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브러쉬씨어터 이길준 대표 “상상력만으로 전 세계 아동 사로잡았죠”
에든버러, 아비뇽, 케이프타운, 상하이… 지역은 달라도 표정은 다 같다. 네댓 살 꼬마아이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까지 연신 깔깔거리며 공연을 즐긴다. 무대 위로 뛰어오르기도 한다. 브러쉬씨어터 해외 공연 비하인드 동영상 속 아이들 모습. 해외에서 더 유명한 한국의 어린이 극단이다.
참 재밌는 극단이다. 우선 공연 내용이 그렇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마구마구 자극한다. 대표작은 법인명과 같은 ‘브러쉬(BRUSH)’. 그림을 그리면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단순한 드로잉 쇼가 아니다. 한국 설화를 바탕으로 배우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말하자면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는 배우들의 숨결이 붓 바람을 타고 관객에게 전해진다.
그런가 하면 ‘야오야오(오버코트)’는 영상을 주로 이용한 작품이다. 자폐 기질이 있는 한 아이의 상상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보여주는데, 호기심 많은 주인공 ‘야오’가 스크린 안팎을 넘나들며 모험을 즐긴다. 야오의 몸짓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라이브 음악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작은 악사’는 또 어떤가. 에어캡을 이용한 작품인데, 어릴 때 한 번쯤 가지고 놀던 일명 ‘뽁뽁이’가 산이 되기도 하고 눈이 되기도 한다. 음향 효과도 재료 자체를 최대한 활용했다. 이를테면 눈 밟는 소리는 에어캡이 터지는 소리다.
내용뿐만이 아니다. 설립 배경이나 운영 방식도 재밌다. 말하자면 상상 밖이다. 설립한 지 2년밖에 안 됐는데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규모가 굉장히 크냐고? 전 직원 통틀어 봐야 2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소규모 극단이다. 이곳 대표가 해외 경험이 많은 전문 마케터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길준 브러쉬씨어터 대표는 스스로 “군대 가기 전까지 포항에서만 산 토종 한국인”이라 면서 “영어는 거의 못하는 편”이라고 했다.

ⓒC영상미디어
해외서 더 유명한 소규모 극단
브러쉬씨어터는 지난 2015년 설립된 공연·문화 콘텐츠 사회적기업이다. 공연 제작부터 기획, 유통, 투어를 통해 다양한 문화권의 어린이, 가족 관객, 관계자들에게 작품을 선보여왔다.
이 대표는 연극영화과를 전공했다. 군대 제대 이후부터 약 10년간 대학로 연극계에 몸담았다. 배우도 했었고 연극 홍보기획 일도 했었다. 그 10년간의 시간이 지금의 브러쉬씨어터를 만들었다. 그는 “공연 콘텐츠 그 자체가 아닌, 유명 배우 위주로 돌아가는 국내의 스타 마케팅에는 한계가 있겠다 싶었다”면서 “때문에 ‘내 일’을 갖게 되면 해외로 먼저 눈을 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잘 만들어진 작품으로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고 한국으로 돌아오고자 했습니다. 문화 공연예술 수준이 높은 유럽에서 우리 작품으로 해외 극단들과 바로 경쟁하면 브러쉬씨어터의 체질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죠. 영어요? 떠나기 전에 동영상 강의 한 달 들은 게 다예요.”
그는 “오히려 말 안 통하는 해외가 한국보다 더 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지난 2년여 동안 세계 유수 연극 페스티벌을 돌아다니며 실력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2015년부터 2016년에는 세계 최대 연극 축제인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해 영국 주요 언론사로부터 별점 5점을 받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사업적인 성과도 있었다. 2015년 북미 아트마켓 APAP와 IPAY 부스 전시에 참석, 미국 브로드웨이 최대 에이전트와 월드와이드 계약을 성사시켰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대형 공연 제작·유통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중국 도시 투어 공연을 마쳤다. 올해 5월에는 2017 남아공 아시테지(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세계 총회 겸 페스티벌에 아시아 공연팀으로 초청받기도 했다.
물론 국내 공연도 한다. 주로 문화 소외 지역을 돌며 작품을 선보이고 서울시내에서 길거리 공연도 한다. 올해 하반기에는 무안, 철원, 양구, 영도 등을 순회할 예정이다.

▶대표작 ‘브러쉬’의 영국 공연 중 ⓒC영상미디어
사물을 바라보는 순수한 눈이 경쟁력
브러쉬씨어터 공연의 가장 특징을 물었다. 이 대표는 “휘황찬란한 무대 효과나 캐릭터의 변신 같은 건 없다”면서 “대신 철저히 콘텐츠 위주, 아이디어 위주, 스토리 위주”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자동차가 갑자기 로봇으로 변신하고 무대 천장에서는 무빙라이트가, 뒤에서는 스모그가 쫙 퍼지고 비눗방울이 뿜어져 나오는 그런 화려함은 없어요. 대신 작품 그 자체, 그 콘텐츠에 집중한다고 할까요. 아이디어 집약적인 작품이죠.”
또 다른 경쟁력은 바로 기동성이다. 배우 한 명씩 자기 봇짐만 메면 어디든 가서 공연이 가능하다. 비행기 탈 때도 별도의 화물칸이 필요 없을 정도. 이 대표는 “장소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극장뿐만 아니라 야외나 학교 강당에서도 공연할 수 있는 게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소통 중심의 공연장 분위기 또한 저희의 경쟁력이에요. 보통 공연장은 무대에만 불이 켜져 있잖아요. 저희 공연은 불을 다 밝혀서 함께 이 공간을 공유합니다. 때문에 관객도 모두 주인공인 셈이죠.”
그렇다면 왜 하필 ‘어린이 공연’을 콘텐츠로 삼았을까?
“사실 어린이만을 위한 공연은 아닙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볼 수 있는 공연인 거죠. ‘어느 세대나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저희가 지향하는 바예요. 회사의 모토도 ‘Brush up your inner child’입니다. 당신의 어린 시절을 깨워라. 아이들에겐 무한한 상상력을, 어른들에게는 순수성을 회복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공연의 아이디어는 20명의 직원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짠다. 혹시 그중 대단한 해외 전문가 또는 아동심리 전문가가 있지는 않을까? 이 대표는 “이곳 직원들은 그저 평범한 연극배우일 뿐”이라면서 “그저 사물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눈을 가졌다는 게 차별점이라면 차별점”이라고 했다.
“꼭 음대를 나와야 음악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사고의 틀에 갇힐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사람을 뽑을 때 눈빛을 봐요. 눈빛이 아이같이 순수하고 열려 있는 사람. 그렇다 보니 이곳 식구들이 다들 작품, 관객과 잘 소통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포부를 물었다. 그는 “작은 공연장 하나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150~200석 정도 규모의 마을극장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언제든 와서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곳에서 우리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함께 공유하고 싶어요. 창작하는 과정을 보면 아이들의 상상력이 더 커질 수도 있으니까요. 또 해외에서 만난 여러 훌륭한 아티스트를 이곳에 초청해 여러 나라의 공연문화를 함께 선보이고 싶습니다. 다양한 공연을 접하는 통로가 되는 거죠. 이 마을극장이 선진 예술문화의 씨앗이 돼서, 이런 질 좋은 공연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훗날 또 후대에 그것을 물려주는 선순환 구조가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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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