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돈 때문에 꿈도 꽃도 포기? 가난한 학생들 더 많이 도울 겁니다"
골목 저 끝에 위치한 상가 문틈 사이로 해바라기 꽃이 보인다. 두 팔 벌려 사람을 맞는 해바라기 꽃 얼굴엔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느껴진다. 입구 바닥엔 ‘Hi:D’라는 영문이 새겨진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여기서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안으로 성큼 들어가니 말린 꽃(건화) 천지다. 안개 속에 흐드러지게 핀 갈대를 연상시키는 미스티블루, 보랏빛으로 물든 시네시스, 천일 간 꽃이 핀다는 주홍빛 천일홍…. 11월 21일 오후 3시. 꽃집엔 울긋불긋 물든 늦가을이 낮게 깔려 있었다.
꽃집 주인 정보배(29) 씨는 대뜸 "우리 가게엔 빨간 장미나 노란 튤립 같은 화려한 꽃이 없다"고 했다. "한살 한살 나이를 먹을수록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꽃이 좋더라고요. 어느 누구의 보살핌 없어도 길가에 오롯이 핀 들꽃을 보면 생명력과 끈기에 박수를 치고 싶어요."

▶플로리스트 정보배 씨는 “길가에 핀 들꽃을 보면 생명력과 끈기에 박수를 치고 싶다” 며 “들꽃처럼 살고 싶다”고 말했다. ⓒ정보배
2014년 정 씨는 경기 수원시 영통구에 꽃집을 열었다. 만 열아홉이던 2006년부터 9년간 일한 돈으로 마련한 곳이다. 올해 4월 확장 이전한 꽃집은 2년 전보다 매장 면적이 2배나 넓어졌다. 청춘을 바쳐 마련한 것인 만큼 돈 버는 일에 열을 올릴 법도 한데, 여느 꽃집과 달리 화훼수업에 중점을 둔다. 그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와 꽃을 보고 공부하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씨의 꽃집은 찾는 사람이 많다. 요즘엔 주민은 물론 인근 유치원생과 초등생들이 자연학습을 하러 온다. 평일 오후엔 정 씨가 졸업한 수원농생명과학고 원예과 학생들이 화훼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러 이곳을 찾는다. 사설 학원이 아닌 꽃집으로 찾아오는 것은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품질의 꽃을 다듬을 수 있어서다. 정 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수강생들에겐 기본 재료비만 받는다. 그는 "애초에 꽃집을 하려 한 이유가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보배 씨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화훼수업. ⓒ정보배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어요. 화훼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려면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이 필요한데 돈 때문에 꽃 배우는 걸 포기할 뻔했죠. 그게 어린 마음에 상처로 남더라고요. 그때 훗날 성공해서 플로리스트를 꿈꾸는 가난한 학생들을 돕자고 결심했습니다. 돈 때문에 학생들이 꽃도, 꿈도 포기하는 일은 없게 하자고요."
꽃 보려고 수원서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꽃시장 달려가
열아홉부터 사회생활, 선배 따라다니며 꽃 이름 암기
수원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정 씨는 "산과 들이 나의 놀이터였다"고 했다. 날마다 산속을 헤매다 보니 자연스럽게 꽃과 나무에 관심이 생겼다. 마침 친척 어른이 꽃집을 운영하고 있어 플로리스트가 꽃을 장식하는 직업이란 걸 알게 됐다. 원예학과가 개설된 수원농생명과학고로 진학했다. 정 씨에게 배움은 집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이 신설됐다. 재학 중 화훼재배기능사를 취득한 그는 화훼장식기능사 자격도 취득했다. 꽃에 관한 한 누구보다 전문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식물응용학을 전공한 정 씨는 강의실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친구로부터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꽃시장에 가면 수입산 꽃을 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매주 금요일마다 수원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의 꽃시장으로 달려갔다. 거기엔 평소 볼 수 없었던 꽃이 잔뜩 있었다.
꽃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도 궁금했다. 정 씨는 대학 졸업을 앞둔 2학년 2학기 서울에 있는 유명 호텔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갔다. 호텔에서 그는 가장 나이 어린 직원이었다.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청소 같은 온갖 허드렛일을 했다. 꽃을 만져보려면 시키는 건 뭐든지 해야 했다.
정 씨의 또 다른 업무는 꽃 심부름이었다. 선배가 장식할 때 필요한 꽃을 냉장고에서 찾아 가져다주는 ‘단순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정 씨를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일례로 장미에는 헤라, 머라이어캐리, 커버넷, 자나 등 다양한 종류의 꽃이 있다. 그는 선배를 붙잡고 "두 번은 안 물어볼 테니 한 번만 꽃 이름과 특징을 알려달라"고 매달렸다.
"암기력이 좋은 편인데도 비슷하게 생긴 꽃이 워낙 많으니까 만날 헷갈리더라고요. 너무 답답해서 선배한테 꽃을 가르쳐주면 곧바로 외우겠다고 큰소리쳤어요. 선배가 꽃을 알려주면 퇴근 후엔 인터넷에서 꽃을 다시 찾아 달달 외웠죠. 선배와 약속한 걸 지켜야 했으니까요."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연회장에선 곧 테이블 꽃 장식품인 센터피스를 만들 수 있었다. 하루에도 수차례 연회가 열리다 보니 쓰레기 처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매일 꽃으로 가득 찬 100ℓ 쓰레기봉투를 혼자서 여러 개 옮겼다. 안방만 한 크기의 꽃 냉장고를 청소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청소를 끝내고 나면 움직일 힘조차도 없었다.
"그 시절을 견딘 덕에 체력이 많이 좋아졌어요.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꽃시장을 돌며 발품을 팔고 밤늦게까지 꽃을 만들 수 있는 것도 다 그때 단련된 덕분이에요."
부모 재정 지원 없이 본인 능력으로 꽃집 개업
가정 형편 이유로 플로리스트 꿈 포기 안 했으면
그가 꽃집을 차릴 때부터 추구해온 단 하나의 가치는 ‘포기하지 않는 삶’이다. 그럼에도 정 씨는 "꽃집을 열고 처음 1년은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부모의 재정 지원 없이 운영하거나 지인을 통해 기업이나 기관에 꽃을 납품하는 것이 아니면 버티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 정보배 씨의 꽃집엔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들꽃 종류가 많다. ⓒ정보배
"어느 날 꽃집 창밖으로 꽃이 보였어요.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내가 저 창문 밖에 둔 꽃은 지금껏 홀로 버텨왔구나.’ 그제야 제가 이 길을 포기할 뻔했지만 꽃이 좋아 일을 했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 씨는 학생뿐만 아니라 실패를 겪었지만 꽃을 통해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이들까지 화훼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꽃집을 개방할 생각이다. 이제 그의 꽃집은 봄을 그리워하는 꽃처럼 ‘인생의 봄’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한 공간이 될 것이다.
"꽃이 가진 위로와 활력이 많은 사람에게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꾸준히 하다 보면 저도, 그들도 꿈을 이룰 날이 오겠죠."
꽃집을 나왔을 땐 이미 골목에 어둠이 깔려 있었다. 도로로 들어서자 저 멀리 어느 꽃집 간판에 알록달록 네온사인이 켜졌다. 꽃 한 송이가 마음을 물들이는 빛이었다.
글· 김건희(위클리 공감 기자) 2016.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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