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용접을 배우고 싶은 이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용접을 시작한 이들, 돈을 벌고자 용접을 하는 이들…. 장재희(59) 씨가 매일 마주하는 소중한 제자들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한국소년보호협회 예스센터에서 용접학과장으로 근무한다. 예스센터는 법무부 산하 한국소년보호협회가 22세 이하 위기 청소년이 기술을 배우고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설립한 기숙형 직업훈련기관이다. 장 씨는 이곳에서 용접학과 학생 16명을 가르친다. 어려운 가정환경에 가로막혀 길을 잃은 학생들을 위해 목이 터질세라 수업한다. 하나라도 더 알려 주고 싶어서다. 그가 이렇게 마음을 쏟는 이유가 있다. 40여 년 전 그 자리에 그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공부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장재희 씨는 국가가 마련한 학력 인정 평생교육시설과 한국폴리텍대학을 통해 직업능력 개발 훈련교사가 됐다. ⓒ박해윤 기자
경남 김해에서 육남매의 넷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만 나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 지인의 소개로 겨우 얻은 일자리가 서울 노량진에 위치한 중국집의 배달부였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양손에 철가방을 들고 짜장면과 짬뽕, 볶음밥을 배달했다. 오전 8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하는 게그의 일상이었다.
가정 형편 넉넉지 않아 초등학교 졸업 후 취업
"공부하지 못한 것 마음에 응어리로 남아"
그러다 공부를 시켜준다는 말에 서울 광화문에 있는 건설회사로 옮겨 사무실 관리원으로도 일했다. 일하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학교를 보내준다는 말은 흐지부지됐다. 장 씨는 다시 일자리를 알아봤다. 전북 김제시 원단공장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접했다. 일하다 잠깐 정신을 팔았는데 그만 재단기에 왼손 가운데 손가락이 끼이고 말았다. 이 사고로 왼손 중지가 다른 손가락보다 길이가 짧다. 덜컥 겁이 났다. 손가락 불구가 되는 건 아닐까, 결혼을 못 하게 되는 걸까 염려됐다.
그는 짐을 싸들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럴 바에야 아버지 따라 농사를 짓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만에 후회했다. 김매기 잠깐에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며칠 농사일을 거들었을 뿐인데 쇠락해가는 논밭에서 고통을 견디는 아버지의 숙명이 느껴졌다. 열일곱 살 때 다시 경남 창원시에 있는 중공업 회사에 취업했다. 고된 나날 속에서 장 씨의 머릿속엔온통 공부 생각뿐이었다. 선반을 돌릴 때도, 밀링작업을 할 때도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하지만 발 딛고 선 현실은 이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산전수전 겪으면서도 공부 생각을 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젊었을 때 먹고사느라 공부하지 못한 것이 가슴에 응어리로 남았죠."
직장생활을 하면서 당황스러운 순간이 종종 생겼다. 연말이 되면 진급 소식이 들려왔다. 그도 공장에서 반장을 맡았지만 담당업무가 아니면 잘 알지 못했다. 배움이 짧은 탓이라 생각했다. 동료들이 혹여 신경쓸까봐 승진에 무관심한 척했다. 말은 숨겨도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그 순간만 되면 가슴이 꽉막혔다. 속병이었다. 19년가량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나의 사업을 해야겠다’며 회사를 나왔다.
거주지를 경기 부천시로 옮겼다. 방앗간은 장사가 잘됐다. 가계 살림도 어느 정도 나아졌다. 13년간 정신없이돈을 벌다 보니 공부에 대한 미련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그에게 야간학교에 입학할 것을 권했다. 서울 화곡동에 성지중·고등학교가 있는데, 중학교 2년, 고등학교 2년 과정으로 공부할 수 있다고 했다. 성지중·고등학교는 교육부가 학력을 인정하는 평생교육시설이다.
학력 인정 평생교육시설 통해 중등교육과정 이수
폴리텍대 진학 후 기사·기능장 취득하며 배움 갈증 해소
장 씨는 손사래를 쳤다. 이제 와 공부를 하기엔 나이가 많은 데다 머리가 굳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포기하지 않았다. 불현듯 공부하고 싶어 했던 자신의 청년 시절이 떠올랐다. 이왕 공부하는 거라면 제대로 하자고 생각했다. 장씨는 방앗간에서 손을 떼고 공부에 전념했다.
2008년 3월 입학식에 참석한 그는 깜짝 놀랐다.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르신뿐만 아니라 젊잖아 보이는 신사숙녀도 공부를 하겠다며 열성적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학생으로 돌아갔다. 늦게 시작한 학교생활이 익숙해지자 학급 임원을 도맡았다.
그는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곧바로 한국폴리텍대학 강서캠퍼스에 진학했다. 기능인으로서 다양한 기능을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면접 날 담당교수가 그에게 "열심히 해보라"고 했다. 면접을 마치고 정문을 나오면서 장 씨는 쾌재를 부르짖었다. 교수의 말 한마디가 합격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50대의 중년 남성이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학업에 몰입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대학 재학 중에 산업기사와 용접기능장, 에너지관리기능장 자격을 취득했다. 만족감과 자존감을 얻으면서 그동안 앓았던 속병이 싹 나았다. 누군가 그를 무시 하거나 저평가해도 옛날처럼 속으로 끙끙 앓지 않았다.

▶장재희 씨는 가정환경에 가로막혀 길을 잃은 학생들이 기능인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밝혔다. ⓒ박해윤 기자
"그동안 저는 자존심이 구겨지는 삶을 살았어요. 공부를 하면서 살아난 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었습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니 삶이 윤택해지더군요. 무엇보다 국가가 마련한 학력 인정 평생교육시설과 한국폴리텍대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늦깎이 학생이 된 지 8년 만에 용접 기술을 가르치는 장 씨. 요즘 그는 학생들과 함께 틈틈이 쇠붙이를 모아 작품을 만든다. 올해 제작하는 것은 지구본이다. 지난해에는 한반도 모형을 만들었다. 현재 용접실습실 출입문 옆에 전시돼 있다.
"기술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앞으로 기능인을 꿈꾸는 학생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학력 인정 평생교육시설은
초중등교육법상의 정규 초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 이수 기회를 놓친 학습자를 대상으로 제2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평생교육시설이다. 대상 학습자는 정규 학교교육의 기회를 놓친 성인 학습자(21세 이상)나 부득이한사유로 정규 교육과정을 중단한 근로 청소년 등이다. 입학 안내 등 자세한 문의는 각 지역 교육지원청으로 하면 된다.
글· 김건희 (위클리 공감 기자) 201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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