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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문화훈장 수상한 연극계 대부 임영웅 이야기

국내 연극 무대에 선보인 지 46년, 지금까지 총 40명이 넘는 배우가 출연했다. 공연 횟수는 2000회가 넘고, 관객은 50만 명이 넘게 다녀갔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얘기다.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 초연은 한국 연극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임영웅

ⓒ조선영상미디어

이 연극을 한국 무대에 올린 주인공은 바로 극단 산울림 임영웅(80) 대표. 60년 동안 연극 연출가의 길을 걸어온 임영웅 대표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문화예술계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는 1955년 ‘사육신’을 연출하며 연극계에 데뷔했고,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며 세계적인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1970년 ‘극단 산울림’을 창단하고, 1985년 ‘소극장 산울림’을 개관하며 완성도 높은 연극들을 무대에 올렸다. 지난 60년간 연극적 실험을 끊임없이 계속해온 임영웅 대표는 연극계와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게 됐다. 서울 마포구 산울림 소극장에서 임영웅 대표를 만나 그의 연극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외에서도 극찬한 ‘고도를 기다리며’
“단순히 연극이 좋아서 시작했을 뿐이에요. 돈을 벌거나 명예를 쌓기 위해 연극을 해온 것은 아니었어요. 상을 받던 날은 지금까지 연극 하나만 보고 달려온 제 인생이 스치면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임영웅 대표의 소감이다. 그는 “자신이 받을 자격이 있는지 한참을 고민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힘들게 연극을 하고 있는 후배들이 먼저 떠올라서다. 임영웅 대표가 한국에 소개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적인 부조리극. 두 부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오지도 않는 ‘고도’를 50년 동안이나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연극의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그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연극은 끝까지 ‘고도’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임 대표의 말이다.


“고도는 보는 관점에 따라 돈, 명예, 행복 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어요.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갈망하죠. 바로 고도를 통해 우리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연극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존 평론가들이 주장하는 부조리극으로 연출하지 않았다. 대신 관객에게 어떻게 하면 쉽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가 관객의 입장에서 연극을 연출한 이유가 있었다. 임 대표는 “연극도 사람 사는 이야기”라며 “인위적이고 난해한 해석보다는 정말 삶의 한 부분처럼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손에서 새롭게 재해석된 ‘고도를 기다리며’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88년 당시 임 대표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할 때의 일이다. 당시 학술회의 참가 때문에 서울을 방문한 마틴 애슬린이 임 대표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하고 싶어 했다. 마틴 애슬린은 ‘부조리극’이라는 명칭을 처음 만든 부조리 연극의 세계 최고 권위자로, 전 세계에서 상연되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숱하게 봐온 소위 ‘고도’ 전문가였다. 그런 그가 당시 세계 연극계 변방에 있던 한국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하고 싶어 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였다. 공연을 끝까지 보고 나온 애슬린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공연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소감은 내일 예정된 자신의 강연회에서 직접 밝히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빠져나갔다. 당시 상황에 대해 임 대표는 “마틴 애슬린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몰라 걱정했는데, 소감을 바로 말하지 않고 내일로 미뤄 별의별 생각이 다 들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다음 날 애슬린은 A4 용지 6장 분량의 소감문을 들고 나타나 “부드러움과 무용적인 움직임, 고도로 양식화된 동작으로 갖가지 상징을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이후 임 대표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일본,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호평을 받으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연극이 됐다.

극단 산울림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한 장면

극단 산울림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장면 ⓒ조선DB

연극 연출은 숨은그림찾기
임 대표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한 가지 철칙에 대해 말했다. “일단 내가 먼저 감동받지 못하는 작품은 무대에 올리지 않습니다. 나조차 공감하지 못하는 작품이 관객들에게 무슨 큰 울림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어요. 내가 온전히 작품을 이해할 때 비로소 사람 냄새 나는 연극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관객은 바로 임 대표 자신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연극 연출을 숨은그림찾기에 비유했다. “텍스트에서 행간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작가가 숨겨놓은 암시 같은 것을 찾아내 무대 위에 형상화하는 것이 연출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60년 동안 연극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작품을 연출할 때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임한다. 임 대표는 소극장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산울림 소극장을 개관한 이후 단 한 번도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을 받아본 적이 없단다. 공연장도 없이 연극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소극장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임영웅 대표가 기다리는 ‘고도’는 연출가는 걱정 없이 연극을 할 수 있고, 관객은 언제든지 연극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아닐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아직도 오지 않은 고도를 기다리며 계속해서 작품들을 무대에 올릴 계획입니다. 연극은 사람 사는 이야기라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져서도, 어려워서도 안 됩니다. 기력이 남아 있는 한 연극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고,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 생각입니다.”

 


김태형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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