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얼마 전 22.9%의 높은 시청률(닐슨코리아 제공)로 막을 내린 KBS2 퓨전 사극 ‘구르미 그린 달빛’(이하 ‘구르미’)에서 배우들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았다. 시청자들은 우리 옷이 이렇게 우아하고 아름다웠느냐며 감탄했고, 배우들은 아름다운 한복을 원 없이 입어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전했다. 이 모든 예찬의 중심에 이진희 의상감독이 있다. 1998년 연극 ‘하륵 이야기’로 데뷔해 18년째 영화와 드라마, 연극계에서 무대 의상을 책임지고 있는 이진희 의상감독을 만났다.

▶이진희 의상감독은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을 통해 한복의 원형적인 아름다움은 살리면서도 색감과 톤에서는 현대화를 시도해 호평을 받았다. ⓒ조영철 기자
‘구르미’는 젊은 층에 한복의 아름다움 알린 작업
박보검, 원단 직접 대보며 의상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
"요즘 젊은 층 사이에 한복을 빌려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한복놀이 열풍이 일고 있다고 해요. 한복이 젊은 층에 가까워졌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한복의 아름다움이 제대로 담기지 않아) 안타깝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구르미’ 제의가 들어왔고, 드라마는 대중매체인 만큼 파급력이 상당하니까 드라마를 통해 젊은 친구들에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적어도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에게만큼은 한복에 대한 판타지가 심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여하게 됐죠."
이 의상감독은 ‘구르미’ 참여 계기를 묻는 질문에 가장 먼저 "1인 캠페인"이라는 말을 꺼냈다. 오랫동안 의상, 특히 한복을 만들면서 수천 번 감탄해 마지않은 한복의 아름다움을 젊은 층에게도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그런 그녀의 바람을 실천할 가장 효과적인 플랫폼이기도 했다.
"제작진 측에서는 그간 많은 대중매체에서 표현돼온 한복의 강렬하고 원색적인 느낌을 원했어요. 하지만 저는 한복의 원형적인 아름다움은 살리되 전체적인 톤이나 색감은 다운시키는 등의 현대화를 원했죠. 제작진과 약간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제 의견을 끝까지 고수한 이유는 이 작업이 제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자는) 캠페인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 결과 예상보다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죠."
이 의상감독이 시도한 현대화는 극중 한복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흔히 말하는 색동저고리나 원색 계통보다는 은은한 벚꽃색, 차가운 하늘색, 청량한 청록색 등 흔히 보기 힘든 안정감이 느껴지는 색상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명도와 채도를 낮춰 편안하면서도 우아한 색상은 ‘구르미’에서만 볼 수 있는 한복의 특징이다.
"(제가 만든 한복에 대한) 젊은 친구들의 반응을 보고 요즘 친구들이 정말 빠르구나, 감각적이구나, 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의도한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언급하고 있었거든요. 반가운 마음에 그들과 함께 공감하고 싶어서 새로 누리소통망(SNS)을 개설하기까지 했죠. 이번처럼 공감하면서 작업해본 게 처음이에요. 정말 뿌듯하고, 앞으로도 제 작업에 더욱 확신을 갖고 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의상 제작에서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결은 PD, 배우와의 협업이 바탕이 됐다.
"드라마는 (대본이라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모든 분야가 맞물려 방향과 톤을 결정하는 협업의 장이에요. 배우들도 어떤 의상과 색깔이 자신에게 더 어울릴지 의견을 내기도 하고요. 극중 이영을 맡은 박보검 씨는 원단을 일일이 다 얼굴에 대보며 자신에게 어떤 색상이 어울릴지 같이 고민할 만큼 굉장히 적극적이었어요. (김)유정 양도 마찬가지였고요. 덕분에 저도 배우들에게 어울리는 최적의 의상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죠."
한복은 원형에 가까워 오히려 현대적이고 우아해
색감과 소재 변화, 한복 재해석한 브랜드 론칭
극중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 한복의 디테일에도 차이점을 뒀다. 왕세자 이영(박보검), 남장 여자 내시 라온(김유정), 권력가 자제 윤성(진영) 등 각 캐릭터가 입은 한복을 다시 살펴보면 왜 그런 색상이고 소재였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이는 왕세자지만 따뜻하고 호기심 많은 성격의 소유자예요.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어울릴 만큼 마음에 벽이 없죠. 그런 영이에게는 색상의 스펙트럼을 폭넓게 적용했어요. 라온이 같은 경우는 여자와 남자를 오가기 때문에 한복 색도 극에서 극으로 변화하죠. 동시에 청량감을 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윤성은 겉으로는 차갑지만 내면에는 공허함과 함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캐릭터예요. 그래서 언뜻 보면 차갑지만 따뜻한 이미지도 가진 하늘색 등으로 한복을 만들어줬죠."
‘구르미’라는 작품이 큰 사건·사고 중심으로 흘러가기보다 캐릭터의 감정선을 천천히 따라가는 만큼, 한복 역시 큼직한 변화보다 디테일에 집중했다. 여기에 꼼꼼한 이 의상감독의 성격까지 더해져 1500벌로 예상했던 의상 수는 실제 3000벌 가까이로 늘어났단다.
한복의 원형은 거의 손대지 않고 색이나 소재로만 변화를 준 만큼 이 의상감독은 원단을 찾는 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장인들이 즐비한 경남 진주의 원단시장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소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남녀 주인공이었던 박보검과 김유정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상을 함께 고민할 만큼 한복에 애정을 보였다. ⓒ‘구르미 그린 달빛’ 문전사, KBS미디어
"영이의 곤룡포 대부분은 이제는 살 수 없는 원단으로 제작해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남는 의상이에요. 지금은 돌아가신 원단 장인의 마지막 원단으로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나중에 제 브랜드의 옷을 만들거나 할 때 사용하려고 남겨둔 원단인데 이번 작품에서 아낌없이 사용했어요. 그래도 결과가 만족스러워 후회는 없어요."
이 의상감독에게 ‘구르미’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나아가 전 세계인들에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의미 있는 작업으로 남았다. 이제 다음 작업은 미뤄둔 자신의 브랜드 론칭을 통해 한복을 재해석하고 또 다른 방법으로 한복을 알리는 일이다.
"한복은 과거 서양 옷에 비해 장식이 없고 왜곡도 변형도 없는, 원형에 가까운 본질적인 옷이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현대적(모던함)이라고 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는 무척 편안하고 우아한 채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이런 한복의 기본적인 특징, 선 등을 현대화한 우리 옷을 작업 중이에요. 몇 년 동안 준비해온 제 브랜드 론칭을 통해 우리 옷 알리기라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글· 김가영(위클리 공감 기자) 201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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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