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아버지의 죽음과 이로 인한 어머니의 정신적 충격으로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열여섯 살 소년은 열심히 하던 공부를 손에서 놓았다. 그런 그를 안타깝게 여긴 친척이 기술을 배워볼 것을 권유했다. "기초가 부실한 상황에서 공부를 따라가려면 어렵지만 기술은 친구들과 똑같이 시작해 배우는 거니까 수월하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소년은 빨리 취업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서른 살 청년사업가가 된 김종희(30) 씨는 올해 7월 고용노동부가 선정한 ‘2016 스타기술인 홍보대사’ 6인 가운데 한 명으로 위촉됐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2005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기계설계 CAD 부문)에서 은메달을 따고 기술인을 꿈꾸는 특성화고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한 공로다. 12월 13일 오후 경기 수원시에 위치한 기계설계 및 엔지니어링기업 제이디오 사무실을 방문했다. 김 씨가 2013년 설립한 회사다. 사무실 한쪽 벽면엔 복잡 미묘한 설계도면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는 "내 눈에는 사람과 나무를 그린 그림보다 이게 더 멋지다"며 자신의 지난날 이야기를 꺼냈다.

▶김종희 씨는 “설계는 머릿속에 구상한 것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구현해야 하는, 제품을 만드는 첫 단계”라며 “10년 넘게 제품의 첫 단추를 꿴다는 부담감과 즐거움 속에 살았다”고 했다.
열일곱 살 홀로 대구행, 복잡한 설계도면에 관심 가져
하루 15시간씩 훈련, 국제기능올림픽 은메달 획득
경북 영천에서 건축을 하던 아버지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고난은 시작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어머니와 살던 김 씨는 홀로 고향을 떠나 대구에 있는 경북기계공고에 진학했다. 학교에 기숙사가 없어 친척집에서 더부이를 했다. 줄곧 시골에 살아 기계를 만져본 적 없던 그가 교내 기능반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건 입학 후 기초제도 첫 수업에서 본 ‘설계도면’ 때문이었다.
"복잡하지만 잉크 번짐 없이 깔끔하게 그린 도면이었어요. 머릿속 구상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손으로 그린 게 멋있어 보였습니다."
도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상법이다. 물체를 도면으로 표현할 때 빠뜨리는 뷰(View) 없이 최소한의투상도로 전체를 보여주는 것이 최적의 설계라 할 수있다. 그런 도면을 그리려면 다양한 투상법을 물체의 특성에 맞게 적용해 작성할 줄 알아야 한다. 물체 100개가 있으면 설계도면 100개가 나오는 이유다.
학교에서는 김 씨를 포함한 기능특기생 4명을 하루 15시간씩 훈련시켰다. 웅크린 채 종일 도면만 들여다보니 목과 허리가 쑤셨다. 동기들의 입에서 "못 하겠다"는소리가 나왔지만 그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낮에는 실습을 하고 밤에는 선배들로부터 도면을 검사받았다. 피드백을 받으면 집으로 돌아가 단면기법, 공차기입법, 치수기입법 등 온갖 투상법을 공책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후 머리에 입력했다.
고2 때 처음 출전한 지역 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김씨는 이듬해 전국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국제 대회 출전 과정을 지원해주겠다는 기계설계기업이 있어 졸업하기도 전에 입사했다. 3차에 걸쳐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른 그는 2005년 5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 CAD 부문에 출전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실 여기엔 남모를 사연이 있다. 한국은 1977년부터 2004년까지 국제 대회 CAD 부문에서 줄곧 금메달을 땄다. 그런데 김 씨가 출전한 그해 CAD 경기 운영방식이 대폭 바뀌었다. 특히 한국 선수들이 두각을 보였던 항목의 배점이 크게 낮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가대표 선수를 지도하던 국내 지도자들이 세대교체가 되면서 경기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할 수 없었다. 김 씨는 "상심이 컸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에겐 꿈이 있었다. 산업 현장에서 기술을 연마하는 거였다. 김 씨는 "학교에선 기존에 있던 제품을 보완한다는 전제하에 설계를 하는데 산업 현장에선없던 것을 만들기 위해 설계한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이 설계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막막했다"고 했다.
김 씨는 설계팀이 아닌 조립 라인에 지원했다. 다른 사람이 설계한 것을 실제로 조립하고 동작하면서 설계 개념을 익혔다. 어느 정도 감이 잡히자 백지상태에서도 설계를 할 수 있었다.
그는 2013년 돌연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신사업을 준비하던 회사의 자금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5개월 치 임금이 밀렸기 때문이다. 김 씨는 "설계팀을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도면을 제작 대행하면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결국 회사를 차렸습니다. 원대한 포부가 있어 창업을 한 건 아니지만 평소 지난 10년간 쌓은 기술력을 산업 현장에 적용해보고 싶었어요. 피치 못할 상황이 저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지만 덕분에 새로운 기계설계를 자체 개발할 수있었습니다."
정부 과제로 설계한 보안검색대 상용화 예정
기술인 꿈꾸는 후배들의 러닝메이트 되고파
현재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보안검색대를 수입한다. 정부 과제로 선정된 김 씨는 지난 10년간 직장에서습득한 산업용 엑스레이 설계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보안검색대를 설계했다. 이 장치는 곧 국내에 설치될 예정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 씨가 설계한 독자적인 기계설계는 현재 포스코와 현대자동차에서 사용하고 있다. 김 씨는 "높이 2.5m에 달하는 철제 코일을 사람이 직접 포장하던 것을 로봇이 대신하고 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수백 개 부품을 설계하고 일부는 제작까지 했다"고 했다.
‘한 분야에 10년이면 전문가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른바 ‘10년의 법칙’이다. 그는 "맞는 말이지만 10년이란 숫자에 너무 갇혀 있지 말라"고 조언했다.

▶김종희 씨는 “기능특기생으로 선발된 후 선배들로부터 매일 밤 도면을 검사받았다”며 “선배들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을 후배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기능 분야에선 통용될지 몰라도 기술 분야는 꼭그렇지 않아요. 10년 넘게 일한 저도 이제 겨우 설계한다고 명함을 내미는 수준이니까요. 쫓아가야 한다는 조급함을 가지면 어떤 일이든 오래 하기 힘듭니다."
김 씨는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인천글로벌숙련기술진흥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특성화고 고교생 대상으로 기술을 전수한다. 총 5일 동안 기계설계부터 제조까지 체험하는 ‘통합설계 제조과정’이다. 그와 만난 고교생들은 집으로 돌아갈 때 도면을 하나씩 가져간다. 그가 14년 전 고교 입학 후기초제도 수업시간에 봤던 설계도면이다.
"누구나 뜻하지 않은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길을 잃고 헤매지요. 그때 우리의 인생사처럼 복잡하지만 반듯하게 설계한 이 도면을 보며 마음을 다잡아주세요."
글· 김건희 (위클리 공감 기자)/ 사진· 지호영기자 201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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