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종호 판사가 어릴 때 겪은 극빈의 경험은 ‘세상은 기울어진 저울’이라는 진실에 일찌감치 눈뜨게 해줬다. 기울어진 저울추를 조금이나마 평편하게 만들고자 법관의 길을 택했다.│우리학교 출판사
소년범의 대부 천종호 판사
“소년부 판사의 판결은 한 소년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기에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를 했습니다. 소년들에게 가장 적합하면서도 공정함을 잃지 않는 처분을 내리게 해달라고 소년들이 나의 처분을 죄에 대한 응보가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전환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달라고.”
부산지방법원 천종호 부장판사가 최근 펴낸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에는 위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법정에서 매서운 호통으로 소년들을 떨게 만들지만 재판이 끝나면 열악한 소년들의 처지에 눈물 흘리는 판사. 2018년부터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해 현재 소년재판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멀리 뛰기 위한 숨 고르기 시간으로 여기고 호흡을 가다듬는 중이다.
천 판사는 법조계에서 한직으로 여기는 소년재판을 자진해 2010년부터 8년간 1만 20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만났다. 그는 거듭 말한다. 비행의 거푸집을 벗기면 삶의 부조리와 폭력 앞에 아무런 보호막 없이 내던져진 아이들의 유약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말이다.
그는 소년원으로 송치되는 17세 비혼모에게 배냇저고리를 선물하고 굶주림으로 돈을 훔친 자매에게 용돈을 넣은 지갑을 건네주며 훔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이 지갑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밥 한 번 먹는 것이 소원이라는 아이의 말에 마음 아파하고 오래 떨어져 있다가 법정에서 만난 가족의 사연에 애틋해한다.
바쁜 와중에도 틈나는 대로 청소년회복센터(그룹홈)를 찾아가 코로나19로 더 힘겨운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이 라면으로 차려준 밥상 앞에 같이 앉아 눈물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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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 재판’ 시달리다 비행 청소년 실상 눈떠
천 판사가 법정 밖으로 눈길을 돌린 계기는 ‘컵라면 재판’ 때문이었다. 2010년 2월 창원지방법원으로 발령이 났고 소년사건을 담당하게 됐다. 하루 여섯 시간 동안 60~200명가량 아이들을 재판하느라 한 아이당 할당된 재판 시간은 3분밖에 없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컵라면 재판이라고 놀렸다. 그는 “이런 사정이라면 아이들은 법정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비행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기 어렵고 이것은 아이들의 재비행 예방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했다. 아이들이 다시는 법정에 서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하고 재판 과정에서 여러 방법을 강구했다.
판사로서 그와 법정 밖의 천종호는 어떻게 다를까? 그는 “법치주의 원칙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나도 판사인 이상 그 원칙을 위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년재판을 맡고 보니 비행 청소년들의 실상이 파악됐고 그들의 실상에 눈감는 것은 판사라는 직위를 떠나 사회의 한 어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생각이 그를 법정 밖으로 이끌었다. 그는 “비행 청소년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회복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소년보호 처분은 1호 처분에서 10호 처분까지 있다. 그중 아이들의 보호위탁을 한 사람 혹은 기관을 기준으로 크게 세 유형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보호자 또는 보호자를 대신할 사람에게 위탁하는 1호 처분이고 다음으로 민간인이 운영하는 격리시설에 위탁하는 6호 처분, 나머지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격리시설인 소년원에 송치하는 7호~10호 처분이다. 현재 민간인이 운영하는 6호 처분 기관인 격리 시설이 대전 이남에는 없다. 기관 한 곳을 만드는 데 수십억 원이 들어 비행 청소년을 위해 돈을 투자할 사람이나 기관이 없다.
국내 최초로 사법형 그룹홈 만들어
청소년회복센터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1호 처분은 보호자에게 위탁할 수밖에 없다. 보호자의 보호력이 없거나 약한 경우 재비행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천 판사는 “소년법정에 서는 아이들의 가정 상황을 보면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부모가 수감 생활을 하거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가정 등 결손 가정이 아주 많고 저소득층 및 빈곤 가정 비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전문가들에게 문의해보니 외국에 사법형 그룹홈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법형 그룹홈은 선진국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못한 나라에도 있는 제도다. 사법형 그룹홈 운영자를 찾아 나섰다. 비행 청소년을 돌봐야 하는 사법형 그룹홈을 하겠다고 섣불리 나설 사람은 없었다. 혼자서 차를 몰고 경남 전체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
그 결과 2010년 11월 최초의 사법형 그룹홈이 개설됐다. 명칭은 청소년회복센터라고 붙였다. 그 후 약 20개의 청소년회복센터가 개설됐다. 2016년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으로 청소년회복지원시설로 제도화됐으며 2019년 1월부터 국가 예산도 지원 받는다. 천 판사는 “청소년회복센터의 재비행 예방 효과는 매우 크다. 이로써 수많은 아이가 비행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회복센터는 시설이 아니라 (대안)가정을 지향한다. 시설과 가정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 그는 “운영자와 위탁되는 아이들의 관계 차이와 상호간 규모 차이”라며 “청소년회복센터는 5~10명 아이들과 운영자 부부가 함께 생활하는 일종의 대가족이다. 그러다 보니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2020년 7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프로그램에 나온 천종호 판사가 방송인 유재석, 조세호 씨 사이에서 우리나라의 소년재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tvN
성품 교정으로 비행 청소년 재비행 예방
이런 상황을 아는 천 판사는 청소년회복센터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지 못한 프로그램 개설에 나섰다. 비행 청소년들의 재비행 예방을 위한 중점 사항 중 하나는 성품 교정이다. 청소년회복센터의 운영자들은 부모 역할에 주력하므로 성품 교정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다.
