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김승민(23, 대학생)
조부 김학득(1927~2003) 선생은 마산공립중학교 3학년 재학 시절 비밀결사 마중독립단을 결성해 해외 독립운동 정황을 전하고, 학우들에게 조선 역사와 한글을 가르쳤다. 1년 1개월의 지독한 고문을 견디고 광복을 맞았다. 사형 집행을 사흘 앞둔 날이었다. 2003년 서훈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이승민(28, 영화 제작자)
외조부 강동석(1928~2004) 선생은 15세이던 안동농림학교 재학 시절 학생들과 주민들을 모아 대한독립회복연구단을 조직해 친일파를 습격하고 낙동강을 폭파했다. 1945년 일본 육군 기념일에 총궐기를 추진하던 중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99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김현성(23, 대학생)
고조부 설봉 김도규 의병장(1885∼1967)은 박곡전투에서 왜적을 무찌르며 대장 안규홍에게 발탁됐다. 그의 밑에서 항쟁하며 기발한 전술로 운월 전투에서 일본군에 대승을 거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30호) 에서 독립유공자 후손 김승민, 이승민, 김현성(왼쪽부터) 씨가 손을 맞잡고 있다. 이들 뒤로 보이는 의열사는 김구, 윤봉길, 이봉창,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 백정기 등 임시 정부 요인의 영정이 모셔진 곳이다. ⓒ사진·이상윤
● 1945년 8•15 광복 이후 71년이 흘렀다. 71년 전 내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이들의 후손은 71년이 지난 지금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동시에 어떤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광복절을 일주일 앞둔 8월 8일 독립유공자 후손 김승민, 이승민, 김현성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광복회의 지원으로 지난 7월 8일부터 엿새간 중국 내 독립운동 사적지(하이린, 닝안, 옌지, 허룽, 룽징, 백두산, 하얼빈, 다롄) 등을 다른 27명의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함께 다녀왔다.
이들을 만난 곳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효창공원(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30호). 이곳은 백범김구기념관과 순국선열의 묘소 등이 모셔진 곳이다. 용산구청은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의 일환으로 김구, 윤봉길, 이봉창,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 백정기 등 임시정부 요인의 영정이 모셔진 효창공원 내 의열사를 5월부터 일반에 상시 개방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탐방에 참여하게 됐나.
이승민 돌아가시기 전 외조부께서는 독립운동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는 늘 자신의 공을 힘없는 학도병을 도와준 주민들의 몫으로 돌렸다. 가족들은 그런 외조부를 대단히 존경했고 많은 사촌들이 광복회를 통해 국외 사적지 탐방을 다녀왔다. 외조부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했는데, 나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이야기로만 듣던 곳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김현성 우리가족은 매년 8월 아버지 여름 휴가에 맞춰 고조부가 안치된 국립대전현충원에 간다. 아버지께서는 고조부가 애국지사 1번 묘역에 안치된 것을 늘 자랑스러워하시며, 블로그를 통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공을 알리는 데도 열심이시다. 성인이 된 뒤 그런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게 됐고, 학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탐방에 꼭 참여하고 싶었다.
김승민 지난해 2월 군에서 전역한 뒤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전까지는 철 없이 살았다. 앞으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로 다짐하며 조부께서 걸어오신 길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조부님은 내 인생의 각성제 같은 존재다.

▶세 청년 등 독립유공자 후손 30명은 지난 7월 광복회의 지원으로 중국 내 독립운동 사적지를 탐방했다. 사진은 안중근의사기념관. ⓒ광복회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나.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승민 김좌진 장군 순국 장소, 봉오동전투 승전지, 안중근 의사 의거 현장, 이회영 선생 체포 장소 등을 직접 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있는 명동촌은 영화 ‘동주’에서 본 대로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그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살면서 정작 황폐해져가는 조선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땠을지를 생각하니 아득한 심정이 들었다.
