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17년 암과 싸우며 희망의 턱걸이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

김동호 씨가 집에 설치된 맨몸운동 기구에서 턱걸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한국 턱걸이 챔피언 김동호 씨
2024년 8월 경기 하남시에서 열린 ‘로드 오브 더 바(Lord of the Bar)’ 대회 풀업(정자세로 진행하는 턱걸이) 부문 결승 현장은 뜨거웠다. 일반인이 맨몸운동 실력을 겨루는 이 대회에서 두 명의 선수가 거듭된 카운트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은 특수부대 출신으로 턱걸이 분야에서 이미 이름을 알린 선수였고 한 명은 15년 넘게 암과 싸워온 청년이었다.
두 사람의 대결은 턱걸이 횟수가 29개를 넘어가서야 끝이 났다. 우승의 주인공은 20대 암 환자 김동호 씨였다. 이날의 승부를 담은 유튜브 영상은 50만 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두 달 뒤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맨몸운동 대회에서도 그는 1위를 차지했다. 이때 암 투병 사실이 밝혀지면서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2025년 12월 다시 출전한 ‘로드 오브 더 바’ 대회에선 풀업 프로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대회를 통틀어 일곱 차례 출전해 다섯 차례 정상에 오른 그는 전국 규모 대회에서 연이어 우승을 거두며 ‘한국 턱걸이 챔피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 같은 성과 뒤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이 힘들고 치열한 시간이 있었다. 그는 만 일곱 살 때부터 머리와 목 부위 지방세포에 암이 자라는 희귀질환 ‘두경부 지방육종’과 싸워왔다. 암 수술을 비롯해 틀어진 얼굴을 교정하기 위한 수술까지 스무 번이 넘게 수술대 위에 올라야 했다. 지난해에도 두 차례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잦은 수술로 오른쪽 신경에 문제가 생겨 지금도 수술 직후에는 턱걸이는커녕 팔을 들어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수술보다 더 힘든 것은 투병 과정에서 달라진 외모로 인해 마주해야 했던 무례한 시선과 질문, 놀림이었다. 한동안 집 밖에 나서는 것조차 두려웠다. 고된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 역시 그가 견뎌야 할 몫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시간을 버텨냈고 끝내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1월 말 충남 서산시 자택에서 만난 그는 TV 화면에서 본 모습보다 훨씬 단단한 체격이었다. 집 안에는 방문에 설치한 바(Bar)를 비롯해 맨몸운동을 할 수 있는 각종 기구가 놓여 있었다. 운동 강도를 높이기 위한 원판들도 눈에 띄었다. 그는 20㎏ 원판 세 개를 허리에 매단 채 턱걸이 연습을 한다고 했다. 굳은살이 단단히 박인 그의 손은 마치 체조선수 같았다. 수많은 시간 동안 자신을 단련해온 그에게 포기하지 않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 묻고 싶었다.

체조선수처럼 이곳저곳 굳은살이 박인 김동호 씨의 손. 맨몸운동을 오래한 결과다. 사진 C영상미디어

일곱 살 때부터 암 투병 중이라고.
처음에는 입안이 부어서 병원에 갔는데 볼거리라고 하더라. 약을 먹으면 낫겠지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얼굴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 서울 큰 병원에 갔다. 세 차례 수술 후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지금 다니는 병원으로 옮겼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워낙 재발이 잦은 암이라 거듭된 수술은 피할 수 없었다.

치료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방사선 치료로 머리가 엄청 빠졌다. 치료받을 때 특유의 역한 냄새도 잊히지 않는다. 항암 치료 당시에는 먹는 것마다 토해 몸무게가 30㎏까지 빠졌다. 안면마비도 오고 어깨 근육도 움직이지 않았다. 몸은 자주 움직이니 다시 돌아왔지만 지금도 오른쪽 얼굴은 만져도 느낌이 없다. 눈도 다 안 감긴다. 예전에는 음식을 씹을 수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3년 동안 어머니가 음식을 모두 다져서 매일 도시락을 싸줬다.

학창 시절을 암 투병으로 보냈겠다.
중학교 입학한 후 항암 치료만 14번 받았다.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있었다. 어두운 방에만 있었다. 현관 밖을 나가면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너 얼굴이 왜 그러냐’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다. 종양이 커져서 한쪽이 부풀었는데 그게 이상해 보인 거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면 ‘왜 마스크를 썼냐’며 궁금해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에는 마스크 쓰는 게 자연스럽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고 가족들에게도 폐를 끼치는 것 같았다. 나만 없어지면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나쁜 선택을 하려고 했다. 어머니가 난간에 매달린 나를 붙잡아서 살았다. 그날로 돌아가면 나를 한 대 때려주고 싶다. 위로도 해주고 싶고.

