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24일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당뇨병센터 소장 안철우 교수가 당뇨병과 코로나19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당뇨병, 특히 70세 이상 당뇨인한테서 의심 증상이 발견되었을 때 우선적으로 검사를 받을 기회와 입원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빠르게 증가하던 3월 4일 대한당뇨병학회가 한 제언이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등 과거의 바이러스 감염병 사망자 가운데 당뇨병 환자(합병증 포함)의 사망률이 높았고 코로나19에서도 당뇨병 환자 사망률이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고려한 의견이다.
2월 미국의사협회 공식 학술지에 발표된 중국의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연구도 같은 결과를 보인다. 중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4만 4672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평균 사망률은 2.3%지만, 당뇨병 환자의 사망률은 7.3%로 세 배 이상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당뇨병 유병률이 높은 고연령의 사망률은 70대 8.0%, 80대 이상 14.8%로 더 높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질병관리본부는 당뇨병과 갑상선기능저하증 등 내분비계 및 대사성 질환자 치명률(사망자/확진자×100)이 46.7%로 순환기계 다음으로 높다고 발표했다.(왼쪽 페이지 그래픽 참조). 그러나 “당뇨 합병증을 포함하면 치명률이 가장 높은 질병은 당뇨병일 것”이라는 게 의학계의 지적이다.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의 28.9%(115만 명, 2016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는 70대 이상이지만 매년 당뇨병에 걸리는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안철우(55) 교수는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는 43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절반가량이 자신이 당뇨 환자인 걸 모르고 있다는 것이고, 700만 명 정도가 당뇨병에 걸릴 수 있는 당뇨 전 단계에 놓여 있다”고 우려를 표시한다. 일본은 당뇨 환자가 2000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일본은 당뇨병을 ‘소리 없는 살인자’ ‘국민병’으로 규정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생활습관 개선 운동 등 당뇨 환자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안 교수는 “당뇨는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 노력이 필요한 질병”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생활습관뿐 아니라 현대사회의 스트레스와 미세먼지, 미세 플라스틱 등 환경 변화로 인한 호르몬의 교란도 당뇨병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안 교수가 사물인터넷(IoT)과 의학을 결합해 체중 관리하듯 당뇨와 호르몬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바이오 핏)을 연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30여 년을 당뇨병과 호르몬을 연구해온 안 교수에게 코로나19로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당뇨병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다.
코로나19 사망자 대부분 기저질환자인 이유
-코로나19 사망자 대부분이 기저질환자다. 특히 당뇨병과 갑상선기능저하증 등 대사성 질환자 비중이 높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면역력 저하를 가장 큰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세포성 면역과 체액성 면역이 있는데 최근에 면역 대사 분야 연구가 발전하면서 면역력과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같은 대사질환의 연관성이 강조되고 있다. 당뇨병에 걸리면 면역세포를 활성화하거나 감염된 조직세포를 파괴하는 ‘T세포’와 외부 침입 세균을 죽이고 혈액 속 노폐물을 없애는 ‘호중구’, 림프구 중 항체를 생산하는 세포인 B세포의 기능도 약해져 전반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진다. 내가 연구한 결과로는 당뇨병 환자는 항체가 생성되지 않고 세포성 면역이 떨어져 감염병, 암 등의 질병에 쉽게 걸린다. 백신을 접종해도 항체 생성이 잘 안 되고, 면역력이 떨어지면 혈당 조절도 안 되고 합병증이 잘 생긴다. 또 반대로 혈당 조절이 불량하면 면역력이 더 떨어지기도 한다.
-당뇨병은 어떤 병인가.
=의학적으로는 당화혈색소 6.5% 이상 또는 공복 혈장 포도당 126mg/dL 이상, 75g 경구 당부하(당 섭취) 후 2시간 혈장 포도당 200mg/dL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당뇨병은 당 관리가 안 되는 병이다. 음식물은 위장에서 소화효소에 의해 포도당으로 변해 우리 몸의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이때 필요한 게 인슐린이다. 인슐린은 당이 세포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췌장에서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못하거나 그 양이 충분하지 못해 포도당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혈액에 쌓여 여러 합병증을 일으킨다. 쌓인 당이 소변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당뇨병으로 불리지만 정확히는 ‘혈액 속에 당이 쌓이는 혈관병’이다. 나는 당혈병으로 부르는 게 맞다고 본다.
공복 혈당 100~125mg/dL, 75g 경구 당부하 후 2시간 혈장 포도당 140~199mg/dL, 당화혈색소 5.7~6.4%에 해당하면 당뇨병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고위험군인 당뇨병 전 단계로 진단한다.
-당뇨병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증상에는 무엇이 있나?
