진이 정상 작동한 것을 확인한 거니까요.”
일반적으로 로켓 성능을 평가하는 요소 가운데 ‘추력’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추력은 물체를 운동 방향으로 나가도록 하는 힘을 가리키는데, 로켓의 추력은 연료를 태우면서 분사되는 가스의 반동에 의해 생기는 힘이다. 때문에 엔진의 추력, 그 추력이 일정 시간 유지되는지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엔진이 예정 시간 동안 액체연료를 연소해 목표 고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어서다. 시험발사체의 목표 연소시간 역시 향후 임무에 있어 필요한 시간이다.
75톤급 액체엔진 개발은 큰 의미를 갖는다. 누리호 개발의 근간일뿐더러 이 기술을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7개국에 불과하다.
“발사체 기술은 미사일 기술과 같아요. 미사일은 대량 살상무기니까 관련 기술 이전이 불가능하고요. 발사체 기술을 확보하려면 우리 스스로 개발해야 한다는 의미죠. 개발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그 해답이 서적에 있는 것도, 다른 나라에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안에서 최대한 헤쳐나가야 했습니다.”
국내 연구진이 엔진 개발을 위한 기술문제를 자력으로 풀어낸 점이 높은 점수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엔진 연소 불안정’ 문제를 해결한 게 큰 업적이다. 연소 불안정은 엔진 내부에서 연료와 액체산소가 만나 연소하는 과정이 균일하게 이뤄지지 않는 현상이다. 연구진은 엔진 설계를 20여 차례 변경하고 지상 연소시험을 100차례 실시하며 약 14개월에 걸쳐 이 문제를 개선했다.
연료탱크를 제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상 탱크는 금속재로 두껍게 용접할 수 있기 때문에 용접이 잘못되면 그 위에 덧댈 수 있는 반면, 발사체용 탱크는 비행을 해야 해서 용접 두께를 최소화해야 한다.
“최소 2㎜에서 최대 7㎜ 두께로 용접해야 합니다. 또 가벼워야 하니 쇠 대신 알루미늄을 쓰는데 이 소재는 용접하면 열 변형이 와서 공정하는 데 굉장히 애를 먹었어요.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죠.”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엔진이라는 점 또한 어려움을 더했다. 발사체는 연료에 따라 고체연료 로켓과 액체연료 로켓으로 나뉘는데 누리호에는 액체연료를 담는다. 고체연료 구조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엔진 내부에 가득 차 있는 형태로 그 연료를 균일하게 태우기만 하면 된다. 불이 한번 붙으면 끌 수가 없어 추력 조절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있다. 액체연료의 경우 연료를 공급하는 펌프와 제어하는 밸브, 연료에 불을 붙이는 연소 체임버 등 복잡한 구조다. 대신 정밀한 제어를 할 수 있어 우주발사체에 유리하다.

▶ 1 시험발사체가 기립하는 모습 2 한국형발사체 엔진 조립 현장
3 나로우주센터 종합조립동에서 시험발사체 비행모델을 조립하고 있는 엔지니어들 ⓒ항우연
누리호 완성하면 우주 주권 확보
누리호는 2013년 우리나라 첫 우주발사체인 ‘나로호’와 비교했을 때 성능과 역할 면에서 진보했다. 2단형 발사체 나로호는 100kg 무게의 소형 위성을 300km 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성능에 그쳤고 1단을 러시아가 제작한 것으로 사용했다. 이에 반해 누리호는 더 무거운 위성을 더 높이 우리 기술만으로 보낼 수 있다.
두 발사체는 외형상으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누리호는 나로호보다 1.5배 길어졌고 3단형이다. 누리호의 1·2·3단의 역할이 뚜렷하게 다르지는 않다. 궁극적으로 발사체 속도를 올리는 데 일조한다.
“각 단은 연료탱크로 이해하면 돼요. 물론 굉장히 커다란 탱크 하나에 연료를 모두 넣을 수도 있죠. 그러면 발사체가 올라가면서 탱크가 점점 비잖아요. 빈 공간은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1단이 연소되면 알아서 분리되고 이어서 2단도 연소하고 분리될 수 있도록 했어요. 무게를 줄이기도 좋죠.”
누리호가 완성되면 우리나라는 ‘우주 주권’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높인다. 우리가 필요할 때 우리 발사장에서 직접 위성을 우주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 외국 발사체를 사용하면 그 나라까지 위성을 옮겨야 하고, 그쪽 요구사항에 맞춰야 할 때가 있었다. 이러한 불편함을 덜 수 있는 건 당연하고 우리 위성기술이 유출될 걱정도 줄일 수 있다. 국가연합 형태로 진행되는 탐사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우주 탐사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련 기술이 있는 나라끼리 협력해요. 돈이 많은 나라라고 해서 끼워주지 않아요. 주고받을 수 있는 기술이 있는 나라가 우선이에요. 그 연합체에 속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기술적 기여를 해야 하는데 발사체 기술이 없다면 불가능하죠.”
다만 이번 시험발사체의 성능 검증이 누리호 최종 개발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식 로켓 발사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1단에 75톤급 액체엔진 네 개를 묶어 마치 한 개 엔진처럼 작동하게 하는 ‘클러스터링 기술’이 만만치 않다. 여러 개 엔진이 묶여 있다고 해도 같은 힘으로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고 본부장은 “네 개 엔진이 균형 있게 연소되는지가 관건”이라면서도 “엔진 개발만큼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누리호의 부품 수가 나로호 대비 최소 두 배 이상 늘어난 데 따른 부담, 초저온 액체연료를 담을 연료탱크 개발 등도 해결해야 한다.
이후 발사체 개발, 가속화 기대
우리나라는 항공우주 분야 선진국과 비교하면 더디지만 꾸준히 걸음을 뗀 끝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 1993년 KSR-1을 필두로 KSR-2(1998년), KSR-3(2002년), 나로호를 거쳐 이번 시험발사체까지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놓았다.

▶ 시험발사체와 한국형발사체 개요 ⓒ항우연
“발사체 개발 필요성과 환경이 애초에 달랐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술 수준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미국과 러시아는 그들끼리 경쟁이 있었기에 발사체를 만드는 게 더 시급했다면 우리나라는 과학적인 측면에서 개발을 시작했으니까요. 투자비용의 출발점도 다르죠. 이제 우리도 핵심기술을 확보했으니 이후 발전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빨라질 겁니다.”
연구원들의 마음가짐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고 본부장이 2015년 8월 본부장직을 처음 맡았을 때만 해도 연구진들 사이에서 ‘이게 될까?’라는 불안감이 앞섰다면 최근 들어 ‘이거 되겠다, 이거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
누리호 발사 이후 발사체 연구개발 분위기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누리호는 2021년 시험 발사될 예정이며 누리호 개발 사업은 2022년 3월에 종료한다.
“앞서 나로호는 몇 번 발사하고 후속 연구가 없었지만 누리호는 관련 후속 사업이 논의되고 있어요. 계속 발사체를 제작해서 우리 위성을 1년에 최소 한 차례 쏘아올리기 위함이죠. 후속 사업이 진행되면 개발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기술력도 더 향상될 것이고, 언젠가는 정부 주도가 아닌 기업이 발사체를 만들고 운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구상하고 있고요.”
마지막으로 고정환 본부장은 항우연의 지난 30년을 지켜봐온 사람들에게 전했다.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갈 수 없습니다. 아직 많은 단계가 남았지만 최선을 다해 끝을 보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