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장갑을 벗자마자 손가락 끝이 살짝 얼었다. 눈썹 위로 흐르던 땀방울은 금세 얼어붙었다. 눌러쓴 고글에는 옅은 얼음이 맺혔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영하 37도의 추위 속을 내달렸던 한 여성은 그때를 이렇게 떠올렸다. 오지 탐험가이자 기부 마라토너인 양유진 씨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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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곳곳을 달리는 양 씨의 모습을 상상하기엔 그의 체구는 상당히 작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자신이 달리는 이유와 목표를 밝히는 목소리와 눈빛은 누구보다 또렷했다. 몸 이곳저곳에 난 상처와 물이 차오르는 무릎이 영광의 흔적이라며 웃어 보였다.
“대학 시절 모 컨설팅 기업에서 인턴을 하던 중 의문이 들었어요. ‘내가 이 일을 하면서 평생 행복할 수 있을까?’ 돌이켜보니 남들처럼 스펙을 쌓기 위한 과정을 밟아왔을 뿐 진정으로 원하는 바에 도전한 경험이 없더라고요. 내가 해보지 않은 것 중 가장 힘든 것을 고민했고 그게 마라톤이었어요.”
기부와 연계한 가슴 벅찬 질주
양 씨는 우선 국내 주요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며 새 도전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도전의 성과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자 또 다른 도전에 대한 열망이 꿈틀댔다. 흔히 열악하다고 말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고 싶었고 그렇게 눈을 돌린 곳이 사막 마라톤이었다.
사막 마라톤은 5박 7일 동안 무동력 하에 250km를 달려야 한다. 식량과 침낭, 비상약품, 옷가지 등을 담은 10kg의 배낭은 덤이다. 대회 주최 측이 10km마다 소량의 식수를 제공하나 그마저도 부족해 경기를 포기하는 참가자들도 있다.
2014년 26세의 양 씨는 그해에만 세계 3대 마라톤인 사하라사막 마라톤, 고비사막 마라톤, 칠레 아타카마사막 마라톤에 모두 출전했다. 이 중 해발고도 3200m부터 시작하는 아타카마사막 마라톤은 그가 완주에 실패한 유일한 대회다. 처음 겪는 지독한 고산병 증상 탓에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 후 그는 고산병 대처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고 2018년 9월 아타카마사막 마라톤 재도전을 앞두고 있다.
양 씨의 달리기가 주목받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단순히 자신의 도전 정신을 만족시키는 것을 넘어 사회봉사와 연계시켰다. 자신이 뛴 만큼 기부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응원해주는 방식의 스포츠 기부다. 장애아동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어릴 적 막연한 꿈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실현해가는 중이다. 구체적으로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수익 중 일부는 기부를, 또 다른 일부는 대회 비용으로 소요하고 있다.
양 씨의 좌우명은 ‘저지르고 후회하자’다. 매번 대회 현장에서는 ‘내가 왜 또 이곳에 왔는가?’라며 후회하면서도 가슴 벅찬 성취감에 절대 포기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는 내년 초 예정된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기 위해 오늘도 운동화 끈을 고쳐 매며 말한다.
“오지를 다니면서 나눔을 실천하고 누군가에겐 용기와 영감을 주고 있는 제 미래의 모습을 늘 그려봅니다. 해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것이 있는 분이 계신다면 망설이지 말라는 조언을 전하고 싶어요.”
이근하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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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