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北 인권 다큐 ‘더 월(The Wall)’ 데이비드 킨셀라 감독
탈북한 한 여인이 지난 삶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 삶은 위로 자라는 꽃이 칼로 베이고, 하늘로 솟아오른 용이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가며, 남녀노소 모두가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세상에서 펼쳐진다. 장면 중간중간에는 북아일랜드의 종교 분쟁이 오버랩된다.
북한에서 촬영된 영화 ‘더 월’은 북아일랜드 출신의 다큐멘터리 감독 데이비드 킨셀라(51)의 작품이다. 북한의 인권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이 영화는 최근 아일랜드 골웨이국제영화제에서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가 수여하는 ‘최고인권상’을 받았다. 지난 10월 21일 열린 제6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한국을 방문한 킨셀라 감독을 만나 영화 제작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북아일랜드 다큐멘터리 감독, 북한 실상 담은 영화 제작
감시카메라·도청·검열에 "잊을 수 없는 수치심 느껴"
1981년 16세의 나이로 북아일랜드 ‘올해의 언론사진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킨셀라 감독은 이후 노르웨이로 이주해 사진과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2006년 첫 다큐멘터리 영화 ‘소년원에서 온러브레터’로 미국에서 주목받으며 상업적 성공을 거뒀고, 2009년 ‘아름다운 비극’과 ‘킬링 걸즈’로 노르웨이의 오스카라 불리는 노르웨지언 아만다 어워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으며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그가 북한을 배경으로 한 인권 영화를 만든 건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됐다.

▶북한의 인권 현실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더 월’을 만든 데이비드 킨셀라 감독.
"7년 전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한 북한 간부와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됐어요. 제가 영화감독이라고 하자 북한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더군요. 흥미로운 제안이라고 생각했고 그후 6개월에 걸쳐 시나리오를 구성했어요. 제 모든 영화에는 강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작은 마을에 사는 젊은 여성 시인’을 등장시키기로 했죠."
킨셀라 감독은 외부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북한의 실상을 담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안고 2014년 처음 북한을 방문했다.
"많은 이들이 북한을 비난하고 안 좋게 말하는 것들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어요. 정직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죠. 그런데 그 바람은 북한에 도착하자마자 산산이 부서졌어요. 휴대전화를 압수당했고, (감시가 쉽게) 입구와 출구가 하나뿐인 호텔 방 거울 뒤에는 감시카메라가 달려 있었죠. 제가 가는 곳 어디에서나 도청이 되고 있었어요."
촬영 현장은 더욱 심각했다.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일부러 낡은 카메라를 들고 갔지만, 매 순간 감시의 눈길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그는 촬영 첫날 벌어진 일을 절대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첫날 6시간에 걸쳐 촬영을 마쳤어요. 그런데 촬영이 끝나자 갑자기 모든 촬영분을 복사해서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저를 믿지 못한 것이죠. 그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늘 촬영이 끝나면 양복 입은 5명의 남자가 컴퓨터 파일을 체크했어요. 한 번도 제 인생에서 겪어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정말 수치스러웠어요. 그때 결심했어요. 북한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요."
킨셀라 감독은 또 하나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주연배우의 이름이 영희예요. 영희가 뮤지컬 공연을 한다고 해서 촬영을 하러 간 적이 있어요. 10분정도 촬영한 뒤 이제 됐다 싶어 조용히 카메라를 정리하는데, 갑자기 그 자리에 있던 500여 명의 관중과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일제히 연주를 중단하고 자리를 뜨더군요. 모든 게 제 촬영을 위해 연출된 것이었어요. 정말 기이하고 놀라운 광경이었죠. 모두가 생각은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행동하기만 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월’의 포스터 사진.
이처럼 연출된 장면이 반복되자 킨셀라 감독은 다른 대안을 떠올렸다.
"실상을 담을 수 없다면 후작업의 힘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배경 위주로 촬영한 다음, 제가 보고 느낀 북한의 실상, 북한 사람들의 꼭두각시 같은 모습 등은 대부분 컴퓨터그래픽(CG)을 통해 합성했죠."

▶북한의 한 텅 빈 경기장에서 배우를 촬영한 뒤 후반 작업을 통해 관중을 채워넣었다.
정부에 순응하는 북한 사람들 ‘마리오네트’ 빗대
자신이 원하는 삶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
특히 ‘더 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마리오네트(꼭두각시)의 이미지(CG를 활용해 북한 사람들의 머리와 손 위로 줄을 매달았다)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요 메시지와도 연결된다.
"북한 정부에 조작당하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줄을 삽입했어요. 자유로운 사고가 불가능하고 정부에 무조건 순응하는 모습이 안타까웠거든요. 같은 맥락에서 이 영화를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싶어요. ‘남들이 현실을 결정하게 놔두면 당신은 생각 없는 노예가 된다(If you let others define reality, you become mindless slaves)’."
킨셀라 감독은 영화에 자신이 겪은 북아일랜드의 종교 분쟁을 삽입했다. ‘더 월’에 등장하는 북아일랜드 소년은 어린 날의 감독 자신을 투영한 것으로, 남북한 간의 갈등이 북아일랜드의 구교와 신교의 갈등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영화는 적이라고 생각한 상대가 결국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암시하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북한 배우가 화기애애한 북한 가정의 식사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영화는 북한의 현실을 고발하는 동시에 주입된 사고를 경계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남들이 시키는 대로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굳이 북한에 한정짓지 않더라도 한국 사람들이나 미국인들, 그 밖에 전 세계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많은 것들을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글· 김가영(위클리 공감 기자) / 사진· 홍중식 기자 201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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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