턱걸이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 검정고시를 치르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학년 때 체육선생님이 어떤 사람이 턱걸이하는 영상을 보여줬다. 그때는 몸이 좀 나아진 상태였지만 친구들에 비해 왜소하고 힘이 약했다. 투병을 오래하니 마음도 약했다. 운동을 하면 강해질 수 있을까 싶었다. 집에 와서 턱걸이 영상 속 주인공을 찾아봤다. 폐의 4분의 1을 떼어내고도 열심히 운동해 기네스 세계기록까지 세웠더라.

정자세로 턱걸이 하나를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
처음부터 턱걸이를 한 건 아니다. 한두 시간씩 스트레칭과 팔굽혀펴기 등 맨몸운동을 했다. 운동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밥도 먹지 않았다. 이렇게 1~2년을 하고 턱걸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매달리기만 하다가 억지로라도 철봉을 당기며 힘을 쓰다 보니 조금씩 되더라. 정자세로 턱걸이를 하기까진 한 달 가까이 걸렸다.

턱걸이 대회에는 언제 처음 나갔나.
2020년 코로나19로 비대면 시대가 되면서 온라인으로 턱걸이 대회가 열렸다. 양악수술을 앞두고 입원 전날 턱걸이 영상을 올렸는데 수술 후 내가 1등을 했다고 전화가 왔다. 말을 못할 때라 어머니가 대신 전화를 받았다. 소식을 전해 듣고 정말 기뻤다. 턱걸이를 시작한 계기인 영상 속 주인공인 이재호(리쌤) 씨가 개최한 대회였다. 리쌤이 전화를 해서 1등 소식을 알려주니 감회가 더 남달랐다. 그 뒤로 지난해 12월까지 다양한 대회에 총 일곱 번 출전해서 다섯 번 1등을 했다. 나머지 두 번은 3등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2024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맨몸운동 대회인데 그때 52개를 해서 1위를 했다. 시간제한 없이 한 번에 가장 많이 한 턱걸이 횟수는 70개 정도다.

대회에 출전하면서도 계속 치료받고 입원을 해야 했을 텐데.
태어나서 무언가에 몰두한 게 처음이었다. 수술이나 입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력이 줄어드는 게 몸으로 느껴지니 아쉬움이 컸다. 경쟁자들을 생각하면 불안하고 조급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회복한 뒤에 천천히 체력을 끌어올리자는 생각만 한다. 공자의 명언 가운데 ‘멈추지만 않는다면 천천히 가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2024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광화문 맨몸운동 대회’에 출전한 김동호 씨는 풀업 부문 1위를 차지했다. 2년 연속 1위를 기록한 그는 이날 52개의 턱걸이에 성공했다. 사진 C영상미디어

유튜브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운동 영상과 일상을 기록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암 환자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예상보다 많은 분의 관심을 받게 됐다. 응원도 많이 해주고 나를 보며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 기록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픈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 운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병도 다 나아서 ‘다 이겨냈다!’는 더 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턱걸이를 통해 무엇을 얻었나.
턱걸이는 나를 살린 운동이다.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고 다른 분야에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졌다. 또 가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온라인 대회에서 우승한 영상을 백 번도 넘게 돌려보셨고, 누나는 유튜브 촬영을 도와주고 대회가 있을 때 따라다니며 든든한 응원군이 돼주고 있다.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 물론 쉽지 않다. 나 역시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은 후 얻은 깨달음이다. 지금의 힘듦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고 기운을 내면 좋겠다.

당신이 그리고 있는 도전의 끝은 어디인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 턱걸이 챔피언이 되고 싶다. 기네스 세계기록도 세우고 싶다. 이 목표를 달성하면 스스로도 굉장히 뿌듯할 것이고 아픈 사람들에게 응원이 될 것 같다. 돈을 벌면 소아 환우들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는 꿈도 있다. 어릴 때부터 병원에 갈 때마다 아픈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힘을 보태고 싶다.

그는 최근에도 암이 재발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번에는 위치가 다소 좋지 않아 더욱 조심스러운 상황이지만 그는 오히려 담담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버텨낼 것이다. 주저앉는 대신 오늘도 그는 철봉을 잡는다. 한 번, 두 번 중력을 이겨내며 자신을 끌어올릴 때마다 희망도 단단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유선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