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케네디우주센터에 전시되어 있는, 인류를 달에 보냈던 새턴5 로켓의 엔진 부분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백종훈 대표. NASA는 이 3단 로켓을 케네디우주센터에서 13차례 발사하며 인간과 화물을 끊임없이 우주와 달에 실어 날랐다. ⓒ백종훈
2003년 나는 미국 플로리다태양에너지센터(FSEC)에서 액체수소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때 미국 항공우주국(NASA) 케네디우주센터와 차세대 우주발사체용 액체수소운용시스템을 연구할 기회를 가졌다.
NASA는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을 1972년부터 2011년까지 운용했고, 이때 NASA 케네디우주센터는 우주왕복선의 연료 공급과 발사 등을 담당하고 있었다. 2003년 당시 NASA는 우주왕복선 프로그램 운용 30주년을 맞아 자체적으로 액체수소 사용량의 효율을 계산해 보았다. 그런데 그 효율이 5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나머지 45%의 액체수소가 실제 발사에 사용되지 않고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NASA는 즉시 발사체 연료의 운용 효율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FSEC 고등에너지 연구부 극저온시스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던 내가 운 좋게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 당시에는 거의 매달 우주왕복선이 발사되던 때여서 대량의 액체수소를 생산하는 플랜트(Plant)가 존재했다. 그러나 아이로니컬 하게도 소량의 액체수소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액화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춘 연구소는 미국 내에 전무했다.
이에 착안해 나는 소형의 수소 액화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2003년 마침내 상용 극저온냉동기를 이용해 최대한 편리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수백에서 수천 리터 정도의 액체수소를 간편하고 안전하게 만들어 다양한 액체수소의 연구를 할 수 있는 ‘소형 수소액화기’를 설계·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이 소형 수소액화기를 이용해 NASA 케네디우주센터와 함께 액체수소를 응용한 다양한 연구를 했다. 이 연구 결과를 기초로 보다 큰 수소액화시스템을 케네디우주센터 내에 건설해 2016년까지 많은 실증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2016년 말 80% 이상의 효율을 갖춘 차세대 액체수소운용시스템을 개발해 NASA 본부에 보고했다.
이 차세대 액체수소운용시스템의 실증 연구는 현재에도 미국 케네디우주센터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시스템이 본래 우주발사체용 액체수소시스템으로 개발됐으나, 15년이 지난 2018년 현재, 성큼 다가온 수소경제사회의 큰 축으로 작동하게 됐다. 다시 말해 수소연료전지차용 수소충전소와 이들 충전소에 공급할 대량의 수소를 매우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송 및 저장할 수 있는 시스템의 기본원리가 됐다.
2020년대 중반쯤이면 현재 시험운영하고 있는 수소연료 전지차가 보편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량의 수소를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송·저장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때 이러한 형태의 소형 수소액화시스템의 설계와 운용 기술이 더 이상 우주 관련 기술이 아닌 수소충전소와 같은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기술이 될 것이다. 그것만 생각하면 오랫동안 액체수소 응용기술에 땀 흘린 보람을 느낀다.
2018년 말 현재 전 세계의 에너지 패러다임은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를 기반으로 하는 화석연료 에너지에서 수소에너지로 급격하게 전환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은 발빠르게 변화를 주도해나가고 있다. 유럽 국가들보다 그 속도가 더 빠르다.
에너지가 국력이란 사실은 중동국가의 ‘석유 무기화’를 통해 선행학습을 해왔다. 현재 한국의 에너지 기술력은 선진국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정부를 중심으로 수소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발 빠른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수소경제와 관련한 법안들이 상정되고, 산업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컨소시엄이 생기고, 지방자치단체들도 지역 내 수소 관련 기업들과 함께 다양한 정책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정책을 위한 정책이 아닌,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외화 획득으로 국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 신속히 수립되길 희망한다. 관련 분야에서 기업하는 분들과 투자자들도 단기간의 이윤에 골몰하기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인류를 달에 보냈던 새턴5 로켓을 볼 때마다 인간의 위대함과 모험심을 느낀다. 삼성이 선견지명을 갖고 반도체에 투자해 세계를 석권한 것처럼, 우리의 기업들이 수소에너지에 과감한 투자와 노력을 기울일 때다. 대한민국의 제2의 도약을 위해.

백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