김현성 백두산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그곳을 ‘장백산’이라는 자기들만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발해와 고구려를 그들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서다. 중국은 백두산을 근거지로 한 배달국의 치우천왕을 중국 조상이라 주장하며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고 했다. 두만강은 눈앞에 두고도 가볼 수 없었다. 분단으로 우리 땅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김승민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고 옥살이를 한 뤼순 감옥, 김좌진 장군의 자택이 있었던 목단강 등에서 태극기를 펼쳐놓고 다 함께 애국가를 불렀다. 중국인이 관리하는 뤼순 감옥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진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모든 이들이 감격에 벅찼고, 몇몇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서 광복의 의미가 남다를 듯하다.
이승민 우리에겐 여전히 많은 숙제가 남아 있다. 남북이 갈라지면서 우리는 완전한 주권을 회복하지 못했다. 진정한 광복은 남북화합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김현성 무엇보다 독립을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게 먼저다. 역사 문제도 이런 태도를 가지고 해결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국가의 발전적 미래를 고민해볼 수 있다.
김승민 국가의 주인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다. 국가에 관심을 갖고 정부가 잘못했을 때는 건전한 비판을 하는 성숙한 의식이 필요하다. 강력한 주권국가가 되려면 국민 의식이 먼저 성숙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의식이 모두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승민 고등학교 때 이과 수업을 들어 고1 때까지만 역사를 배웠다. 성인이 된 이후 심화학습을 하는 건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전까지는 의무적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 현 세대에 그런 체계를 갖춰놔야 미래세대에게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김현성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을 아는 건 중요하다. 또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함부로 언급해선 안 된다.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한국사 공부를 거의 필수적으로 하는데 그렇게라도 지식을 쌓는 게 도움이 된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건 책이 아닌 몸으로 역사를 배우는 거다. 이곳 효창공원이나 서대문형무소 등 국내 사적지를 직접 가보길 권한다.
김승민 2017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한국사가 필수 과목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반가웠다. 인물 이름, 사건 연도를 암기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부해야 한다.
현 세대에게 역사는 어떤 의미가 있나.
김현성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5000만 우리 국민 모두가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다. 역사를 지키는 것은 국가의 존폐와 직결되는 문제다.
김승민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과거를 바로 알아야 한다.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이 부끄러운 것인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광복의 환희와 남북 분단의 아픔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해졌다.
이승민 반드시 통일이 돼야 한다. 일각에선 엄청난 통일비용을 우려하지만 통일로 발생하는 경제적 이득이 그것을 능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젊은이들도 통일을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다.
김승민 경제력보다 극복하기 힘든 더 큰 문제는 문화의 차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력이 부족하다. 통일을 준비하며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고 성숙한 시민의식부터 길러야 한다.
광복 71주년을 기해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이승민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을 챙겨야 할 때가 왔다. 우리나라는 경제력에 비해 시민의식이 낮다. 경제 수준에 걸맞은 시민의식부터 길러야 한다.
김현성 개인적 이득보다는 국가 등 공동체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엔 한 사람을 위해 100명이 희생할 수 있는 정신이 없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상황을 타개하는 열쇠가 될 거다.
김승민 정부는 국민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돌보고, 국민은 정부를 깊이 신뢰하는 결속력이 강한 나라가 되길 희망한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서 사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승민 일부 몰지각한 국민은 일본에 여행 가 신사참배를 하고 웃으면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역사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역사를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공익광고를 만들고 싶다. 더불어 내가 만든 영화를 통해 국민들 간에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커졌으면 좋겠다. 나라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매한가지인데 그 방향이 달라 갈등이 생기는 것 아닌가. 인간 사회의 화합을 위한 영화를 만들겠다.
김현성 중국에 다녀와서야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은 선조들이 노력한 결과라는 걸 비로소 실감했다. 중국에 태극기를 걸어놓고 지금까지 사적지를 보존해온 것도 대단하다. 하얼빈 한•중 우의공원에는 이를 도운 후원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번 탐방도 광복회를 비롯해 국가보훈처와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가 지원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에 감사할 수 있도록 앞으로 역사단체를 후원하고 싶다.
김승민 역사교실을 만들고 싶다. 역사관은 어릴 때부터 제대로 정립하는 게 중요한 만큼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알려주는 메신저가 되고 싶다.
글 · 조영실 (위클리 공감 기자) 201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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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