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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년 전통 4대째 신발 만드는 송림수제화 임명형·임승용 부자

서울 중구 수표동 대로변에 위치한 33㎡ 남짓한 신발 가게. 고객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주섬주섬 신발을 벗으니 희고 깨끗한 발이 드러났다. 그런데 발의 모양이 어딘가 이상했다.

"평발에 무지외반증과 근족막염을 앓고 있는데, 무릎 연골이 손상돼 제대로 걸을 수가 없어요. 유명하다는 수제화 가게는 모조리 찾아갔는데 제발에 맞는 신발은 없다고 하더군요. 이곳이라면 있을까 싶어 대전에서 달려왔어요."

수제화 가게 주인장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고객의 발은 아치가 무너지면서 발목과 발등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평발에 무릎 연골까지 손상됐다면 신발을 신는데 악조건을 다 갖춘 셈이었다. 주인장이 덤덤하게 말했다.

"요즘처럼 찜통더위가 계속되면 발도 곤욕을 치르죠. 더욱이 여름엔 얇은 끈으로 된 슬리퍼나 샌들을 많이 신는데, 이런 신발은 발을 보호하고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이 떨어져요. 고객님의 경우 평발에 무지외반증과 근족막염까지 있으니 맞는 신발이 없다고 했을 겁니다. 자신의 발이 어떤지부터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때 주인장의 아들이 작업장에서 상자를 가져왔다. 안에는 푹신푹신한 스펀지가 들어 있었다. 고객이 스펀지에 발을 대고 꾹 누르자 발의 모양이 고스란히 찍혔다. 아들은 이제 스펀지 위에 석고를 부어 발의 형태를 뜰 것이다. 주인장은 고객에게 "되도록 운동화를 신고, 신발을 신을 때 귀찮더라도 끈을 묶어 뒤꿈치가 뜨지 않도록 하라"며 "그래야 발의 피로감을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발만 보고도 문수·건강 상태 척척 알아내
고객의 성격·취향 파악한 후 맞춤 신발 제작

이 수제화 가게를 지키는 두 남자, 발만 보고도 문수(사이즈)와 건강 상태를 척척 알아낸다. 고객이 묻기도 전에 신발 보관법과 발의 건강 상태를 상세하게 일러준다. 업계에서 ‘수제화 제작의 달인’으로 유명한 임명형(53) 사장과 그의 아들 임승용(25) 씨다. 경기, 대전, 부산, 일본, 뉴욕에서 단골이 찾아오는 이유가 있었다.

임 사장은 "송림수제화는 81년째 4대에 걸쳐 수제화를 만들었고발을 연구했기 때문에 신발에 대해 잘 안다"며 "나 역시 1987년부터 지금까지 29년 동안 이곳에서줄곧 신발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임 사장은 청년 시절부터 부지런했다. 공장이 쉬는 토요일에도 혼자서 나와 근무했다. 지방에 살거나 직장에 다니느라 평일에 송림수제화를 찾아올 수 없는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주 무기는 또 있는데, 고객의 성격이나 취향, 기호를 재빨리 파악하는 거였다.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1991년 어느 날 송림수제화 가게로 한 청년이 들어왔다. 그의 걸음걸이가 위태로워 보였다. 임 사장은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직감했다. 청년은 두 번의 교통사고로 대퇴부가 두 번이나 골절돼 왼쪽 다리가 오른쪽보다 6cm가량 짧았다. 의료보조 구두를 신었지만 무겁고 두꺼워 뛰다 보면 바로 창이 떨어져 불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임 사장은 묘수를 썼다. 왼쪽 신발 안에만 키다리 구두처럼 6cm를높이고, 신발 바깥쪽을 안쪽보다 높게 만들었다. 허리 통증을 앓는 청년을 위한 나름의 조치였다. 신발을 신은 청년은 이후 송림수제화의 단골이 됐다.

장인

▶송림수제화 3대 장인인 임명형(53) 사장과 그의 아들 임승용(25) 씨가 1950년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등산화를 들고 있다. 두 사람은 100년 가는 수제화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이상윤

 

발이 불편한 이들만 임 사장의 손기술에 반한 게 아니다. 깐깐한 사회지도층이 송림수제화를 찾았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김영삼 전 대통령, 조순 전 서울시장, 산악인 허영호, 현역 국회의원과 대기업 회장 등정·재계 인사가 모두 이곳의 단골이다.

자부심으로 운영한 송림수제화는 고객으로 붐볐다. 그러나 임 사장은 돈을 버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그는 "1대 장인인 이귀석 창립자(2대 사장인 아버지 임효성 씨의 외삼촌) 때부터 송림수제화는 5년, 10년 동안 신을 수 있는 신발을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았다"며 "많은 사람들이편안한 신발을 신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송림수제화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고객의 발 들여다보면 그만의 스토리 읽혀
하루 다르게 변하지만 100년 가는 수제화 가게 만들 것

이런 그의 뜻에 동참하는 이가 있었으니, 아들 임승용 씨다. 임 씨는 고등학생이던 17세부터 가게의 일을 거들었다. 청소부터 가죽 원단을 나르는 일까지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신발에 관심을 보인 건 아니었다. 17세 소년에게 본드와 가죽 냄새를 맡는 일은 고역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장면이 임 씨의 마음을 살짝 바꿨다. 송림수제화는 고객이 매장을 찾으면 발을 직접 잰 후발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과 원단 등을 파악한 뒤 맞춤 신발을 제작한다. 임 씨의 눈에 이런 세세한 과정이 들어왔다.

"기계가 아닌 내 손으로 신발의 처음과 끝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어요. 고객의 발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스토리가 보이는 것도 흥미로웠어요."

 

수제화

▶송림수제화는 20, 30대 청년 기술자에게 신발 만드는 노하우를 전수할 생각이다. ⓒ이상윤

 

임 씨는 어려서부터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다. 장난감이든 기계든 고장이 났다 하면 부품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했다. 이런 성격은 1000번의 공정을 거쳐 한 켤레의 신발을 만드는 구두장이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그에게도 신발을 만드는 ‘DNA’가 있었던 셈이다.

임 씨는 요즘 자신의 머리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중이다. 발가락이 하나 없다든지, 무지외반증이라든지 수많은 경우를 생각하면서 신발을 어떻게 만들지 연구하는 것이다. 그는 전국에 판매점 체인망을 구축해 지방이나 해외에서 오는 고객이 좀 더 쉽게 송림수제화의 신발을 신을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그러려면 자신과 함께할 젊은 기술자들이 많아야 할 것이다.

"청년들이 일자리 찾는 데 급급한 나머지 미래의 비전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직업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심지어 남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사례도 있고요. 10년 후를 바라볼 때 기술직은 충분히 비전이 있습니다. 단순히 사무직만 선호할 게 아니에요."

수제화를 만들고 연구한 지 이제 81년. 송림수제화는 역사를 기록하려 한다. 단골 고객으로부터 기증받은 신발을 모아 전시하는 것이다. 그중에는 1950년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등산화도 있다. 두 사람은 이를 통해 송림수제화가 신발을 만들면서 81년간 쌓은 기술과 노하우를 젊은 기술자들에게 전수하고자 한다. 이미 4명의 젊은 20~30대 청년에게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두 사람의 꿈은 100년 송림수제화를 운영하는 것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수제화 가게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기술은 영원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장인정신을 지킬 생각이다. 송림수제화, 소박하지만 특별한 가치가 있다.

 

글 · 김건희(위클리 공감 기자) 201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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