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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마음을 표현하자.’ 이것만 깨달아도 격하기 쉬운 성격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고, 말하지 못한 답답함 때문에 후회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일로 무엇인가 미루면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오늘 반드시 해야 하는 감사의 인사도 미루지 않고 즉석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는가.

어쩌다 한순간을 놓쳐서 진정으로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다음 날 하려니 왠지 쑥스럽고 겸연쩍어 아예 하지 못했다가 끝내는 미진하게 남아 있는 감정의 찌꺼기 같은 것 말이다. 그 순간 해버렸다면 서로 웃을 수 있었을 텐데 뭔가 어석어석 씹히는 찌꺼기가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무슨 거대담론이 아니라 이렇게 아주 작은 말 한마디라도 놓치지 말고 표현해보면 어떨까.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평생 자신이 가장 많이 한 말은 "당신, 오늘 너무 힘들었어요"였다고 자서전에 밝혔다. 그의 묘비명에는 ‘남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이 여기 잠들다’라고 쓰여 있다. 어린 시절 가난하게 자란 카네기는 남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그 순간에 해야 할 말을 미루지 않고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너무 힘들었지요’라고 말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는 그렇게 남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마음 하나로 많은 사람을 벌었고 결과적으로 부자도 되었다. 말은 저축할 필요가 없다. 인색할 필요가 없다. 수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남발하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꼭 해야 할 말을 꿀꺽 삼킬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가끔 동네에서 만나는 여자가 있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의 인사를 나누는 사이인데, 며칠 전 이른 아침 아들과 함께 바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 아이가 수능을 보는구나 싶었지만 인사는 하지 못했다. 그녀의 남편이 오랫동안 병원에 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었다. 며칠 후 창덕궁 돌담 옆을 느린 걸음으로 걸어오는 그녀를 만났다.

 

골목

ⓒpixabay


얼굴 표정이 너무나 어두웠다. 아이 일이나 남편 일이 심상치 않구나 직감했지만 나는 뭐라고 인사를 건넬 수 없었다. 그 순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나, 그냥 지나칠까 수없이 생각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손을 잡기는 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고, 이제 가을이 가나 봐요."

나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말았다. 그녀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살아야겠네요."

말이나 행동을 즉시 할 수 있다는 것도 순발력이요, 더 나아가 인격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녀의 반응이 다행스러워 활짝 웃으며 말했다. "행운이 가까이 오고 있어요."

그녀도 활짝 웃었다. 그다음부터 그녀는 골목에서 만나면 먼저 웃었다. 이런 것이 우리에게 위로이며 치유이리라. 우리들은 내성적이고 마음을 안으로 감추기를 잘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마음을 보살피고 베푸는 것은 말에 대한 따듯한 격려일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보다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밝은 웃음으로 고맙다고 말한다면 우리의 생활은 불평스러운 것을 좀 더 빨리 극복하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삶의 갈피갈피 그 흐린 페이지 속에 웃음을 새겨 넣는 오늘이 되기를 바란다.

 

글· 신달자(시인) 2016.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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