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창의재단
한 초등학생 소녀가 있었다. 여느 아이처럼 밝고, 명랑하고, 노는 것과 장난을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 어린 시절, 자신의 적성을 잘 알지 못했다는 점까지 다른 아이와 비슷했다.
“초등학생 때 자연 등 과학 관련된 과목의 성적이 영 신통찮았어요. 그렇다고 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과학 쪽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러나 그 아이는 이후 과학을 전공하고, 과학 관련 공공기관에서 현재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물리가 세상에서 제일 즐거웠다”는 홍옥수 한국과학창의재단 소프트웨어인재육성실장. 그는 어떻게 과학의 세계로 빠져들었을까.
발단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한 ‘한국과학우주청소년단’ 활동이다. “당시 여자아이들은 걸스카우트나 아람단을 많이 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저에게는 ‘과학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한국과학우주청소년단을 권유했어요. 사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죠.”
담임 선생님의 혜안이었을까. 우연찮게 시작한 한국과학우주청소년단 활동은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 신의 한 수가 됐다. 매주 이어지는 과학체험 활동이 홍 실장 내면에 잠들어 있는 ‘과학 본능’을 깨운 것이다. “여름, 겨울마다 진행하는 각종 캠프는 물론이고, 별을 관찰하고 과학 상자를 조립하는 등 매주 과학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 조를 짜서 탐구대회에 참가한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죠.”
▶‘2019 대한민국 과학축제’ 사이언스 버스킹 무대
운명처럼 과학 만나 전공하고 ‘과학 나누기’
그런 홍 실장의 뒤늦은 과학 본능에는 물리 교사 출신인 어머니의 노력도 한몫했다. 방학 때마다 각종 박물관, 탐사 프로그램, 영화관, 고궁 등 다양한 장소로 그를 데려갔다. 그중에서도 홍 실장이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국립서울과학관. 특히 초등학교 5학년, 방학 특강으로 진행된 한 과학자의 강연이 그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확한 강의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주제가 ‘제3의 물결’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사회가 ‘제2의 물결’, 즉 산업화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제3의 물결인 정보화 기반 사회가 될 거라는 내용이었죠. 과학이 사회 변화를 이끌어간다는 사실이 너무 멋지고 근사해 보였어요.”
그렇게 과학 소녀로 거듭난 홍 실장이 중학생이 됐을 무렵, 운명적인 상대가 찾아왔다. 바로 ‘물리학’이다. “1학년 때 처음으로 배운 것이 ‘힘과 운동’인데, 정말 어마어마한 흥미를 느꼈어요. 이후 일상생활 속에 숨어 있는 각종 과학 원리를 발견하고, 이를 친구들에게 설명하면서 많은 재미를 느꼈죠. 특히 과학에 흥미 없던 친구들이 재미있어 하는 모습에 더욱 만족스러웠던 것 같아요.”
홍 실장이 얘기하는 물리는 거창한 수식이나 공식이 아니다. 과학은 친근하고 익숙한 주변에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예를 들면, 방과 후 친구들과 즐겨 먹는 떡볶이가 그렇다. “분식집 테이블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접시 하나에도 공기의 팽창, 마찰력 등 물리법칙이 숨어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 누구나 과학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이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물리법칙을 찾아내고, 이를 즐겁게 친구들에게 설명하던 중학생이 물리교육과로 진학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홍 실장은 대학교에서 부전공으로 언론정보학을 이수하며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기본 소양까지 충실히 갖추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하나의 운명적 만남. 대학 4학년 당시 한 통신업체의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진출한 미국에서 홍 실장은 잊지 못할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라는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방문이다.
“같은 메시지인데 전달 방식에 따라 관람객에게 줄 수 있는 경험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전시물 하나하나가 모두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관객들이 스스로 질문하도록 구성됐다는 것을 안 후 너무 놀랐습니다. 학교 밖 과학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인 만남이었죠.”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홍 실장은 과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나누는 활동을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다. <온몸이 물리 천지> 등 다양한 과학교육 콘텐츠를 만들고, 동아사이언스 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소프트웨어인재육성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과학에 매료된 한 소녀가, 이제 과학을 나누게 된 것이다. 홍 실장은 “약 30년 전 3번째 물결인 정보화 시대에 대한 강연을 들으며 과학의 꿈을 키웠다. 그러던 제가 이제는 4번째 물결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미래 세대를 준비시키는 일을 하게 돼서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렇다면 현재 과학문화 확산과 미래 영재 육성의 주축으로서 홍 실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경험’을 강조했다. 본인 역시 과학에 도통 흥미 없던 초등학생 시절, 우연히 접한 우주소년단 활동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과학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관심은 경험에서부터 나옵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과학 관련 경험을 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서는 누구나 여러 분야의 과학을 접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2018 과학창의체험교실
함께하고 생각하고 견학하고 즐기고
그런 의미에서 올해 준비된 다양한 과학문화 행사는 과거의 홍 실장 같은 예비 과학 꿈나무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함께 즐기는 과학문화’라는 취지 아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전국에서 개최하는 과학문화 행사 정보를 동(同), 고(考), 동(動), 락(樂)이라는 네 가지 테마로 분류해 ‘사이언스 릴레이 페어’ 누리집(www.2019science.kr)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이 중 동(同)은 가족·연인·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전시·공연’ 행사, 고(考)는 과학으로 생각하고 배우면서 즐기는 ‘강연’ 프로그램, 동(動)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즐길 수 있는 ‘견학·체험’ 프로그램, 락(樂)은 청소년에게 유익하고 재미있는 ‘캠프·연수’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홍 실장은 이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야의 과학 행사가 있으면 꼭 참가해보라”고 덧붙였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보를 얻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홍 실장은 무엇보다 청소년들에게 ‘적극적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도움을 청할 것’을 강조했다. 그 역시 초등학교 때 우주소년단을 권유한 담임 선생님, 중학교 때 물리의 즐거움을 가르쳐준 과학 선생님, 여러 체험 활동을 통해 적성을 깨닫게 해준 어머니 등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현재 이 자리에 올라올 수 있었다.
“‘관련 성적이 좋지 않아서’ ‘대회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서’ 등 여러 이유로 현실에 좌절하며 ‘내가 이 분야로 가는 것이 옳은지’ 의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보고 있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자신의 꿈을 널리 알리고, 고민을 함께 나누는 과정을 통해 진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청한 <사이언스 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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