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나이를 먹으면 어떤 모습일까.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지는 내면의 깊이, 대사와 표정만으로 발현되는 존재감, 어떤 역할이든지 잠시 나로부터 떨어져 가상의 인물로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리는 노(老)배우가 떠오른다.
여기, 이런 모습으로 인생 샷을 찍는 여배우가있다.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해 50년간 ‘영화밥’을 먹은 배우 윤정희(72)다. 330여 편의 영화 중 325편에서 주연을 맡았고, 국내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만 25번 수상했다. 2010년에는 이창동 감독 영화 ‘시’로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고, LA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과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오피시에’를 받았다.
반세기 동안 한길을 걸어온 사람의 일대기는 그자체로 역사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영상자료원은 9월 22일부터 11일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영상자료원 내 시네마테크KOFA에서 ‘영화배우 윤정희 특별전’을 개최한다. 관객과의 만남을 사흘 앞둔 9월 19일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신홀 대기실에서 만난 윤정희는 피아니스트인 남편 백건우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일흔이 넘은 여배우의 실루엣은 우아하고 맵시 넘쳤다.

▶1976년 결혼한 피아니스트 백건우·배우 윤정희 부부는 올해 각각 음악 인생 60년,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올가을은 우리 부부에게 아주 의미 있는 계절이에요. 저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열리는 데다 남편 역시 음악 인생 60년을 맞아 국내에서 공연을 하니까요. 정부가 배우의 작품을 기록해주는 것만큼 영예로운 일이 또 있을까요."
1966년 한강에서 카메라 테스트 받고 데뷔
코디 없이 스스로 화장 "여배우는 꽃, 하지만 취하지 않아야"
여배우의 탄생은 19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때부터 교내 학예회가 열리면 무대에 올라 연극을 했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자주 무대에 올랐는데, 합창을 하거나 무용을 했다. 그런 그가 1966년영화 ‘청춘극장’ 신인배우 모집에 응모해 배우를 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은 환호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일본 와세다대에서 공부를 한 후 한국에서 부산일보 기자를 하셨어요. 대학에서 강연도 하셨고요. 열린 사고를 갖고 계셨던 아버지는 제가 배우를 하겠다고 하자 ‘연기를 통해 내 삶을 사느라 몰랐던 세상살이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며 격려해주시더군요."
윤정희를 배우의 길로 이끈 것은 한강 가에서 진행된 카메라 테스트다. 미션은 어머니 역할을 맡았던 영화배우 황정순과 함께 우는 연기를 하는 거였다. 자신의 연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름 모를 누군가가 들어왔다. 주변에서 ‘저 사람이 합격할 것’이라며 수군댔다. 자리를 박차고 나오려는데, 젊은 남자 두 명이 그를 붙잡았다. 그들은 "우리가 볼 땐 당신이 합격이다"고 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우는 연기를 했다.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마음이 상한 나머지 감정이 격해져 눈물샘이 터진 것이다. 그날, 윤정희는 배우로 다시 태어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를 붙잡았던 두 사람은 조명감독과 제작부장이었어요. 만약 그들이 저를 잡지 않았다면영화배우 윤정희는 없었겠죠. 요즘 집이 여의도인데, 한강만 지나면 그때 생각이 나요."
영화계가 먼저 알아본 윤정희는 곧바로 대중의 눈에 띄었다.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배우가 됐다. 전후의 혼란이 채 가시지 않던 시절, 대중의 문화 욕구는 극장에서 해소됐다. 극장 앞은 청춘남녀부터 중·장년까지 줄을 서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1960~1970년대 한국인의 영화 사랑은 대단했어요. 덕분에 영화배우들은 기본적으로 영화 두 편을 동시에 찍어야 했어요. 낮에는 영화 A를, 밤엔 영화 B를 찍는 거죠. 정말 바쁠 땐 3편을 몰아서 찍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에 비하면 오늘날 영화 제작 환경은 무척 좋아졌죠. 그때 열정 하나로 영화를 찍었던 선배 영화인들이 오늘날 한국 영화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생각해요."






▶윤정희의 대표 작품들 : ‘청춘극장(1967)’, ‘황혼의 부르스(1968)’, ‘여섯 개의 그림자(1969)’, ‘무녀도(1972)’, ‘화려한 외출 (1977)’, ‘시(2010)’. ⓒ한국영상자료원
배우로서 윤정희의 필모그래피는 다채롭다. 동일 인물이라고 보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지고지순한 캔디형 같은 단편적인 캐릭터에 머물지 않고 지적인 여성, 강인함, 치명적인 팜파탈까지 극과 극을 오가며 복잡하고 미묘한 연기를 소화했다. 다양한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던 ‘비법’은 뭘까. 그는 "꿈으로 들어가 그 인물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윤정희는 50년 동안 꿈을 꾸고 깨기를 반복했다.
"꿈은 제가 연기하는 통로예요. 상상을 하려면 열린 마음으로 임해야 하죠. 그래서 연기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겁니다. 제가 항상 꿈꾸며 사니까 남편이 틈날 때마다 ‘꿈에서 깨어나라’고 말해요."
촬영 현장에서 여배우는 꽃이다. 자신을 챙겨주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다 보면 일과 생활이 혼선을 빚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윤정희는 거칠어진 자신의 손을 보여주며 "그런 건 없다"고말한다.
"저는 배우생활 하는 동안 코디(배우의 패션, 화장, 머리를 꾸며주는 사람)를 둔 적이 한번도 없어요. 신인 시절부터 직접 화장하고 촬영했죠. 특수 분장이나 머리만 전문가에게 맡겼어요. 생활도 다르지 않아요. 매일 설거지를 하고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려요.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우리 부부가 직접 도배를 했는걸요."
50년 여배우 연기론 "배역의 삶 상상하며꿈으로 들어가"
한국 영화 경쟁력은 탄탄한 스토리… 눈 감을 때까지 영화 찍고파
윤정희는 문예영화를 많이 찍었다. 그래서 ‘안개’, ‘독 짓는 늙은이’가 그의 대표작이다. 특히 황순원의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최하원 감독의 ‘독 짓는 늙은이’는 1970년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에서 여러 상을 받은 데이어 인도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며 국제무대에서 한국 영화가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윤정희가 보는 한국 영화의 경쟁력은 뭘까. 그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탄탄한 스토리’를 꼽는다.

▶영화배우 윤정희는 “꿈은 내가 연기하는 통로”라며 “항상 꿈꾸며 산다”고 말했다.
"나라만 다를 뿐 어딜 가도 사람이 사는 건 비슷합니다. 이제 국제무대에서 한국 영화의 위상을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더욱이 한류 바람이 불면서 한국 영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어요."
그 역시 2010년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윤정희를 칸에 보낸 이 영화의 출연은 전화 한 통으로 성사됐다. 이전까지 그와 이창동 감독은 친분이 없었다.
"감독님이 말하기를 저를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쓰는데, 주인공 이름이 저의 본명인 ‘미자’라고 하더군요. 감독이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집필한다니, 가슴이 요동쳤죠."
천주교 신자인 윤정희는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기도한다. 데뷔 50년을 맞은 여배우는요즘 어떤 기도를 드릴까.
"좋은 시나리오와 감독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카메라 앵글 앞에서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보내는 게 꿈이에요. 눈을 감는 그날까지영화를 찍을 겁니다."
여배우의 고백이 시(詩)처럼 들렸다.
글· 김건희(위클리 공감 기자) /사진·박해윤 기자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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