=목이 자주 말라 물을 많이 마시고(多飮), 소변을 자주 보거나(多尿) 많이 먹는(多食) 것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그러나 이런 증상은 당뇨병이 상당히 진전됐을 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나는 ‘100명의 당뇨 환자에게는 100가지 당뇨병이 있다’고 말한다. 증상이 비정형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습진·무좀·가려움 등의 피부질환, 생식기 질병, 눈이 침침해지거나 손발이 저리는 등의 증상(오른쪽 표 참조)도 당뇨병 예후일 수 있다. 당뇨는 간단한 혈당검사로도 확인할 수 있다. 병·의원 가는 길에 혈당검사를 받아보기를 권한다.
폭음·폭식이 젊은 당뇨 환자 늘리는 요인
-우리나라에서 당뇨병 환자가 늘어나는 이유, 특히 젊은 세대에서 증가하는 이유는?
=식습관이 서구화하면서 고칼로리와 고지방 섭취가 늘었지만 운동량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생활습관은 인슐린을 합성하고 저장과 분비를 돕는 베타 세포의 기능을 떨어뜨려 당뇨병을 일으킨다. 스트레스와 미세먼지, 미세 플라스틱도 호르몬 체계를 교란해 당뇨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폭음·폭식을 부르는 회식 문화가 젊은 당뇨병 환자를 늘리는 주요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술은 인슐린 저항성을 높인다. 폭탄주와 같은 폭음을 피해야 한다. 불면증도 멜라토닌 분비를 떨어뜨려 당뇨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당뇨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의식동원(醫食同原)이라는 말이 있다. 건강한 밥상이 최고의 명의다. 식습관만 바꿔도 당뇨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적절한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 호르몬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식사는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단백질, 지방을 골고루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소금과 설탕은 줄이고 고단백질, 섬유소, 비타민, 미네랄 섭취를 늘려야 한다.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는 게 좋다. 공복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 몸은 저장된 당분과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산화물질들이 인슐린 저항성을 높여 당뇨병의 원인이 된다. 당지수가 낮은 음식으로 식단을 꾸리는 것도 중요하다. 백미보다는 덜 정제된 곡물, 콩·보리 등이 섞인 잡곡밥이 좋다. 매끼 두 가지 이상의 나물, 달걀 1~2개, 생선을 먹는 것이 단백질과 지방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좋은 식단이다. 굽거나 튀기기보다 삶거나 찌는 조리법을 추천한다. 과일은 단맛보다 신맛이 강한 것을 가까이하는 게 좋다. 운동은 유산소운동과 근육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뱃살은 인슐린 저항성을 높이지만 허벅지 근육이 늘면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운동 잘 해야
-당뇨 합병증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예방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당뇨 합병증은 보통 신경, 눈, 신장 등으로 순차적으로 발생한다. 혈당이 높아지면 혈액이 끈적해지면서 혈관을 막거나 손상해 합병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뇌혈관·심장혈관·다리로 가는 대혈관이 막히면 중풍, 심근경색, 다리에 괴사가 생기는 당뇨병발 등의 합병증이 일어난다. 작은 혈관이 막히면 신경에 염증이 생긴다. 손발 저림, 감각 이상,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 발바닥에 스펀지를 대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신경 합병증을 의심할 수 있다. 시야가 흐려진다면 혈관 덩어리인 망막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심하면 실명에 이르기도 한다. 신장 기능이 점점 떨어지는 것도 주요한 합병증이다. 말기 신부전이 되면 투석을 받아야 하는 만큼 조심해야 한다.
당뇨 합병증은 인슐린 저항성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지면 인슐린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한다. 우리 몸은 인슐린을 더 많이 분비하려 하지만 인슐린 저항성이 있으면 혈당을 낮추는 능력이 떨어진다. 혈당이 높으면 인슐린 저항성이 염증을 유발해 합병증을 일으킨다. 당뇨 환자들에게 혈당 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당뇨 환자에게 추천할 만한 생활습관은?
=면역력을 높이는 식사와 적절한 운동은 필수적이다. 운동은 일주일에 세 번 50분 이상 해야 한다. 몰아서 하는 운동은 당뇨병에 효과가 없다. 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취미를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숙면도 중요하다. 멜라토닌 호르몬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오후 11시에 잠들고, 수면의 질을 높이면 당뇨병 예방·관리에 도움이 된다. 반신욕은 당장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미지근한 물에 15~30분, 일주일에 3회 정도가 적당하다.
-끝으로 당뇨 환자에게 해줄 이야기는?
=‘일병장수’라는 말이 있다. 하나의 병을 잘 관리하면 더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당뇨는 아직 완치할 수 없는 질병이지만 관리만 잘하면 합병증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당뇨를 두려워하지 말고 친구처럼 동행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관리하면 오히려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주치의 말을 잘 따르고 꾸준한 혈당 관리, 건강한 식습관, 규칙적인 운동, 정기적인 합병증 검사를 잊지 말기 바란다.
글 윤승일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