그는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단법인 만사소년’을 설립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도록 했다. 코로나19로 대면 활동이 힘든 상황에서도 2인 3각 도보 여행, 극기 산행, 만사소년FC, 노래교실, 희망 인문학 교실, 북 콘서트, 독후감 대회 등 아이들의 필요에 맞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는 “프로그램 효과는 아주 크다. 독후감 대회를 하면 깜짝 놀라기도 한다. 아이들이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편견이다”라고 설명했다. 비행 청소년들이 쓴 독후감을 보면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흥미롭다고 천 판사는 전한다. 삶의 이야기가 글 속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천 판사는 “아이들을 잘 지도하면 훌륭한 작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국가별로 소년사법 체계는 상이하다. 천 판사는 우리나라 소년사법 체계와 관련해 우선적으로 개선할 점으로 “지방법원이 설치된 곳에 반드시 가정법원, 소년분류심사원, 소년원, 청소년회복센터도 함께 설치해야 한다”며 “일본은 각 현마다 지방재판소 하나, 가정법원 하나, 소년원 하나, 소년감별소(우리나라 소년분류심사원) 하나, 아동자립지원시설 하나 이상 설치돼 있다. 일본 제도를 보면 그 지역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관리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방법원은 있으나 가정법원이 설치되지 않은 지역도 있다. 소년원이나 소년분류심사원이 없는 지역도 있으며 청소년회복센터와 6호 처분 기관이 없는 지역도 있다. 그는 “처분을 받은 아이들이 전국으로 분산돼 수용된다는 의미고 비행 청소년 네트워크가 전국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올바른 교정 제도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다음으로 소년사법 체계의 컨트롤타워를 설치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다. 소년사법은 사법부뿐 아니라 법무부, 행정안전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다양한 부처가 관련돼 있고 상호 협조해야 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 그는 “현재 부처 간 협조 체계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비행 청소년들에게 전가된다”며 “최근 일본이 아동청을 설치한다고 발표했는데 우리도 서둘러 컨트롤타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유리 기자
코로나19로 ‘학력·행복도’ 낮아져
등교수업 확대로 극복한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등교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중·고등학생의 학습·정서 결여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2학기 전면 등교를 목표로 단계적으로 등교를 확대하고 6월 14일부터 수도권 중학교를 중심으로 등교수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6월 2일 ‘2020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및 학습 지원을 위한 대응 전략’을 발표하며 “2020년 교과별로는 중학교, 고등학교 국·영·수 모든 과목에서 ‘기초학력 미달’(1수준)의 비율이 전반적으로 증가했고 ‘보통학력 이상’(3수준) 학생들의 비율은 전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학교생활 행복도를 비롯해 교과에 대한 자신감, 흥미, 학습 의욕 등도 전반적으로 낮아진 것으로 확인했다. 2020년 학교생활 행복도를 ‘높음’이라고 답한 중3은 59.5%, 고2는 62.1%로 전년보다 각각 4.9%포인트, 3.5%포인트 낮아졌다.
이에 대해 유 부총리는 “코로나19로 일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 충분한 학습이 이뤄지지 못했고 자신감, 학습 의욕 저하 등도 학업 성취 수준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며 “교육부는 이번 평가 결과를 통해 확인된 학습 결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은 등교 확대와 학생들의 정서 및 사회성 회복 노력이다. 유 부총리는 “코로나19로 결손을 조기에 온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전면 등교를 목표로 대면수업을 체계적으로 확대하는 등 교육계의 모든 역량과 정부 차원의 집중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학습지원을 위한 1:1 맞춤형 학습지도와 학생들의 정서와 사회성 회복을 위한 전문가 연계활동,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취업 진로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 등을 담은 종합대책을 6월 말까지 수립·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유 부총리는 “코로나19로 인한 학습의 결손은 전 세계가 당면한 공통의 현안이지만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국가 역량의 차이”라며 “교육부는 모든 유관 부처와 협력해서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결손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교육 회복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